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9월이 오면' 가능할까
[김행의 '여론 속으로']<36>범여권후보 출현에 기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박 전 대표 측 계산대로라면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달 중순께 이 전 시장을 따라 잡았어야 했다.
그 때가 정인봉 전 의원이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자료를 폭로한 시점이다. 그러나 격차는 여전하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비교우위를 누려온 ‘당심’(당 대의원 지지도)에서도 이 전 시장에게 역전을 당했다는 결과마저 나타났다.
박 전 대표 캠프에서 나오기 시작한 응원가는 "9월이 오면"이다. 박 전 대표가 9월께 이 전 시장을 따라 잡고 대 역전극을 펼친다는 얘기다. 과연 가능할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룰과 관련한 박 전 대표 측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당론과 현실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현재 당론인 '6월 4만명'은 박 전대표가 대표로 있을 때 도입한 제도다.
당시 그는 당 대표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짙은 '황사' 속에 실시된 국회의원선거를 진두지휘, 120명이 넘는 의석을 확보해 한나라당은 지켜냈었다. ‘탄핵’과 관련 전국을 휩쓴 촛불시위와 공영방송의 편파방송, 열린우리당 '노빠'들의 눈물 쇼를 극복한 놀라운 성과였다. 뿐인가. 그는 2년여 재임기간 중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 등 모든 선거에서 전승을 거뒀다.
작년 5월 지방선거 땐 신촌에서 괴한으로부터 테러까지 당했다. 그때 보인 놀라운 절제력과 얼굴상처에도 불구하고 대전을 방문해 대전시장 선거를 역전극으로 이끈 ‘철(鐵)의 의지’는 박 전 대표의 상징이다.
지금 이 전 시장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한다지만, 작년 만해도 박 전 대표의 발끝에 머물렀었다. 따라서 올 6월께 일찌감치 후보를 뽑으면 극심한 경쟁은 피할 수 있었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당시 이 전 시장측이 '6월-4만명 경선안'에 불만을 표하고 연기를 주장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정은 변하는 법. 박 전 대표는 작년 하반기 후보경선 공정관리 차원에서 대표직을 사임하고 '내공'을 쌓는다면서 칩거에 가까운 은둔에 들어갔다. 국방, 경제 등 부족한 학습을 위한 것이라지만 깊게 패인 얼굴상처 치료가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후임 당 대표 경선에서 자신과 가까운 강재섭 대표가 이 전 시장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을 물리침으로써 후보경선 구도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유리하게 구축한 것으로 믿었을 터다.
박 전 대표의 실기(失機)는 이 전 시장의 진면목을 간과한 측면도 있다. 이 전 시장은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승부사다. '돈'을 만지고 '조직'을 움직인 경험이 있다.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의원 등을 통해 치밀하게 당내 조직을 확대해 갔다. 손학규 전 경기자사가 이재오 의원에게 "소속의원들을 줄 세우지 말라"고 공개 모욕을 줬어도 오불관언으로 일관한 그다. 여기에 '청계천 효과'가 날개를 달아줬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은 이 전 시장의 검증되지 않은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환상까지 유권자들에게 심어줬다. 그리고는 지지율 조사에서 50%가 넘는 기록까지 나온 판이다.
3월 초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가 견고하게 우위를 다져온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여론인 '당심'에서도 이 전 시장 42.4%, 박 전 대표 37.0%로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최근 한국일보 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을 1.4% 포인트 차이로 누른 것으로 나타났기는 했지만.
사정이 급변하면서 이 전 시장측은 '6월경선'으로, 박 전 대표측은 '9월 경선'으로 선회한 것은 ‘독약’같은 지지율 때문이다. 물론 박 전 대표는 표면적으로 '6월-4만명'을 주장한다. 일단 기존 당론에 따른다는 명분이 있다.
당원이 50%를 차지하는, 4만명 선거인단에 의한 경선에선 당심에서 앞선다는 박 전대표로서는 해볼만 하다고 여길 수 있다. 나머지 50%가 국민선거인단이라지만 당원에 비해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이다. 정치소양이 일반인보다 깊은 당원들을 상대로 "왜 박근혜여야 하는가" "왜 이명박은 안되는가"를 설파하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 이 전 시장에 대한 후보검증을 들고 나오고, 지금도 거기에 미련을 두는 이유는 바로 당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심은 '9월'이다.
