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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와 하루노리 '인사법'의 같지만 다른 점

[김진홍의 정치in] <16> '직언'을 중시한 하루노리

김영삼(YS) 정부때 정치권에서 유행했던 소설이 있다. 일본 작가 도몬 후유지가 쓴 '우에스기 요잔'의 한글 번역판 '불씨'가 그것이다.

YS가 대통령 임기중 개혁을 강조한 것과 같이 이 소설도 개혁이 주제다. 소설은 1700년대 후반 일본 에도시대가 배경이며,요네자와 번의 우에스기 하루노리라는 번주가 주인공이다. 양자 신분이면서 17세에 번주가 된 하루노리가 갖가지 개혁작업을 통해 파탄지경에 빠져있던 요네자와를 부흥시키는데 성공한다는 게 큰 줄거리다.

하루노리의 개혁은 노무현 정부와 유사점이 있다. 소외됐던 인사들을 중용한 점이 대표적이다. 소설에서는 '찬밥파'로 해석돼 있다. 하루노리는 기존 제도에 익숙해 있는 인사들의 경우 기존의 것들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기존 제도에 불만을 품고 조용히 지내고 있던 능력있는 찬밥파들을 최측근으로 전격 기용했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과연 잘 될까라는 의문을 품거나 반대했던 것은 물론이다. 하루노리는 그 당시엔 획기적인 개혁작업들을 끈질기게 추진해 주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이들의 불안을 해소시켰다.

노 대통령도 집권 초기 첫 내각을 구성하면서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종전까지 눈길을 끌지못했던 지방대학 교수와 전직 군수 등을 장관으로 발탁해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학력도,서열도 파괴됐다. 청와대 참모진도 비슷하게 짜여졌다. 고건 총리를 제외하고는 김대중(DJ) 정부를 포함해 이전 정부에서 소위 '잘 나가던' 인사들이 중용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DJ 정부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까지 지낸 한 인사는 현 정부 들어 가까스로 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고,한 청와대 비서관은 지금도 한직을 맴돌고 있다. DJ 정부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지금도 "단지 'DJ맨'이라는 이유로 현 정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말한다.

지난 정부에서 '잘 나가던' 인사가 현 정부에서도 잘 나가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우 DJ 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내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거쳤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DJ정부 시절 재경부 차관보를 역임한 뒤 현 정부 들어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고,DJ 정부때 청와대 행정비서관을 지낸 권오룡씨는 현재 중앙인사위원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잘나가는 경우는 소수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주류세력(main-stream)을 만들려는 노 대통령 의지의 결과다.

이런 인사방식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루노리도 그러했지만 새로운 개혁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인사들을 중용할 필요가 있다. 지연과 학연을 이용해 승승장구한 인사들이 계속 좋은 자리만 옮겨다니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사회통합도 저해된다. 능력은 있지만 '줄'이 없어 한직으로만 맴도는 인사들이 늘어나면 이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사회불안이 가중된다. 어느 조직에서든 이따금씩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야간 정권 교체가 자주 행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에도 이런 근거가 깔려있다.

'찬밥파' 중용은 노 대통령과 하루노리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런 인사를 통해 좋은 결실이 있어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지적받고 있는 노 대통령이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아니면 어려운 선거에 출마했었다는 이유로 정부산하기관까지 무차별적으로 낙하산 인사,보은인사를 지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식상한 일이 됐지만 '오기인사'를 계속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북한의 10.9 핵실험을 계기로 이번에 단행된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 내용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통일부장관에 내정된 이재정 평통부의장과 환담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개혁의 방법론을 보면 노 대통령과 하루노리의 차이점은 상당하다.

하루노리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개혁은 사랑과 위로가 없으면 되지 않는다. 가령 재정재건을 위한 개혁이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위로가 결여되면 그 개혁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개혁과정에서 고통받는 계층을 따뜻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개혁의 목적 등을 주민들에게 상세히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흑백논리로써 다그치는데 주력했다. 일부 현직 장관들이나 청와대 참모들이 국회에서 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이상한 풍토도 생겨났다. 또 미래로 나아가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 보다 과거사 들춰내기가 주 관심사인 것처럼 비쳐졌다. 이 때문인지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대한 10가지 인상을 묻는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 '혼란'(51.5%),'퇴보'(36.4%),'어두움'(27.7%) 등이 1,2,3위를 차지했고,'자유'(20.3%),'밝음'(9.2%),'발전'(8.8%),'안정'(5.6%),'풍족'(3.7%) 등 긍정적인 인상은 적었다.

하루노리는 참모들의 직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겼지만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코드가 딱 맞아서인지 직언하는 참모를 보기 힘들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무조건 나쁘다거나,뭘 모르고 비판한다면서 대통령 보호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서민경제에 대한 접근방식도 차이가 있다. 현 정부 들어 서민들은 생활고로 더욱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현 집권세력은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조만간 서민생활도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노리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맛있는 말 보다 한 그릇의 밥을,그것도 내일 먹을 밥이 아니라 오늘 먹을 밥을 마련해 줘야 한다."

하루노리는 노 대통령 뿐아니라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적지 않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김진홍 국민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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