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경복궁옆 '7성급 호텔' 강드라이브
시정연설서 야당에 협조 요청, 전우용 "역사도시 망가질 것"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의료, 교육, 금융, 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힌 뒤, 특히 '관광진흥법안'을 거론하면서 "관광진흥법안이 통과되면 약 2조원 규모의 투자와 4만 7천여개의 고용이 창출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들 법안들이 꼭 통과되도록 협조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앞서 지난 9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학교 인근에 들어서길 바라는 호텔의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당연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와 야당, 교육계, 문화계 등은 이에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관광진흥법안은 일명 ‘대한항공법’으로 불린다.송현동 옛 미국 대사관 숙소 부지는 지난 2002년 삼성이 사들였다. 미술관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각종 규제로 이를 포기했고, 2008년 한진그룹의 대한항공이 삼성에서 매입한 뒤, 이곳에 두바이와 같은 세계 최고급 7성급 관광호텔을 짓겠다며 집요하게 로비를 벌여왔다. 그러나 삼성도 포기했을 정도로 현행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부지 바로 옆에는 3곳의 학교(풍문여고, 덕성여중·여고)가 밀집해 있어 현행법상 불가능하며 실제로 서울중부교육청은 대한항공의 요청을 거부했다. 대한항공은 이후 제기한 행정심판에서도 패소했다.
이처럼 현행법상 호텔 건립이 불가능하자, 대한항공은 새로운 법을 만들어 호텔 건립을 관철하려 했고 그 산물이 다름아닌 '관광진흥법안'인 것이다. MB정권 말기인 지난해 10월, 정부는 유흥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은 교육청 승인 없이 건립할 수 있도록 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 법안을 승계해 이번에 관철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와 야당, 교육계, 문화계 등 각계 반발이 거세다.
최종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는 정부의 맹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북촌지구단위계획’에 들어 있는 해당 용지에는 공익적 시설이 들어서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향후 박근혜 정부여당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격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서울시문화재위원인 전우용 역사학자는 19일 트위터를 통해 "서울시에서는 전부터 호텔 짓는 데 반대해 왔다. 그래서 아예 법까지 개정하려 하는 것"이라며 7성급 호텔 신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우선 호텔을 세우려는 송현동 터에 대해 "구 한국일보 사옥 맞은편에서 안국동 네거리까지 뻗은 높은 돌담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본래 그 자리는 순종의 장인인 윤택영의 저택이 있던 곳입니다.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인수해서 사택 단지로 만들었죠"라며 "조선식산은행 사택단지는 해방 후 미군정이 몰수해서 미국 대사관 직원 사택으로 전용했습니다. 용산 미군기지와 같은 경로를 거친 거죠. 미국이 그 땅을 내놓자 몇 해 전부터 대한항공이 초고층 호텔을 짓겠다고 로비를 해 왔습니다"라며 한국사의 굴곡이 얽힌 비운의 땅임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오래된 건물 몇 개 가졌다고 역사도시 자격을 갖는 게 아닙니다. 인공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 이루어진 ‘역사 경관’이 보존되어야 역사도시입니다. 이미 많이 망가졌지만, 최소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만이라도 ‘역사경관’을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 자리에 초고층 관광호텔이 들어서면, 삼청동, 재동, 계동, 안국동, 인사동 등 북촌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역사 도시’ 서울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거죠. 나쁜 교과서보다도 이런 건축 행위가 역사를 더 많이 왜곡할 수 있습니다"라며 "정부와 여당이 그 자리에 호텔이 들어설 수 있게 관광진흥법을 개정하려 합니다. 관광수입도 좋지만, 그걸 얻으려 얼마 남지 않은 ‘역사경관’까지 망쳐야 하나요? 개인이든 집단이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신이 빈곤하면 천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질타했다.
그는 "굳이 호텔을 지을 양이면, 2층 이하의 한옥 단지 형식으로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전통경관 지구’로 만들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될 수도 있겠죠"라고 대안을 제시한 뒤, "도대체 런던과 파리에서 뭘 보고 오셨는지..."라고 박 대통령을 힐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직접 지시를 하고 새누리당이 관철 의지를 분명히 함에 따라 이제 공은 야당으로 넘어간 상태다.
관광진흥법안을 다룰 국회 교문위는 여야 의석수가 동수이고, 법안심사소위도 동수(5대5)여서 야당이 반대하면 통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각계의 시선이 그동안 관광진흥법을 '재벌특혜법'이라고 비난해온 야당의 향후 행보로 쏠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