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국무총리의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정당의 뿌리, 조직, 세(勢)가 없이 무임승차한다는 것은 그 한계가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고 전 총리의 사퇴는 정권 재창출을 꿈꾸는 범여권에 두 가지 큰 차질을 가져왔다.

첫째는 ‘외부선장론’. 현재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고 전 총리가 사퇴하자마자 전 언론이 ‘외부선장’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급기야 영국에 있는 정 전 총장과 박 상임이사를 찾아내 대권출마여부를 묻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답변은 물론 ‘NO'.

그러나 이들에게 물어볼 것이 아니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세 사람의 공통점은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는 것. 물론, 그 점이 이들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정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정당의 뿌리, 조직, 세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결코 무임승차할 수 없다. 언제, 어떤 식으로 망신당하며 낙마할 지 모른다. 특히 고 전 총리가 노대통령의 ‘실패한 인사’라는 말 한마디로 죽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생각이 있더라도’ 올라탈 수 없는 것이다.

물어 보려면 노 대통령에게 물어봤어야 한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외부선장이 누구인가를. 즉, 오너에게 물어 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임원에게 “당신 사장 생각 있냐?”고 물어 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이건희 회장에게 “누굴 사장시킬 것이냐?”라고 물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외부선장론’은 노대통령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노의 후계구상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그 안에 정운찬, 박원순, 문국현 등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고 전 총리의 사퇴로 현 여권의 실질적인 오너가 누구인지가 더욱 분명해 졌고, 외부선장이 누구든지 간에 노 대통령의 ‘100% 보장’ 없이는 뛰어 들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뛰어든다면 그는 노 대통령의 ‘100% 보장’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외양은 노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위장하면서 시작할 수 있겠지만, 내용만큼은 노 대통령의 확실한 후계자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 대통령과 늘 반대로 가는 순진한 김근태 의장보다는 늘 노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는 노련한 정동영 전 의장의 정치적 감각이 한 수 위 아닐까.

두 번째는 여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놨던 ‘오픈프라이머리’도 차질을 빚게 됐다는 점이다. 사실 고건 전 총리는 처음부터 노 대통령의 마음에 없었다. 고 전 총리의 용도는 마라톤에서 우승후보를 내기 위한 페이스메이커였다. 즉, 오픈프라이머리의 흥행을 위한 액서서리였다는 말이다. 그런 그가 중도에 낙마했으니, 페이스메이커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범여권의 오픈프라이머리는 노 대통령의 ‘100% 보장’을 약속받은 외부선장과 친노쪽 인사들인 유시민, 한명숙, 김혁규, 김두관, 강금실, 여기에 정동영 정도가 가세해서 판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외부선장‘의 실체가 확실해진만큼, 흥행을 기대키는 쉽지 않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좀 더 자극적인 시나리오도 나오고도 있다. 일부러 친노파 일부를 탈당시켜 ‘제3지대’에서 정당을 만들고 후보를 낸 후,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같은 극적 연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한번 재미를 본 카드다.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치러질 여권의 오픈프라이머리가 노 대통령의 기대만큼 국민들의 눈길을 잡아끌지는 두고 볼일이다. 그의 말마따나 “꼼수로는 천만명을 움직일 수 없다”

여하튼, 고 전 총리의 사퇴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20%대로 진입했다고 한다. 오너가 움직이자 지지층이 재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노 대통령이 준비한 카드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