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와 김재록은 너무 끈끈했다
[정치부 기자 23년의 기억들] <3> 이헌재와 나, 그리고 김재록
정치부 기자들이 인맥 확장에 열중하는 이유다. 그들은 지인들을 요직에 앉히려 혈안이다. 그러니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를 한다는 소리도 듣는 거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정치부 기자인 이상은 말이다.
그러나 정치부 기자도 인간이다. 계산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계산을 한다. 내가 기자이니 말이다. 그래서 정치부 기자는 외롭다. 외롭지 않다면 훌륭한 정치부 기자가 아니다.
이헌재와 나, 그리고 김재록
1997년 12월이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아니었나 싶다.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인 나는 일산 DJ 자택을 갔다. 집은 이미 인산 인해였다. DJ에게는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멀찌감치 눈인사만 보냈다. DJ는 잠시 손을 들어주는 걸로 화답했다.
1층 응접실에서 기자들끼리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때 장성민 비서가 보자고 했다. 장비서는 내 대학 후배다.
“형, 내가 오늘 여의도 당사로 출근하는 DJ 차 옆에 태워줄 테니 얘기 좀 나눠.”
“야 그게 가능하냐. 이미 당선자야. 청와대 경호실에서도 나왔는데...”
“오늘은 괜찮아. DJ에게도 얘기해 놓을 게.”
“그래 주면 고맙고.....”
긴장됐다. 맨 날 보던 DJ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대통령 당선자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됐다.
DJ가 출근길에 나섰다. 모두가 집 밖으로 나왔다. DJ를 배웅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나서서 차를 탈수 없었다. 다른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한테 미안했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장비서가 손짓을 했다. 차에 타라는 신호였다.
나는 차에 올랐다. DJ도 차에 탔다.
“축하드립니다. 정말로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소. 나보다 기자들이 고생 많았소.”
선거가 끝날때 마다 듣던 소리다. 그러고보니 몇번의 선거를 치렀던가. 그 소리를 들으니 긴장이 풀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 얘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DJ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차장, 사람 좀 추천하시오. 내각에 들어갈 사람도 좋고,다른 데서 일할 사람도 좋소.”
잠시 생각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이헌재 씨를 아십니까?”
“이헌재? 그 사람 이번 선거에서 이회창 정책자문위원 한 사람 아닙니까? 그 사람은 왜? 그런 사람을 나보고 쓰라고?”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실수한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다고 말을 멈출 수도 없었다.
“맞습니다. 이회창 정책자문위원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총재님,지금 IMF상황 아닙니까? 경제를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경제를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론 모자랍니다. 정치적 감각을 가진 경제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이헌재 씨가 적격입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납니다.”
DJ는 무표정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DJ가 물었다.
“그 사람 진의종 국무총리 사위라지요. 출신은 어디입니까?”
“태어난 곳은 중국 상해입니다. 그런데 장인하고 같은 고향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습니다. 맞다면 호남 인맥 아닙니까. 그러나 어떤 기록에도 호남이라고 나오진 않습니다.”
“그래요?”
DJ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 얘기는 이어졌다.
“자민련 김용환씨가 재무부에 있을 때 심복으로 키운 관료입니다. 듣기론 너무 똑똑해서 재무부를 일찍 관뒀답니다. 경기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총재님이 쓰셔도 사람들은 김용환씨가 자민련 몫으로 데려다 쓰는 걸로 알겁니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연합정권이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 정권말이다. 각료도 양자가 나누기로 했었다.
“나도 이헌재 그 사람 얘길 들은 적은 있어요.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이헌재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그리곤 다른 사람을 추천하라 했다. 속으론 '물건너 갔구나' 생각했다.
“국세청장에는 이건춘씨를 쓰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 사람은 누굽니까?”
“지금 서울 국세청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 일각에서는 이석희 국세청 차장을 추천하던데요.”
안기부장 내정자인 이종찬씨의 추천인 듯 싶었다.
“이석희 씨에 대한 보고를 아직 못 받으셨군요. 곧 보고를 받으시게 될 겁니다.”
“무슨 보고 말입니까?”
“아시게 되실 겁니다. 다만 이석희씨가 문제가 있다면 이건춘씨를 쓰십시요.”
나는 이미 이석희씨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DJ 비서한테 들었다. 그가 세풍사건의 주역이란 걸말이다. 그러나 그 얘기는 안했다. 실력자 앞에선 되도록이면 남을 씹지 않는 게 좋다. 그게 나를 좋게 보이는 길이다.
그래서 이건춘씨 얘기만 했다. 공주 출신이라서 역시 자민련 몫으로 계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했다.
“그리곤 더 없습니까?”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검 공안부장엔 진형구 감찰부장을 시키시지요.”
