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줄서 겨우 '배추 3포기' 구매
"관악구민이 몇명인데 겨우 5천포기 팔면서 생색?"
배추를 사려고 몰려든 시민 500여명이 인도를 따라 길게 줄을 서서 며칠째 사막에서 헤매다 우물을 발견한 듯한 눈빛으로 한쪽에 성인 여성 어깨 높이로 쌓여있는 배추 더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전 11시께 판매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줄을 선 순서대로 간이 판매대로 나와 1만4천원을 냈고, 자원봉사를 맡은 시장 부녀회원이 배추 3포기가 들어간 망을 건네주자 겨우 갈증을 풀었다는 듯 하나같이 환하게 미소지었다.
5시간 가까이 줄을 선 끝에 첫번째로 배추를 산 신점순(64.여)씨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까봐 걱정돼 새벽부터 줄을 섰다. 배추 값이 너무 비싼데 시가의 절반 가격에 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배추를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심봤다!. 배추 심봤다!"라고 외쳐 사람들을 폭소케 했던 조애경(50.여)씨는 "추석 이후로 처음 배추를 샀다. 아껴 먹으면 열흘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다. 줄이 길어 못살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참 다행이다"고 말했다.
맞벌이인 아들 부부 대신 나왔다는 정안순(76.여)씨는 "여섯 식구라 5일 정도밖에 못 먹을 양이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오늘 못 사는 사람도 많을 텐데 미안한 마음도 든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부 시민은 판매량이 부족하고 서울시 측의 판매 방식이 서투르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림동에 사는 주부라는 진성심(45.여)씨는 "관악 구민이 몇명인데 겨우 2천700포기 판다는 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또 대다수 구민은 오늘 특별판매가 이뤄지는지 알지도 못했을 거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줄을 선 시민 대부분이 배추를 살 수 있었지만 길게 늘어선 줄이 몇명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많은 시민이 자기 차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에서도 오전 11시부터 배추를 팔기 시작해 1시간 40분 만에 5천여포기가 동이 났다.
배추가 쌓여있는 시장 남문 입구부터 큰길까지 300m가량 줄을 선 시민은 배추가 떨어질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배추를 못산 주부 안영자(64)씨는 "언론에 떠들석하게 공지까지 했으면 좀더 많은 양을 가져다놨어야 했던 것 아니냐"며 못내 아쉬워했다.
이곳의 판매도 신원시장과 마찬가지로 무난하게 이뤄졌지만 배추가 맘에 안 든다며 바꿔달라는 일부 시민과 시장 조합원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완전히 장삿속이다. 속았다" "사기 싫으면 사지 마라"는 고성이 오갔다.
정순자(70.주부)씨는 "돈을 주고서 배추를 만져보니 속이 텅텅 비어서 바꿔달라고 했다. 이렇게 속도 안 찬 배추를 1만8천원씩이나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자식들 김치 담가주려고 오전 7시부터 나와 기다렸는데 영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이에 시장 조합원들은 답답했는지 끝내 배추 한포기를 반으로 갈라 전시해놓기도 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