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세종시 때문에 80석 확보했다"
<뷰스칼럼> 다시 불붙은 '한나라 전쟁', 요동치는 정국판도
다시 불붙은 한나라 계파전쟁
이명박 대통령은 2일 정운찬 총리가 촉발시키고 박근혜 전 대표가 정면 공박한 세종시 수정 논란과 관련, "충분한 숙고"란 표현을 사용했다. 측근들을 통해선 "백년대계" 등의 표현까지 사용하며 수정 의지를 밝혀온 이 대통령의 '최초의 공식언급'이다.
"충분한 숙고"란 표현을 친이계는 당연히 세종시 수정 의지의 우회적 표출로 해석한다. 공성진, 차명진 의원 등은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세종시를 수정하자고 주장했다. 정몽준 대표는 당내에 세종시 특위를 만들자고 했다. 정운찬 총리는 총리실에 세종시 수정을 위한 기구를 만들려 한다. 한결같이 '세종시 수정'에 방점을 찍은 주장들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할 얘기는 다 했다"는 것이다. 대신 유정복, 유기준, 이정현, 이성헌 등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표를 대신해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이성헌 의원 같은 경우는 당직까지 내놓았다. 지난 몇달간 찾아볼 수 없었던 삼엄한 '일전불사'의 분위기다.
친이-친박 모두 "계파간 갈등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하나, 분명 계파 갈등의 재연이다.
김종인 "박근혜, 세종시 논란으로 80여명 확보했다"
정가 일각에선 친이-친박 갈등이 재연될 때마다 나왔던 '분당'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내가 만든 당"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 박 전 대표는 애당초 '분당'이란 관심사밖이다. 하지만 정가에선 박 전 대표가 이번에 세종시 문제를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로 규정한만큼 강도가 예전과 다르다며 분당 가능성을 거론한다.
이들이 '분당' 가능성에 주목하는 또다른 이유는 자유선진당 등 충청권 의원들의 동향이다. 충청권은 지금 여야 할 것 없이 세종시에 관한 한, '원안 사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딴 소리를 했다간 험악한 지역여론에 밀려 정치권을 떠날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이계로 분류돼온 충청출신 비례대표 정진석 한나라당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원안 고수 발언에 대한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고수' 발언에 대한 충청권 지지는 압도적이다. 한 예로 <리서치플러스>의 지난달 31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전 대표 발언에 대한 지지도는 충청권(77.1%), 전라권(73.4%), 경상권(60.0%), 강원제주(55.5%), 수도권(49.9%)으로 나왔다. 충청권의 10명중 8명 가까이가 박 전 대표 발언을 지지하고 고마워한다는 얘기다. 충청권에서 박 전 대표 발언 지지율이 이처럼 높았던 전례는 없다.
그러다 보니, '표심'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충청권 의원들은 최근 급속히 박 전 대표에게 경사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진당 일각에서는 "극적 돌파구 없이는 다음 총선에서 선진당이 설 땅이 없을 것"이란 자조적 이야기도 들린다. 그럴수록 이들에게 박 전 대표는 중요한 '대안'이 돼가고 있는 양상이다.
한나라당내 친박계 의원은 50~60명에 달한다는 게 정설이다. 개중에는 물론 김무성 의원처럼 소신껏 세종시 수정을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하지만 소신파는 극소수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여기에다가 20명 가까운 충청권의 선진당 의원 등까지 박 전 대표 발언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
김종인 전 의원은 2일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세종시 논란으로 최소한 의원 80여명의 지분을 확보했다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3국 정립'의 한 축을 차지했다는 의미다.
"과잉충성만 난무", "정운찬 희생양 될 수도"
물론, 여론은 바뀔 수 있다. 정운찬 총리 등 정부여당이 누구도 생각못한 '깜짝 놀랄 대안'을 제시한다면 여론은 급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안이 있었다면 이미 진작에 세종시 문제는 공론화됐을 것이다. 정부여당에서 지금 흘러나오는 대안은 유감스럽게도 아직 '함량미달'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청와대 참모들을 질타하는 소리도 들린다. 한 친이계 인사는 "10.28 재보선을 앞두고 '백년대계' 운운하며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청와대발 보도가 잇따랐고, 그 결과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는 데 결정적 작용을 했다"며 "청와대 참모들에게 과연 정무감각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지금 세종시 논란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과잉충성만 난무할 뿐,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거의 부재하다는 점"이라며 "만약 세종시 수정이 박근혜 전 대표 반대로 무력화된다면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적 타격이 가해지는 것은 물론, 정운찬 총리는 곧바로 낙마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거센 후폭풍을 우려했다.
곤혹스런 민주당...박근혜와의 '야당 헤게모니' 시소게임
한나라당의 거센 내홍에 민주당은 내심 곤혹스런 분위기다. 10.28 재보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국민적 관심사가 한나라당 전쟁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물론 세종시 원론 고수다. 하지만 한나라당 전쟁에서 박 전 대표가 승리를 거두면 대부분의 공은 박 전 대표가 독식할 공산이 크며, 충청 민심도 그렇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한 야당의원은 "세종시 수정이 백지화된다면 '박근혜 7, 민주당 3'으로 공이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민주당 인기는 한나라당 내홍과 반비례 관계에 있다. 한나라당 내홍이 잦아들면, 구체적으로 박 전 대표가 '여당내 야당' 역할을 확실히 하지 못하면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여당내 야당' 목소리를 높이면 민주당은 상대적 소외 상태에 빠져든다. 박 전 대표와 일종의 '야당 헤게모니' 시소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계속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민주당은 '박근혜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구조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민주당이 한나라당 내홍을 마냥 즐기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다간 영원히 구경꾼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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