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침묵의 묘'를 아는 DJ, 그렇지 못한 盧

[김행의 '여론속으로']<7> 김대중과 노무현의 차이

모처럼 TV에 비춰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얼굴이 참 밝았다. 12일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도쿄 피랍 생환 33주년 기념식’에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치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말은 ‘정치에 개입하겠다’의 다른 표현법이다.

DJ의 시각에서 보자. 현재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는 고건 전 국무총리뿐이다. 그의 지지율은 20% 대다. 박근혜, 이명박의 유일한 대적자다. 무주공산이 된 호남을 고건이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지율은 왠지 불안하다. 고건이라는 인물의 동력(動力) 부족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내년 대선까지 지지율을 유지했다 치자. 한나라당 후보와 1 : 1로 붙어야 한다. 그러면 필패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붙어도 진다.

고 전 총리가 여권에 몸담는 순간 선거구도는 동서(東西) 대결로 바뀌고, 고건은 호남 출신 지역후보로 한계지어지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오늘의 고건은 호남 때문에 가능했다. 동시에 호남은 그의 덫이다.

DJ '내가 전면에 나서면 판이 깨진다'

DJ가 사족을 달았다. “한반도 평화에 힘쓸 것”이라고. “사랑하는 동지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을 잘하도록 개인적으로 만나면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게 바로 DJ식이다.

그는 노련하다. 은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했다. 그리고 일단은 숨는다. 숨어야 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치권 전면에 나서면 오히려 판이 깨진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DJ는 본능적으로 권력의 냄새를 맡을 줄 안다. 고건으로는 미심쩍다. 그에게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걸 수는 없다.

12일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도쿄 피랍 생환 33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화해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DJ다. 동서화합은 그의 오랜 정치적 숙원이다. 그래야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기틀이 마련된다. 큰 정치인으로서 욕심나는 대업이다. 필요하다면 ‘DJP 연대’라는 ‘적과의 동침’으로도 정권을 잡은 그다. 그에게 있어 이념은 권력이라는 당위성 앞에서 장식에 불과하다.

게다가 호남은 여전히 그의 영향권에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 각각 몸담고 있는 약 40여명의 동교동계 의원들은 엄연히 현존하는 정치세력이다.

DJ는 판을 읽을 것이다. 고건이냐? 동서연대(東西連帶)냐? 고건 쪽이 대세면 묵인하며 침묵할 것이다. 동서연대로 방향을 잡으면 한나라당이 손잡을 파트너다. 이 경우 그의 역할이 분명해질 것이다.

물론,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다’ 싶으면, 독수리가 매 낚아 채듯 순식간에 결행할 것이다. 그는 여전히 2007년 대선의 상수다.

노무현 "다시 뜰 날 올 것"

DJ의 밝은 표정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8월 6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회동에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근태 당 의장을 면전에 두고 ‘외부선장론’을 피력했다. “큰 배를 지켜라”, “탈당은 없다”라며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전달했다. “언젠가 내가 다시 뜰 날이 있을 줄 아느냐”라며 오기도 부렸다. 정권재창출에 개입하겠다는 속내와 방법론을 다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하다.

‘외부선장론’이라는 것 좀 들여다보자. 고건 전 국무총리, 박원순 변호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에 덜컥 발을 들여놓을 고건이 아니다. 그는 좌고우면하는 정치인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박원순, 정운찬은 본인들도 고사하고 있지만, 막상 나선다 해도 파괴력은 미지수다. 그들은 표를 먹고 살아 온 대중 정치인들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라는 ‘큰배’는 어떤가. 이미 난파된 타이타닉호다. 난파의 상당한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다. 노무현은 ‘국정수행 지지율’ 20%인 최악의 레임덕에 빠진 집권후반기 대통령일 뿐이다.

‘다시 뜰 수 있다’며, 두 번째 로또를 기다린다면 그거야말로 오만이거나 망상이다. ‘정몽준과의 단일화’ 라는 기적 같은 로또 당첨은 ‘노무현이 잘나서’ 보다는 ‘반(反)이회창’ 이라는 민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행씨는 2002년 경선과 단일화 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언술과 승부욕은 지지율 20%대인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무기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엽합뉴스


그가 나서면 나설수록 열린우리당은 정권재창출부터 멀어진다. 그가 입을 열면 열수록 열린우리당은 민심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런데도 그는 전면에 나서는 것을 즐긴다. 말싸움을 좋아한다. 이게 바로 노무현식이다.

한때 그의 달변과 논쟁실력은 그를 청문회 스타로 만들었다. 그의 언술과 승부욕은 2002년 경선과정과 단일화 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다. 그의 남은 임기 1년 반을 그저 인내하며 기다리자는 국민들이 다수인 상황이다.

진정 정권재창출을 원한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철저히 숨어야 한다. 차라리 ‘나를 짓밟고 넘어가라’며 몸을 낮춰줘야 한다. 대신 열린우리당을 살려줘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의 성정은 그렇지 못하다. 김대중이 노련하다면, 노무현은 집요하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DJ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정치를 할 것’이고, ‘정권 재창출에 개입하겠다’는 노무현은 그 배에 탈 선장도 없고 손님도 적어 의미 없는 노젓기만 계속할 것이다. 그래도 노무현은 고집 세게 노를 저을 것이다. 실리보다 명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게 김대중과 노무현의 차이다.
김행 여론조사전문가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27 28
    고미

    빗나간 예언
    고건이 진다는 것은 오버다.
    하나 알고 둘은 모르는 인식의 굴레에 갇혀져 있는 기사다.
    새로운 정치판이 열릴 것이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