“그 사람이 이번 선거에서 역할을 한 게 있습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총재님을 위해 역할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서울지검에서 총재님 친인척을 선거 직전에 비리혐의로 소환 조사하려 했습니다.그러자 대검 감찰부에서 감찰을 나갔습니다. 시간을 끌어 선거를 넘기게 했습니다.”
“아 그래요? 고마운 사람이구먼.”
그러나 실은 거짓말이었다. 그렇다고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다. 대검 감찰은 실제 있었다. 그러나 그걸 그렇게 꿰맞췄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 였다. 그걸 일부러 그런 것처럼 얘기했다. 진형구씨는 내 고등학교 선배다. 정치부 기자들은 간혹 그런 거짓말을 한다. 나로선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각 분야에 친한 사람 모두를 추천했다.
DJ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일까지 이헌재 씨 이력서와 레포트를 하나 받아다 줘요. IMF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DJ 입에서는 이헌재 얘기만 나왔다. 그렇다고 “이건춘, 진형구씨는요?”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그들도 결국 국세청장이 됐고 공안부장이 됐다. 물론 우여곡절은 있었다. 그러니 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할 순 없다.
DJ의 차는 어느덧 여의도 당사 앞이었다. 지지자들이 ‘김대중’을 연호하고 있었다. 나는 쏜살같이 전화기로 달려갔다. 이헌재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데요. 당장 이력서하고 레포트를 써서 내일 아침 가지고 오세요.”
“왜?”
이미 그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이회창의 낙방으로 낙심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DJ와의 대화를 설명했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정대철이도 나한테 레포트를 하나 써오라 하던데...그래서 준비해 둔 게 있어. 대철이한테 주지말고 너한테 줘야겠구나.”
목소리에서 어느덧 힘이 솟아 있었다.
“물론이다 마다요.”
다음날 아침 10시였다. 여의도 맨하탄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레포트는 간결했다. A4용지 8장 분량이었다. 잠깐 들춰봤다. DJ 마음에 쏙 들게 만들었다. 정치적 문제를 많이 다뤘다. 예컨대 4쪽 쯤엔 IMF사태 6개월 뒤에는 전국적인 소요가 일어날 거란 얘기도 있었다. 내가 아는 DJ는 그런 보고를 좋아한다. 역동적이며 변수가 많은 보고서 말이다. 나는 장성민 비서를 찾았다.
“이 문건 어제 총재님이 지시한 거야. 얘기 들었지?”
“응, 근데 총재님한테 올라가는 레포트가 매일 산더미처럼 책상에 올라와.”
“야 부탁인데 오늘은 싹 치워버리고 이것만 책상위에 올려놔.”
여기서 잠시 이헌재씨와 나의 관계를 더듬어 보자.
80년대 중,후반쯤이다. 당시 한신평(한국신용평가주식회사)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기업 신용도 평가 회사다. 정부 주도로 만든 회사였던 거 같다. 어느날 그 회사에 다니는 대학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중에 국민일보 경제부장을 했던 최회봉이다. 최선배가 자기네 회사 사장을 좀 만나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본 즉 재미있었다. 최 선배는 한신평 정보수집 담당 부장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 사장이 어느날 ‘정치부 기자 중에서 똑똑한 놈 좀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는 거다. 그 사장이 바로 이헌재 씨다. 그러자 최 선배는 나를 추천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중앙일보 총리실 출입 기자였다. 그러나 정말 피라미였다. 똑똑하지도 못했다. 실은 최선배도 자기 사장한테 거짓말을 한 거다. 자기가 아는 기자를 붙여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다. 자기가 어려울 땐 내가 자기 얘기를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이헌재씨를 알게 됐다.
첫 만남은 폭탄주였다. 강남의 허름한 룸 싸롱이었다. 그는 마담을 부르더니 메뉴에도 없는 안주를 시켰다. 계란 10개를 삶아 오라 했다.
“요즘 정대철이가 이렇게 술을 먹는데...계란 단백질 때문에 몸이 덜 망가진다나?”
폭탄주 한잔에 계란 하나를 까먹었다. 노른자는 버리고 흰자만 먹었다. 열 댓잔은 마셨던 것 같다. 그저 마시기만 했다. 첫 만남은 그랬다.
이후에도 언제나 폭탄주였다. 이런 저럼 모임에 나를 끼어 주었다. 경기고 후배들과의 술자리에도 끼어주었다. 경기인맥들을 그래서 알게됐다. 그때마다 나는 그에 대해 놀라기 시작했다.
우선 술 실력이다. 나도 술께나 마셨다.하지만 당할 수가 없었다. 술이 어디로 들어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미 그때부터 코끝이 벌겠다. 잘 취하지도 않았다.
