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단식 유족, 광화문서 쫓아내지 말라"
"정치권, 세월호 유가족 염원대로 세월호특별법 신속 통과시켜라"
천주교 최고의결기구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의장이기도 한 강우일 주교는 이날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해 "남북한의 여전한 냉전 구도,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의 갈등, 국내적으로는 경제지수의 흑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양극화된 계층 간의 격차, 거기에다 국가 운영 시스템 전체의 패착이 송두리째 드러난 세월호 침몰 같은 참혹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나라를 지켜야 할 군 병영 내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이 일상화되고 관행적으로 되풀이되는 치부가 드러나면서 우리 국민들이 심한 충격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 주교는 이어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보고 듣고 공유하시며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을 선포해 주실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방한하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 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강 주교는 특히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염원이 받아들여져 올바른 진상 조사와 사후 조처를 철저히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신속히 통과시키도록 국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란다"며 무늬만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한 여야를 꾸짖었다.
강 주교는 담화문 발표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광화문광장에서 30일째 단식농성중인 김영오씨 등 유족 농성장 퇴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우리 행사 때문에 그분들이 거기서 물리적으로 퇴거 당하거나 쫓겨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우리가 눈물 흘린 사람을 내쫓고 예수님께 사랑의 미사를 구할 수는 없다. 유족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가겠다"고 퇴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다만 장소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허용되는 최소한의 가족분들만 남아있을 수 있도록 실무진들이 유가족들과 협의를 계속할 것"이라며 "시복식을 위해 설치할 게 많아 설치를 준비하는 동안 잠깐 옮겨주고 다시 들어오는 쪽으로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날부터 광화문 농성장에는 문정현 신부 등 416명의 각계인사와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시복식이 열리는 16일까지 4박5일간 동조 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세월호참사대책회의와 비상시국회의 등은 이에 앞서 15일 오후 3시 광화문 광장에서 올바른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0만 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세월호 유족들의 광화문광장 단식은 16일 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타전될 전망이다.
다음은 강 주교의 대국민 담화 전문.
천주교 강우일 교황방한준비위원장 대국민 담화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이틀 후면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교종께서는 아시아 청년대회에서 아시아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우러지시고, 124위의 순교자들을 복자품에 올리는 시복식을 통해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우리 선조들의 증거의 삶을 온 세상에 공포해 주실 것입니다.
아시아 청년대회에 보편교회의 수장이신 교종께서 직접 참가하시는 일은 처음입니다. 이는 아시아 대륙 전체에서 보면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가톨릭 젊은이들이지만 용기를 내어 이 광활한 대륙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실어 나르는 파발꾼이 되기를 초대하고 격려해 주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거행되는 시복식도 교종의 특사가 집전하시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이번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 미사를 손수 주례하고자 찾아주십니다. 그것은 진리를 위해 목숨 바치는 순교자들의 충성과 신의를 물질주의와 상대주의적 가치관 속에 파묻혀 사는 오늘의 우리가 상기하고 본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많은 번민에 휩싸여 있습니다. 남북한의 여전한 냉전 구도,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의 갈등, 국내적으로는 경제지수의 흑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양극화된 계층 간의 격차, 거기에다 국가 운영 시스템 전체의 패착이 송두리째 드러난 세월호 침몰 같은 참혹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나라를 지켜야 할 군 병영 내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이 일상화되고 관행적으로 되풀이되는 치부가 드러나면서 우리 국민들이 심한 충격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 곁을 제일 먼저 찾아가시는 프란치스코 교종이시니 오늘 이러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우리 곁에 오셔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위로와 희망의 복음을 들려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주로 여행하며 일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여행을 한 사도 바오로는 여러 지역교회를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방문의 목적은 첫째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둘째로는 그 지역교회가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고 절망에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보고 듣고 공유하시며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을 선포해 주실 것입니다.
교종께서 아시아 대륙에서도 가장 먼 한반도를 제일 먼저 찾아주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려는 염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가장 큰 염원을 함께 짊어지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령의 연세에 휴가도 마다하고 먼 길을 떠나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오십니다. 교종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기간 동안 우리도 그분의 뜻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분이 전하고자 하시는 ‘사랑과 희망’ 안에 서로를 포용하고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화해와 평화의 싹이 더 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멀리서 오시는 귀한 손님을 한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방한 기간 동안 대규모 집회와 행사로 곳곳에서 많은 불편을 겪게 해드리는 점 송구하게 생각하며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염원이 받아들여져 올바른 진상 조사와 사후 조처를 철저히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신속히 통과시키도록 국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 모든 분들에게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4년 8월 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교황방한준비위원장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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