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왜 부자급식 반대하면서 부자감세 지지하나"
[전문] 이준구 "무상급식은 결코 부자급식이 아니다"
이준구 교수는 20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부자급식’이란 선동적 표현을 써가며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머리가 더욱 갸우뚱해진다. 그들은 대체로 ‘부자감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양심상 부자급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부자감세도 당연히 반대해야 마땅한 일"이라며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되뇌고 있는 재정 건전성의 관점에서 보면 부자감세가 훨씬 더 큰 위협인데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노골적으로 지원사격하고 있는 MB정권에 대해서도 "만약 이 정부의 재정운영이 알뜰하기 짝이 없어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다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주장이 별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을지 모른다"며 "그러나 거둘 수 있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펑펑 쓰고 있으니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드는 재원은 충분히 마련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무상급식의 실시가 재정 건전성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이라며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시나리오를 짜서 이것을 실시하면 마치 나라 살림이 거덜이라도 날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무상급식 하나로 거덜 날 나라 살림이라면 쓸모없는 토목공사에 쓴 수십조원으로 이미 거덜이 났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 결코 아니다
겉으로만 보면 무상급식 문제와 관련된 논쟁은 이념적 지형이 정반대로 뒤집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진보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부잣집 자제에게도 공짜점심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평소 주장하는 바가 부자들의 이익을 더 크게 만들어 주자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부자급식’이란 선동적 표현을 써가며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머리가 더욱 갸우뚱해진다. 그들은 대체로 ‘부자감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왜 부자감세는 지지하면서 부자급식에는 반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양심상 부자급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부자감세도 당연히 반대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되뇌고 있는 재정 건전성의 관점에서 보면 부자감세가 훨씬 더 큰 위협인데 말이다.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다.”라는 말이 선동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상급식 프로그램의 실시에 따르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문제를 완전히 무시한 말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당연히 추가적인 조세부담이 불가피할 것임을 알고 있으며, 누가 얼마만큼 더 부담해야 할지도 예측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은 그리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일부 부유층에 의한 탈세 때문에 월급쟁이의 지갑만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함에 따라 연간 2조원 정도의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면 아무래도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의 부담이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이들이 공짜점심에서 얻는 혜택보다 추가적인 조세부담으로 인해 지불하는 비용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이 현실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지금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이 올바른 이념적 지형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부유층에게 돌아갈 추가적인 조세부담 때문에 이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들은 부자급식이란 말로 현실을 왜곡하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은 부자급식이 아니라 바로 ‘부자증세’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무상급식과 재정 건전성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무상급식 실시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효과 없는 부자감세를 철회하기만 해도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부자감세를 무상급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재정 건전성이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상급식에 쓸 돈이 있으면 그런 사업에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무상급식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다는 말이 아주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샅샅이 뒤져보면 무상급식보다 더 우선적인 고려가 필요한 과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논점을 교묘하게 왜곡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전략적 논리에 불과하다.
일단 무상급식 문제가 이슈로 등장한 이상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는지의 여부는 부차적 차원의 고려사항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정부의 정책을 그런 관점에서 논의하기 시작하면 어느 것 하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논의 대상이 된 정책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과제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의 대상이 된 정책을 헐뜯기에 이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다.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올바른 접근방법은 정부가 현재 그것보다 ‘덜’ 시급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일이다. 일정한 재정지출의 범위 안에서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이런 방법밖에 쓸 수 없다.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현재 정부가 이보다 우선순위가 더 낮은 과제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무상급식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재원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뻔한 얘기라 할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지만, 4대강사업 하나만 접었어도 10년 이상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는 재원이 마련될 수 있었다.
만약 이 정부의 재정운영이 알뜰하기 짝이 없어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다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주장이 별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둘 수 있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펑펑 쓰고 있으니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드는 재원은 충분히 마련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이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기반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해 무상급식의 실시가 재정 건전성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추가적인 조세부담을 지우게 만들어야 할지 아니면 불요불급한 사업을 접게 만들어야 할지의 선택뿐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시나리오를 짜서 이것을 실시하면 마치 나라 살림이 거덜이라도 날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무상급식 하나로 거덜 날 나라 살림이라면 쓸모없는 토목공사에 쓴 수십조원으로 이미 거덜이 났어야 했다.
나는 지난번에 쓴 글에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가치관 충돌의 문제라고 지적한바 있다. 만약 부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세금 부담을 안기는 것이 싫다면 무상급식에 반대해야 한다. 또한 무상급식보다 4대강사업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면 무상급식에 반대해야 한다. 나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구태여 가치관을 바꾸라고 강요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부자급식이어서 반대한다는 말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상급식의 본질은 부자급식이 아니라 부자증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상급식을 하면 재정 건전성이 위협을 받을 수 있어 반대한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상급식을 실시한다 해서 재정 건전성에 위협이 생길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실과 동떨어져 있는 주장으로 논점을 흐리는 것은 건전한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어린이들에게 점심을 주기 위해 얼마간의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기꺼이 그 부담을 짊어질 용의를 갖고 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조세부담쯤은 얼마든 감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그 추가적 조세부담이란 것이 서민의 허리를 꺾을 만큼 무거운 것도 아니다. 입으로만 상생, 친서민을 부르짖으면서 부유층에게 돌아갈 약간의 추가적 조세부담에도 눈살을 찌푸린다면 누가 그 말의 진정성을 선뜻 믿으려 하겠는가?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