두 번째 놀 란 건 그의 말이었다. 어눌하지만 메시지가 강했다. 뭘 그렇게 아는 게 많은지 정말이지 놀라웠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르는 게 없었다. 백과 사전이었다. 정치부 기자보다 정치 얘기를 더 많이 알았다. 툭하면 “대철이한테 들었는데..”했다. 정대철 말이다.
그는 언제나 좌중을 압도했다. 압도당하지 않을 사람은 부르지도 않았다. 그를 아는 사람이면 내 얘기가 “맞다” 할 거다.
나는 의아했다. 이런 사람이 왜 공직을 관뒀을까. 들은 얘기는 있었다. 너무 잘나서 주변에서 내쳤다는 거였다. 나라 할 지라도 그와 경쟁관계라면 그를 씹었을 거다. 경쟁이 안될 만큼 우수하니 말이다.
우리는 술친구였다. 부담 없이 어울렸다. 이헌재 씨는 얼마 뒤 한신평 사장을 그만뒀다. 증권감독원 상임위원으로 갔다. YS정권 때였다. 상임위원 임기는 2년인가 3년인가 였다. 임기가 끝나갈 때 였다. 그런데 연임을 안 시켜주려 했던 것 같다. 그가 나를 보자고 했다. 연임할 수 있게 도와달라 했다.
그런 부탁을 한 이유가 있다. 많은 인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YS의 차남 김현철과 친한 사이였다. 고등학교 1년 선후배다.
그러니 정권내 다른 사람들도 나의 부탁을 잘 들어줬다. 그때는 정말이지 나도 잘나갈 때였다. 김현철 씨에게도 그의 연임을 부탁했던 거 같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그는 연임에 성공했다. 굉장히 고마워했다. 많지 않지만 술 먹으라고 용돈도 줬다. 그냥 그 수준이었다. 고맙다고 왕창 쥐어줄 사이가 아니었다.
그가 내게 돈을 준 건 20여년 동안 세 번이다. 그때가 한번, 국민의 정부 장관 할 때 두 번이다. 떡 값이었다. 이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혹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돈이라도 많이 받았을걸로 오해할까봐서다.
술도 마찬가지다. 많이 얻어 먹지 않았다. 남이 사는 술자리에 내가 끼었을 뿐이다. 물론 그가 술을 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많지 않았다. 내가 술값을 낸 적도 몇번 있다. 그가 참여정부 부총리가 되기 직전이었다. 중앙일보 김수길 선배와 기자 댓 명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김 선배 단골인 사직동 밥집이었는데 술값이 1백30만원 나왔다. 내가 냈다. "노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느냐"며 말이다. 객기를 부렸다.
우리 둘의 관계는 그랬다. 그래서 편했다. 그래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나이차는 많지만 더러 형이라고도 불렀다. 나를 무척 좋아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DJ에게도 그를 추천했던 거다. 무모함을 무릅 쓰고 말이다.
DJ가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헌재씨도 합류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김용환사람으로 알았다.그가 추천한줄 알았다.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도 실상을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회창 자문위원 했던 사람이 왜 여기 와서 일하느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코드가 달랐던 거다. DJ주변인물로부터 엄청 씹혔다.
그러나 시간 문제였다.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얼마 뒤 그는 금융감독위원장에 내정됐다. 증권감독위 은행감독위등 세 군데가 금감위로 통합됐다. 축하 만찬이 있었다. 취임 3일 전인가 그랬다. 힐튼 호텔 중식당이었다. 친한 사람 몇이 모였다. 역시 폭탄주가 돌았다. 이헌재씨가 내게 말했다.
“연홍이 고마워. 내일 모레 취임하니까 내가 전에 적을 두던 증권감독위등 세군데에서 퇴직금이 나와. 그거 너 주께.”
“꽤 많을 턴데요.”
“좀 될 거야.”
“그냥 쓰세요. 돈 필요 하실 텐데요.”
“아니야, 내 주께.”
물론 주지 않았다. 주었어도 받지 않았겠지만 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게 우리 둘의 관계였다. 그만큼 서로 부담이 없었다.
그는 경제계 최고 실세였다. 금감위원장을 거쳐 경제 부총리가 됐다. IMF 극복의 공신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취재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나에게 특종을 안줬다. 내 나름으론 생각이 있었다. 큰 물건은 크게 한번 써먹는 거라 생각했다. 언젠간 걸리겠지 했다.
그러나 그건 내 마음속의 핑계였다. 기자로서 제 할일을 안 하는 거에 대한 자기 합리화였다. 실은 그보단 그와의 관계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싶어서 였다. 내가 경제 부총리라면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는 기자와 자주 만나겠는가. 결국은 피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취재하지 않았다.
