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에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오 모(54)씨가 김태촌의 '서방파' 계보를 잇는 '범서방파' 부두목으로 알려지면서 보복폭행 파문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오모씨는 '범서방파' 산하 '맘보파' 두목으로서 198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뉴송도호텔' 사장 납치사건과 '서진 룸살롱' 사건에 연루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김태촌은 청송감호소 만기 출소 직전인 지난 2004년 회고록 <김태촌의 못다 한 이야기>를 통해 두 사건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밝히며 문제의 오모씨의 역할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당시 오씨는 김태촌의 지시에 따라 뉴송도호텔 사장을 납치해 김태촌 표현을 빌면 "양다리가 으스러지고 손과 목에 상처가 나는" 잔혹한 폭행을 가했다. 국내 굴지의 대그룹이 어떻게 이런 잔혹한 조폭과 관련을 맺게 됐는지 진상을 밝혀야 할 대목이다.
다음은 회고록 중 제4편 '뉴송도호텔습격사건'에 언급된 오모씨의 실체다.<편집자주>
"검사 부탁으로 오모에게 뉴송도호텔 사장 청부살인 맡겨"
1986년 6월 중순, 한강 둔치에서 열린 제1회 전국 새마을(건달) 축구대회 뒤를 봐준 A검사로부터 지검 검사실로 들어오라는 호출이 왔다. 여느 때와 달리 A검사는 얼굴이 굳어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오늘처럼 수모를 당해본 적이 없다면서 인천 뉴송도호텔 B사장을 없애야겠다는 것이었다.
A검사는 자기와 B사장은 죽마고우였지만 다른 길을 갔다고 말문을 열었다. B사장은 이정재 사단 출신으로 자유당 시절 한때 건달 생활을 했다가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사업 실패 후에는 도시관광 소유이던 인천 뉴송도호텔을 운영했다.
A검사는 몇 년 전 이 호텔에 5천만원을 빌려줬는데 이를 돌려받지 못하자 초등학교 동창인 B사장에게 경영권을 인수하도록 해 부채를 변제받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B사장은 2백만원만 돌려줬을 뿐 나머지 4천8백만원은 돌려줄 생각을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A검사의 말을 들으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다, 대전교도소까지 내려와 특별접견을 해준 A검사의 은혜를 갚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A검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인천 뉴송도호텔로 보낼 특공대를 선출했다. '맘보파' 두목 오모에게 믿을 만한 후배 10명을 추려서 뉴송도호텔 B사장을 붙잡아 데리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맘보파’ 행동대원들이 뉴송도호텔에 B사장과 함께 있다는 보고를 해오자 나는 인천으로 내려가 B사장을 만났다. 내가 찾아온 목적이 A검사의 채권 청부라는 사실을 눈치 챈 B사장에게 나는 A검사와 직접 만나 채무 관계를 해결하라고 권했다.
이날 이후 나는 A검사가 특별 접견해주신 은혜를 200% 갚았다고 자부하며 사업에 전념했다.
A검사에게서 신촌 모 호텔에서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동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사업에 전념하고 싶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A검사는 자기의 채권 해결을 위한 일이니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이왕 고생했으니 호텔 경영권의 제1주주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A검사를 만나자 무조건 B사장을 직접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A검사는 법률용어를 써가며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출소 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서화전시회 및 건달체육대회를 폭력범죄단체 조직 재건을 위한 범죄행위로 간주해 구속 수감하겠다고 위협했다. B사장을 처치해 완전 범죄로 만들든가 아니면 범죄단체결성죄로 징역을 살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였다.
이튿날 나는 A검사를 만나 청부 살인에 응하겠다고 답했다.
나는 그 길로 찍어둔 특공대 후배들을 비상소집했다. B사장의 습격 거사일은 7월 25일 밤으로 잡았다. 7월 26일 오전 2시 30분, 드디어 B사장을 처치할 특공대 5명이 서울 노량진 합숙소를 나와 경인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들이 탄 차는 새벽 4시께 인천 뉴송도호텔 앞에 멈춰 섰다. 새벽 5시께 일행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B사장이 양다리가 으스러지고 손과 목에 상처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거사 성공 후 A검사와 나는 소주잔을 부딪치며 ‘브라보’를 외쳤다.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에 동원된 조폭 오모씨의 두목인 김태촌. ⓒ연합뉴스
"맘보파 조직원 석방 파티하다 '서진 룸살롱' 사건 발발"
그런데 이후 문제가 엉뚱하게 꼬였다. 피습 직후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는 B사장이 경찰서 형사들에게 A검사가 투서를 제출한 데 대한 감정으로 김태촌을 사주해 김태촌 똘마니들이 자기를 난자했다는 진술을 한 것이다. B사장은 그때까지 경찰서에서 인지 사건 피해자로 진술조서를 받는 상황이었다. B사장이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한 것은 사건 후 열흘이 지난 8월 6일이었다.
8월 7일 오전 11시 30분께 여러 사람과 함께 서울 마포 모 호텔에서 잘 아는 경찰서 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2시가 되자 해당 경찰서 형사들이 호텔을 포위한 채 커피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간부 한 사람이 ‘김태촌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모든 경찰이 권총을 빼들었다.
그 순간, 커피숍 입구에 한 중년 신사가 들어서고 있었다. 다름 아닌 A검사였다. 나는 보란 듯이 A검사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유유히 호텔 사우나로 들어갔다. A검사와 나는 빌린 방 창문을 통해 형사들이 나의 일행을 연행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곧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A검사와 나는 이렇게 B사장 피습 사건이 미제로 묻히는 줄 알았다. B사장 피습 사건이 난 지 3주일쯤 지난 그해 8월 15일. 나는 평소처럼 태연히 지내다가 사업을 하는 한 선배의 광복절 가석방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막 출소한 선배와 ‘맘보파’ 오모 등 선후배들이 대가 룸살롱에 모여 앉아 양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그날 밤 오는 분주했다. 목포 부하 조직원 한 명이 같은 날 수원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했기 때문이다. 오는 바로 근처 서진룸살롱에서 조직원들과 모여 잔을 돌리며 술자리로 왔다 갔다 했다.
그때 서진룸살롱에는 000, XXX, ZZZ 등 10여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가 서진룸살롱을 나오자마자 안에서 칼부림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내 지시에 따라 인천 뉴송도호텔로 B사장을 감금하러 갔던 ‘맘보’ 오의 동생들과 000 일파가 서진룸살롱 복도에서 시비가 붙어 오의 동생 4명이 현장에서 살해된 것이다. 이것이 이튿날 세상을 발칵 뒤집은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이다.
김승연 보복폭행에 동원된 조폭이 국내최대 조폭조직중 하나인 범서방파 산하 맘보파로 알려져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