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덤핑세일'! 국민만 골병
<뷰스칼럼> "정운찬, 너무 빨리 동화되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 총리도 밝혔듯, 가장 큰 선물은 땅을 파격적 저가로 공급하는 것이다. 얼마나 싸게 주려 하는가. 정부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에 조성가가 평당 227만원인 땅을 30만원에 공급할 용의가 있다고 슬쩍 흘렸다. 이는 충청 일대공단의 분양가가 100만원을 모두 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거의 공짜 수준의 '파격적 덤핑가'다.
유통기업인 롯데가 계열사인 롯데쇼핑·롯데마트·롯데리아의 이전 가능성을 강력 시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유통기업은 물류기지가 필요하다. 세종시 땅을 헐값에 왕창 사들여 물류창고 등으로 쓰면 더없이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들도 지금은 신중한 자세이나, 정부가 정말 파격적 덤핑세일을 하고 나선다면 가만 있을 리 없다. 강용식 한밭대 명예총장이 "이런 식으로 하면 기업들은 땅장사를 한 뒤 빠져나갈 것"이라고 개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제는 '덤핑 세일'의 엄청난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세종시 규모는 2천만평이다. 정부가 발표한 평당 조성가는 227만원이다. 이것을 30만원에 판다면, 평당 얼추 200만원의 손실을 국가가 떠맡아야 한다. 200만원 곱하기 2천만평은 얼마인가. 자그마치 40조원이다. 말 많은 4대강 사업에 들어갈 돈보다 많은 40조원의 막대한 정부 손실이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란 얘기다.
물론 개중에는 녹지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현재 보도로는 LG가 입주시 100만평 이상을 요구하는 등 재계 요구는 덩치가 크다. 새만금의 경우 30%였던 기업용지 비중이 70%로 늘어난 데서도 알 수 있듯, 세종시 역시 기업중심으로 전면 재편되면서 녹지 등 기존도시 계획이 전면 뒤집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 손실이 곧바로 국민에게 전가되진 않을 것이다. 토지를 조성한 공기업 토지주택공사로 전가될 것이다. 과연 토지주택공사가 이 손실을 감내할 수 있을까. 택도 없다.
며칠 전, 토지주택공사는 1천억원어치 채권을 발행하려다가 시장의 외면으로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떠맡아 향후 급속한 부실화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다가 세종시 손실 40조원까지 떠맡는다면 토지주택공사는 완전파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정부가 공기업의 파산을 외면할 순 없을 것이다. 결국 국민돈이 들어가야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세종시 '덤핑 세일'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세종시 입주기업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겠다고 하자, 벌써부터 영·호남 단체장과 정치권, 언론들은 "대한민국에는 세종시밖에 없냐"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쪽을 진정시키려다 하다 보니 저쪽에서 뻥 터지는, 일종의 '풍선효과'다.
이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려면, 각 지역의 혁신도시·기업도시에도 마찬가지 '덤핑 세일' 특혜를 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한 엄청난 국고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세종시를 수정하려다가 국가재정이 파탄날 지경"이란 우려가 이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 투자를 읍소하는 정운찬 총리에게 17일 재계 총수들은 "세종시가 제대로 조성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세종시에만 지나치게 많은 지원이 집중돼 다른 곳에서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한마디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총수들이 보기에도 정부가 온통 발등의 불을 끄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는 의미다.
정 총리는 입각 전엔 자타가 인정하는 경제학자였다. 하지만 지금 정 총리에게선 그런 모습을 찾아볼 길 없다. 정 총리 지인들 사이에선 "정 총리가 너무 빨리 동화(同化)되고 있는 것 같다"는 탄식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 총리가 일정을 접고 자신의 지난 두어달을 꼼꼼히 반추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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