난 그에게 단 한 번의 민원을 했다. 믿기지 않을 게다. 경제 부총리 한테 얼마나 많은 민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난 하지 않았다. 딱 한번 말고는 말이다. 나의 친척 한사람이 있었다. 그가 은행에서 구조조정을 당하게 됐다. 나이 순으로 자르던 판이었다. 그래서 이헌재 장관에게 부탁했다. 다른 산하기관에 내정이 되어 있는데 전화 한통화만 해달라고 말이다. 그는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았다. 어떻게 안됐는지 설명도 없었다. 잊어 버리고 만 거 같다. 그래서 나도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민원을 잘 안 들어준다. 장점이다. 그러나 보답을 모른다. 단점이다. 언제나 자기의 실력만을 믿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오늘의 자기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란 게 그런가.
특히 그 나마의 장점도 이제는 없어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재록 과의 관계 때문이다. 내가 잘못 알았었나 싶다.
그가 참여정부에서 재경부 장관을 할 때인 것 같다. 재경부의 한 국장 선배가 보자고 했다. 친형처럼 지내는 선배다. 그도 경기고 출신이다. 따지자면 이헌재 사단이다.
“연홍아, 부탁 좀 하자.”
“뭔데?”
“이 부총리를 니가 한번 따로 만나봐. 그리고 김재록이 좀 그만 만나라고 해. 소문이 아주 나빠. 물론 소문 가지고 이러는 건 안 되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러냐. 그래서 내가 말씀 드렸어. 만나지 말라고. 그런데 반응이 없어. 소문에 신경 쓸 필요 없다는 투야.”
“김재록이 누구야?”
“정치판에 있었다던데 너 몰라?”
“이한동이 정책 특보했던 그 김재록이?”
“응.”
“그 친구가 왜 이 부총리랑 붙어다녀?”
“너 아더 앤더슨이라고 모르니? 투자자문회사. 얘기하자면 길어. 그건 니가 알아봐. 어쨌든 좀 멀리하시라고 얘기 좀 해. 니 얘기는 들으실 거야.”
그래서 알아봤다. 경제부 기자한테 물었다. 같은 얘기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어울린다는 얘기였다. 난 김재록이가 그 정도로 큰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른 김재록인 줄 알았다.
그가 정치판에 들어온 건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 즈음이었다. 어느 날 기자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곤 자기가 이한동 정책 특보라고 소개했다. 외대를 나와 미국에서 유학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한동을 대통령 만들자고 했다. 고등학교 후배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왔다. 나도 친밀하게 대해줬다. 그는 아이디어가 많았다. 아니 넘쳤다. 그러나 정석보단 변칙이었다.
그런데 이한동이 탈락했다. 그러자 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나를 찾아왔다. 기아자동차 이사로 간다는 거였다. 의아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럴 수 있나 싶었다. 속으론 기아자동차가 웃긴다고 여겼다. 그때 진념씨가 기아자동차 사장을 할 때다. 그래서 그렇게 연결되나 싶었다.
그 김재록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헌재씨와 연결된단 말인가. 난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내게 이런 말도 해줬다. 김재록의 학력이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 공고 졸업이 전부라고 했다.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르던 이헌재씨였다. 그런 그가 어째서 그런 자와 어울린단 소문이 돈단 말인가. 뭐가 부족해서 말이다. 실력 하나로만 오늘까지 온 사람이.....그 때문에 민원 하나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사실이라면 말이 안됐다.
얼마뒤 이헌재 장관을 만났다. 역시 술자리였다. 폭탄주가 몇바퀴 돌았다. 다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술 기운에 얘기 해야겠다 생각했다.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김재록과 친하신가요?”
그러자 그는 눈길을 돌렸다. 그리곤 폭탄주 잔을 들었다. 벌컥벌컥 마셔댔다.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긴 말씀 드리진 않겠습니다. 소문이 나쁘다고 합니다. 자주 만나시는 사이라면 이제 그만 만나시지요.”
“그저 아는 사이야.”
“만나지 마세요. 저를 계속 보시던지 김재록을 계속 보시던지 둘 중 하나를 고르세요.”
대답이 없었다. 폭탄주만 마셨다. 그 이후로 난 이헌재씨를 따로 보지 못했다.
여러 명 모인 술자리에서 한 번인가 본 적이 있다. 나름으론 여러 짐작을 했다. 왜 나를 안보려 할까를. 아마도 내 얘기를 김재록이한테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김재록이 나를 보지 말라 했을 거다. 자기의 과거 모습을 알고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초라했던 그 모습을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기자이니 말이다. 결국 이헌재씨는 나를 안보기로 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 지금의 김재록 게이트가 그 궁금증을 풀어줄 지 모르겠다.김재록 게이트를 지켜보는 이유다.그러나 다른 이유가 없었으면 한다. 이헌재씨가 무사하길 바래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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