박 전 대표측이 "9월이 오면"을 노래 부르는 이유는 그 때쯤에는 이 전 시장 지지율이 추락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박캠프 인사들은 이 전 시장 지지도의 유동성을 지적한다.
이 전 시장 주요 지지기반은 서울과 호남이다. 박 전 대표와 비교할 때 서울은 57.6% 대 21.2%, 호남은 43.4% 대 17.0%로 두 배 이상이다. 이 지지율은 ‘여권후보 부재상황’에서 얻은 것이다. 호남 지지율은 여권 후보가 등장하면 폭락할 것이고, 서울의 호남출신들의 외면현상도 뒤따를 것이라는 믿음이다.
반면 박 전 대표 지지층은 영남과 충청 등이다. 상대적으로 견고하다. 동시에 찔끔거리다만 이 전 시장 검증이 본격 시작되면 국민은 몰라도 적어도 당심은 출렁일 것으로 믿는다. 일부 한나라당 당원 중 ‘이명박=본선필패 후보’라는 위기감을 잘 아는 터다. 디오피니언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깨끗하지 못한 사생활'을 최대의 대통령 결격사유로 꼽았다.
“9월이 오면‘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때쯤이면 여권후보가 가시화될 것이다. 여권에서도 이 전시장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검증을 시작할 것이다. 이때까지 보자는 것이다.
후보경선은 이 전 시장측이 양보해야할지 모른다. 박 전 대표측이 '6월 4만명'이 아니면 '9월 20만명'을 주장하고, 손학규 전경기지사가 '8월 이후 1백만명'이 아니면 "탈당 불사"를 외치는 한, 자신에게 유리한 '6월'만 고집하는 어려워 보인다.
1997년과 2002년 이회창 씨를 일찌감치 후보로 뽑았다가 지지도 추락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경험도 '조기경선'의 당위성을 밀어낸다. 그래서 이 전 시장이 양보한 안이 '7월 23만명' 이다.
반면 박 전 대표는 투표인단을 늘리는 한이 있어도 '9월'을 관철해야 한다. "9월이 오면"을 벼르는 박 전대표가 과연 '9월의 여인'으로 등극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 때가 정인봉 전 의원이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자료를 폭로한 시점이다. 그러나 격차는 여전하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비교우위를 누려온 ‘당심’(당 대의원 지지도)에서도 이 전 시장에게 역전을 당했다는 결과마저 나타났다.
박 전 대표 캠프에서 나오기 시작한 응원가는 "9월이 오면"이다. 박 전 대표가 9월께 이 전 시장을 따라 잡고 대 역전극을 펼친다는 얘기다. 과연 가능할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룰과 관련한 박 전 대표 측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당론과 현실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현재 당론인 '6월 4만명'은 박 전대표가 대표로 있을 때 도입한 제도다.
당시 그는 당 대표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짙은 '황사' 속에 실시된 국회의원선거를 진두지휘, 120명이 넘는 의석을 확보해 한나라당은 지켜냈었다. ‘탄핵’과 관련 전국을 휩쓴 촛불시위와 공영방송의 편파방송, 열린우리당 '노빠'들의 눈물 쇼를 극복한 놀라운 성과였다. 뿐인가. 그는 2년여 재임기간 중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 등 모든 선거에서 전승을 거뒀다.
작년 5월 지방선거 땐 신촌에서 괴한으로부터 테러까지 당했다. 그때 보인 놀라운 절제력과 얼굴상처에도 불구하고 대전을 방문해 대전시장 선거를 역전극으로 이끈 ‘철(鐵)의 의지’는 박 전 대표의 상징이다.
지금 이 전 시장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한다지만, 작년 만해도 박 전 대표의 발끝에 머물렀었다. 따라서 올 6월께 일찌감치 후보를 뽑으면 극심한 경쟁은 피할 수 있었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당시 이 전 시장측이 '6월-4만명 경선안'에 불만을 표하고 연기를 주장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정은 변하는 법. 박 전 대표는 작년 하반기 후보경선 공정관리 차원에서 대표직을 사임하고 '내공'을 쌓는다면서 칩거에 가까운 은둔에 들어갔다. 국방, 경제 등 부족한 학습을 위한 것이라지만 깊게 패인 얼굴상처 치료가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후임 당 대표 경선에서 자신과 가까운 강재섭 대표가 이 전 시장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을 물리침으로써 후보경선 구도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유리하게 구축한 것으로 믿었을 터다.
