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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제 터키작가 파묵, 노벨문학상 수상

“서구문명 출신 아닌 작가로 노벨상 수상해 행복하다”

‘빨간 색’과 ‘눈’, ‘터키와 반터키’로 세계의 문명과 문화 및 역사에 대해 화두를 제시해온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54)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기대를 모았던 고은 시인은 또다시 좌절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문화간 대립과 복잡성에 대한 새로운 상징 발견한 위대한 작가”

13일 <AP통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터키의 오르한 파묵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림원은 이날 발표에서 “파묵이 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찾는 과정에서 문화의 충돌과 혼합의 상징들을 발견했다”며 "파묵이 성장하면서 전통적인 환경에서 서구화된 생활양식으로의 변화를 경험했으며, 첫 소설을 통해 3세대에 걸친 가족 연대기를 통해 이런 경험을 다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파묵은 노벨상 수상이 발표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비서구문명권의 작가로서 노벨상을 수상하게돼 한없이 행복하다”고 밝혔다고 통신들은 전했다.

오르한 파묵 ⓒ 아랍온라인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의 갈등을 서사구조 안에 매혹적으로 풀어놓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파묵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국내에도 <하얀성>, <내이름은 빨강> 등 그의 대표작들이 번역돼 있다.

파묵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났으며 23세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98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9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등 다양한 국가에서 문학상을 수상했다.

파묵은 터키의 역사와 일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왔으며, 특히 억압적인 터키의 사회문화에 대해 이를 정면에서 고발하는 등 도발적인 글쓰기를 통해 ‘반터키’를 통한 ‘진정한 터키 찾기’에 앞서온 대표적인 터키내 반체제 작가로 꼽힌다.

그는 형식과 내용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통해 터키 문화를 충실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터키문학계는 "이는 파묵이 성장하면서 전통적인 가족 환경에서 서구화된 생활양식으로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경험을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자신의 작품에 적절하게 구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1952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파묵은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를 입고 독서에 몰두하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이스탄불의 명문 고등학교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한 뒤 이스탄불 공과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하지만 자신이 가진 이야기꾼의 재능을 뒤늦게 자각하고 작가로 인생을 전환했다.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던 파묵은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첫 소설 <케브데트 씨와 그의 아들들>로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두 번째 소설 <고요한 집>(1983)으로 마다랄르 소설상의 영예를 안았다.

파묵이 전세계에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85년에 발표된 세 번째 소설 <하얀 성>이 <뉴욕타임스> 서평에서 호평을 받고 터키의 대표적인 문제작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혹서>(1990) <새로운 인생>(1994) <내 이름은 빨강>(1998) 등 문제작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소설 <눈>과 <내 이름은 빨강>은 터키어로 쓰인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전세계 40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출판됐고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진보적 성향의 반체제인사

진보적 성향이 강한 그는 작년 스위스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티키 정부의 쿠르드인과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비판했다가 터키 정부로부터 기소를 당하면서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로 부상했다.

그가 기소당하자 각종 문인단체가 터키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등 유럽문단 전체가 들썩이기도 했으며,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인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마르케스, 귄터 그라스를 비롯해 움베르투 에코, 카를로스 푸엔테스, 후안 고이티솔로, 존 업다이크, 마리오 리오사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대가들이 오르한 파묵의 기소 철회를 요구하는 편지를 터키 정부에 전달했고, 재판은 현재 연기된 상태다.

파묵의 작품들은 주로 갈등의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문명과 문명의 충돌, 역사적인 필연성에 저항하는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이 그의 소설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다.

그의 소설은 각 문화의 개별성과 고유성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며, 그 속에는 항상 소중히 간직되고 지켜지며 보호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세계의 문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들과 충돌하면서 섞이고 변하는 가운데 진보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수천 년에 걸친 문명간 갈등의 역사가 바로 진보의 과정이라는 것이 파묵의 메시지고,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발적인 도전 이후 문화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온 ‘국제화와 지역성’이라는 화두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대표작인 <내 이름은 빨강>은 터키에서 출간 후 45일 만에 11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세우고, 터키 문학사의 대표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 소설은 1591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세밀화가 엘레강스가 나흘 전 억울하게 살해당한 뒤 버려진 사연을 들려주면서 복잡다단한 사연을 풀어나간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유머로 아름답고도 슬픈 터키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슬람의 전통적 화풍에 유럽 기법을 도입하려는 과정을 둘러싼 이슬람 세밀화가들 사이의 이견, 낯선 화풍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살인사건 등이 톱니바퀴처럼 물리면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32개국에서 번역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최우수 외국어 문학상’을 받았다.

<눈> <하얀 성> <새로운 인생> 등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으며 이들 작품들은 대부분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의 충돌이 빚어내는 독특한 무늬를 흥미로운 서사구조에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림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작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연기된 것은 터키인이 인종 문제로 약 3만명의 쿠르드족을 살해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1백만명의 아르메니아 민족을 살상했다는 사실을 파묵이 언급함으로써 국가모독죄로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한림원은 고심을 거듭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파묵은 최근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순수박물관> 집필에 몰두하고 있으며, 10권 정도의 장편소설 소재에 천착하고 있으며, 현재 강의 중인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중동·아시아학과에서 5년간 교수로 일할 예정인데다 노벨상 수상으로 향후 분주한 일상사와 작품활동을 보낼 예정이다.

파묵은 작년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 및 2002년 작 <눈>의 번역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모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한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잘 안다"고 발언, 그동안 한국전쟁 등 끊임없이 교류를 거듭해온 한국과 터키의 가까운 관계를 떠올리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그는 한국 방문 시 “세상의 모든 불화가 민족주의에서 발원한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터키 내의 민족주의나 쿠르드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항상 비판해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또 터키가 동서양 문명의 접점으로 일컬어지는 데 대해 “접점이라는 의미는 동양도 서양도 아니라는 의미”라며 “부디 서양인이 되라, 동양인이 되라 주문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국문화계를 둘러본 뒤 “한국의 동양화 전통에 놀랐다”며 “터키에는 오히려 오스만제국 시절의 전통예술이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올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40여 명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알려졌던 파묵은 노벨상 수상으로 1천만 스웨덴크로네(1백40만달러)의 상금을 받게 됐다. 시상식은 노벨상 제정자인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오르한 파묵

-1952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
-이스탄불 대학에서 저널리즘과 건축 전공
-1979년 첫 소설 <제브뎃씨와 그의 아들들>로 오르한 케말 소설상 수상
-1984 프랑스 유럽발견상ㆍ터키 마다랄르 소설상 수상
-1985년 세 번째 소설 <하얀 성>'발표
-1985~88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
-1990년 소설 <흑서> 출간
-1994년 소설 <새로운 인생> 출간
-1998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ㆍ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상ㆍ아일랜드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 수상
-2005년 반체제 발언으로 터키 정부로부터 피소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임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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