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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통권 놓고 갈팡질팡하는 한나라당

[김행의 '여론속으로']<9> 이슈 선점-관철력 결여

현재 한나라당 지지율은 열린우리당의 두 배를 웃돈다. 그런데도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순조롭게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잖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열린우리당에 대한 반사이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무능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마침 어제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다. 평소 친분 있는 고위공무원, 기업체 대표, 그리고 국방부 소속 고급장교와 자리를 함께 했다. 화제는 단연 한반도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럼즈펠드 미 국무장관이 윤광웅 국방부장관에게 ‘2009년 작통권을 이양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동시에 방위비분담금 50 대 50을 강력히 희망했다. ‘equitable(공평한)’이라는 외교용어를 사용하면서.

먼저 국방부 고급장교는 “현재 대한민국 군인들 중에 작통권 이양을 찬성하는 군인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국방장관이나 군 고위 장성들 중 어느 누구 하나 대통령께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함께 있던 고위 공무원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가려고 하는 데 등 밀어준 격”이라며 한국 측의 전략부재를 탓했다.

기업체 대표는 “작통권 이양에 따른 방위비 부담으로 우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밥숟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내 주변의 반응과는 달리 국민여론은 작통권 환수에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은가 보다. KBS의 15일 조사를 보면, ‘2009년 이전에라도 환수해야‘ 24.1%, ‘계획대로 2009년 ~ 2012년 사이 환수해야‘ 27.4%로 합해 51.5%가 환수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2012년 이후' 24.9%, '환수 말아야' 11.6% 로 '반대'는 36.5%였다. 조사기관에 따라서는 ‘환수 찬성’이 74%나 나오는 경우도 있다.(경향신문 8월 11자 보도)

그런데 분명히 집고 넘어 갈 것이 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양’이라는 단어 대신 ‘환수’라는 단어로 질문했다는 사실이다. ‘이양’은 ‘부담이 되더라도 넘겨준다’는 뜻이고 ‘환수’는 ‘당연히 찾아올 것을 되찾아 온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이런 단어로 질문하면 당연히 ‘찬성’이 더 많아진다. 여론조사 자체에 ‘설문의 오차’가 있었다는 말이다.

또 하나. 매우 전문적인 사안인 경우 ‘설문조사’라는 방식 자체가 부적절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전화설문조사는 5분~10분 이내에 모든 질문을 끝내야 한다. ‘작통권’문제는 너무 전문적인 사안이라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전화를 통한 설문조사 대상으로 적당치 않다. 응답자들은 ‘작통권 환수=자주 국방’이란 지극히 감정적인 대답을 내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하튼 승부사 노대통령은 이슈 선점에 성공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20%가 채 못 되는 상황에서 ‘작통권 환수’에 대해서만큼은 과반수의 찬성을 끌어냈으니까.

한나라당은 여지없이 그 고질적인 무능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작통권 환수를 반대하던 한나라당의 목소리도 수그러들었다. 당내 여의도연구소의 조사에서도 무려 84%가 ‘작통권 환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오자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여론조사와 다름없이 작통권 환수에 대한 찬반 조사를 반복했을 뿐이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작통권 환수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국민비용부담의 증가’를 지적하는 쪽으로 대여 공세 수위를 낮추기로 했다고 한다.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정부여당의 명분론에 밀려 ‘사대주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작통권 환수를 찬성하면 자주, 반대하면 종속’이라는 노대통령의 논리에 처음부터 말려들고 만 것이다.

작통권 환수는 자주나 종속이라는 민족적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국가경제에 결정적인 실리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한나라당이 노대통령이 쳐 놓은 덫에 결렸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행씨는 한나라당은 ‘작통권 이양’에 대해 선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작통권 이양’에 반대하는 대다수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어찌된 일인지 한나라당은 당내 대선주자들과도 목소리가 다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은 이구동성으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가장 진보적이라는 손학규조차 “미국을 붙들어 놓는 것이 우리의 생존전략이다. 이 정부는 도무지 다자간 집단안보가 국제사회의 일반적 추세라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자주’를 내세우며 또 한 번 분열과 대중선동의 정치를 획책하고 있다”며 목청을 돋우었다.

‘바지 사장’의 한계도 분명히 있어 보인다. 의원들마다 차기 유력주자들에게 줄서기 바쁘니, 누가 강재섭 대표의 말을 듣겠는가.

참 한심한 것은 이럴 것이면 왜 차기 대선 1년 반 전에 대권과 당권을 분리했냐는 것이다. 당의 생존과 정체성확보, 대여투쟁보다 대권주자들에 대한 공정한 경선관리가 더 중요했을까? 이건 한나라당 제도 자체의 문제다.

한나라당은 중요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늘 이슈 선점에 밀린다. 이슈 파이팅 능력도 없다. 중대한 사안만 터지면 거대한 몸뚱이가 계파별로 찢겨져 당내 불협화음만 터지고 자중지란만 일으킨다.

당 밖을 상대로 해서는 도무지 통일된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다. ‘부자 몸조심하는 버릇’이 이회창 전 총재 때부터 한나라당의 고질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지지율 40% 가 넘어도 한나라당이 쉽게 집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다.

우리도 능력 있는 야당을 가질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한나라당은 ‘작통권 이양’에 대해 선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책임 있는 야당이어서도 그렇고, ‘작통권 이양’에 반대하는 대다수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차기정권을 담당하고 싶다면 국민들 사이에 공론을 불러일으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국가안보에 진정 문제가 없는 것인지, 국가 경제에 대한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 무엇보다 작통권 환수는 ‘자주’라는 민족적 감정의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근본적 입장에 대해서.

노 대통령의 덫에 걸릴 것이 두려워서, 여론조사 결과에 발목 잡힐 것이 무서워서, ‘작통권 이양’을 ‘뜨거운 감자’로만 치부하며 조심조심만 거듭한다면, 그것은 결국 한나라당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대선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또 한 번의 무능을 드러내고 있다.
김행 여론조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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