박 전 대표의 실기(失機)는 이 전 시장의 진면목을 간과한 측면도 있다. 이 전 시장은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승부사다. '돈'을 만지고 '조직'을 움직인 경험이 있다.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의원 등을 통해 치밀하게 당내 조직을 확대해 갔다. 손학규 전 경기자사가 이재오 의원에게 "소속의원들을 줄 세우지 말라"고 공개 모욕을 줬어도 오불관언으로 일관한 그다. 여기에 '청계천 효과'가 날개를 달아줬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은 이 전 시장의 검증되지 않은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환상까지 유권자들에게 심어줬다. 그리고는 지지율 조사에서 50%가 넘는 기록까지 나온 판이다.
3월 초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가 견고하게 우위를 다져온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여론인 '당심'에서도 이 전 시장 42.4%, 박 전 대표 37.0%로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최근 한국일보 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을 1.4% 포인트 차이로 누른 것으로 나타났기는 했지만.
사정이 급변하면서 이 전 시장측은 '6월경선'으로, 박 전 대표측은 '9월 경선'으로 선회한 것은 ‘독약’같은 지지율 때문이다. 물론 박 전 대표는 표면적으로 '6월-4만명'을 주장한다. 일단 기존 당론에 따른다는 명분이 있다.
당원이 50%를 차지하는, 4만명 선거인단에 의한 경선에선 당심에서 앞선다는 박 전대표로서는 해볼만 하다고 여길 수 있다. 나머지 50%가 국민선거인단이라지만 당원에 비해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이다. 정치소양이 일반인보다 깊은 당원들을 상대로 "왜 박근혜여야 하는가" "왜 이명박은 안되는가"를 설파하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 이 전 시장에 대한 후보검증을 들고 나오고, 지금도 거기에 미련을 두는 이유는 바로 당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심은 '9월'이다.
박 전 대표측이 "9월이 오면"을 노래 부르는 이유는 그 때쯤에는 이 전 시장 지지율이 추락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박캠프 인사들은 이 전 시장 지지도의 유동성을 지적한다.
이 전 시장 주요 지지기반은 서울과 호남이다. 박 전 대표와 비교할 때 서울은 57.6% 대 21.2%, 호남은 43.4% 대 17.0%로 두 배 이상이다. 이 지지율은 ‘여권후보 부재상황’에서 얻은 것이다. 호남 지지율은 여권 후보가 등장하면 폭락할 것이고, 서울의 호남출신들의 외면현상도 뒤따를 것이라는 믿음이다.
반면 박 전 대표 지지층은 영남과 충청 등이다. 상대적으로 견고하다. 동시에 찔끔거리다만 이 전 시장 검증이 본격 시작되면 국민은 몰라도 적어도 당심은 출렁일 것으로 믿는다. 일부 한나라당 당원 중 ‘이명박=본선필패 후보’라는 위기감을 잘 아는 터다. 디오피니언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깨끗하지 못한 사생활'을 최대의 대통령 결격사유로 꼽았다.
“9월이 오면‘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때쯤이면 여권후보가 가시화될 것이다. 여권에서도 이 전시장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검증을 시작할 것이다. 이때까지 보자는 것이다.
후보경선은 이 전 시장측이 양보해야할지 모른다. 박 전 대표측이 '6월 4만명'이 아니면 '9월 20만명'을 주장하고, 손학규 전경기지사가 '8월 이후 1백만명'이 아니면 "탈당 불사"를 외치는 한, 자신에게 유리한 '6월'만 고집하는 어려워 보인다.
1997년과 2002년 이회창 씨를 일찌감치 후보로 뽑았다가 지지도 추락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경험도 '조기경선'의 당위성을 밀어낸다. 그래서 이 전 시장이 양보한 안이 '7월 23만명' 이다.
반면 박 전 대표는 투표인단을 늘리는 한이 있어도 '9월'을 관철해야 한다. "9월이 오면"을 벼르는 박 전대표가 과연 '9월의 여인'으로 등극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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