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문제냐, 국정원이 문제냐
<뷰스칼럼> '천성관 사태'는 '주관적 정보' 범람의 인과응보
"'수집'과 '분석'의 분리."
국가정보원이 '정보'를 다루는 근본방식이라 한다. 정보를 수집하는 쪽(수집관)과, 이렇게 모인 정보를 분석하는 쪽(분석관)을 철저히 분리해 가장 '객관'에 가까운 '정보'를 얻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엔 어떤 형태로든 호불호 '사감(私感)'이 끼어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어떤 믿을만한 인사에게서 다른 인사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이 '믿을만한 정보'라는 것도 분석관이 따로 분석해 보면, '신뢰도'는 3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국정원쪽 전언이다. 정보를 전해주는 사람의 호불호가 개입되고, 여기에다가 수집관의 호불호까지 덧붙여 전달되기 때문이라 했다.
국정원만 이렇게 수집과 분석을 분리하는 건 아니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언론 정치부에는 '계파기자'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었다. 계파출입을 전문으로 하는 기자의 경우 정보를 수집만 할뿐, 기사는 쓰지 못하게 했다. 계파출입을 하다보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계파이익에 전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파기자는 정보만 물어올뿐, 기사를 쓰는 건 '에디터'가 맡아하는 식이었다.
이렇듯 '카더라 통신'이 아닌, 제대로 된 객관적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다. '천성관 파문'은 한마디로 객관적 정보 결여가 초래한 인과응보다.
李대통령, 골프여행 등 몰랐다 하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한 번도 잡음 없는 인사를 한 적이 없다. 고소영, 강부자 파문에 이어 천성관 파문에 이르기까지 인사가 망사(亡事)였다. 특히 이번 천성관 파문은 '쇄신 인사'라는 타이틀아래 진행된 것이었기에 이명박 정권에 준 타격은 더 크다. 이런 게 쇄신이라면 더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귀국 후 천성관 후보가 건설업자 박모씨와 일본 골프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보고받고 경질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군색한 해명이다. 천성관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은 골프여행 한 건이 아니라, 고가주택 구입, 위장전입, 고급차 리스, 호화쇼핑, 자녀재산 의혹 등 말 그대로 '비리 종합백화점' 수준이기 때문이다.
천 후보의 재산 목록이나 금융거래 내역, 소비행태 등만 점검해도 금방 발견할 수 있는 내역들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앞서 천성관 내정을 발표하며 "문제될 게 없다"고 했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청문회가 끝난 뒤 "결정적 흠은 없다"고 했고, 주성영 의원같은 경우는 "지금 세상에 보기 드문 청백리"라고까지 했다.
검증시스템이 엉망인 이유는?
이처럼 검증시스템이 엉망인 이유는 청와대 민정-인사 파트의 맹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파트 대다수가 파견 검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제 식구 감싸기식 인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대통령이나 권력실세가 낙점한 인사니, 대충 넘어갔을 수도 있다. 이는 민주당이 요구한 인사검증 자료를 정부가 거의 제출하지 않으며 쉬쉬한 대목에서 제기되는 의문이다.
하지만 보다 큰 책임은 국정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국정원은 '존안문서' 생산-보유처다. 국정원의 정보수집 능력은 대단하다. 밤에 술집에서 누구, 누구가 함께 만나 어떤 얘기를 했는지까지, 술집주인들의 협조 등으로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대통령이 인사를 하려 하면, 우선 막강한 정보력의 국정원에서 1차 스크린을 한다. 과거 수십년간 축적해온 '존안문서'에다가 새로운 문제점이 없나를 뒤진다. 따라서 천성관 파문이 또 발생했다는 것은 국정원 사전점검 시스템에 결정적 하자가 생긴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 대목이다.
'객관적 정보'는 사라지고 '주관적 정보'만 넘실대나
국정원은 지금도 '수집과 분석 분리' 메커니즘하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이유는 국정원 상층부이거나, 청와대이다. 객관적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거나, 전달해도 청와대쪽이 수용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과거 정권때도 국정원이 청와대가 듣기 싫어하는 정보를 청와대 민정쪽에 전달했다가 묵살당한 전례가 수두룩하다.
만에 하나 이런 추정이 사실이라면, 사태는 정말 심각하다. '객관적 정보'가 설 땅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맘에 드는 '주관적 정보'만 넘쳐나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원은 최근 사이버대란 때도 섣부른 '북한 배후설' 등으로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상태다. 아무리 심증이 가도 물증을 확보한 뒤 해야 할 얘기를 먼저 흘려,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이런 걸 보면, 국정원이 현정부 출범 후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 뿌리는 청와대다. 천성관을 즉각 교체키로 한 건 그래도 진일보한 모습이다. 하지만 애당초 천성관 사태의 원인제공은 청와대가 했다. DJ정권때 '옷로비' 사건이 발생하면서 비판여론이 들끓자, DJ는 비판적 재야 법조인들로 민정수석실을 꾸렸다. 불과 반년 뒤에 이들은 안팎의 압력에 물러났고, 그 결과 '3홍 비리'가 잉태되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한다. 최소한 민정-인사 파트는 '독립적 세력'을 심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MB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이라도 써야 하고, 아울러 '쓴소리 정보'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3년반 뒤 퇴임 후를 걱정하지 않고 청와대를 나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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