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경제위기의 사회화' 신호탄이다"
<뷰스칼럼> 김영우의 "다시는 경제고아가 없어야"를 읽고
여론조사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한귀영 수석위원이 29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행한 용산참사의 정치적 함의다. '경제위기의 사회화'. 쉽게 풀어 경제위기가 정치, 사회위기로 번지기 시작하는 징후가 보인다는 의미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그러나 설 연휴 직후인 28일 '설날 민심'과 관련, "(용산 참사는) 큰 화제가 안 됐다"며 "본체하고는 별 관련이 없었다. 경제 살리는 데 머리 맞대고 제도도 만들어라 이게 주였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와 '경제 위기'는 별개의 것이라는 인식인 셈이다.
과연 누구의 판단이 맞는 것일까.
10년전, 그리고 지금
10년전 환란이 발생했을 때, 한 외국인 투자가는 '한국인'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었다.
"한국은 참 놀라운 나라다. 같은 환란이 발생한 동남아에선 지나가는 IMF차량에 돌이 날아들고 매일같이 길거리에서 폭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장롱속 금붙이를 꺼내들고 은행앞에 줄을 서다니..."
외국인들을 놀라게 한 '금모으기 운동 신화'였다.
당시 국민들 사이엔 자부심도 대단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언제 나라를 구한 게 관군이었나, 의병이었지"라는 얘기가 세간에 파다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딴판이다. 여권과 친여단체가 지난해말 '달러모으기 운동' 운운하다가 호된 여론의 철퇴를 맞았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위기이나, 국민들은 달라졌다. 싸늘해졌다. 정치-사회적 위험지수가 극으로 높아진 것이다.
"집안에 절대로 칼이나 총 같은 흉기를 둬선 안된다"
한 뱅커는 요즘 언론인들만 만나면 하는 간곡한 당부가 있다.
"제발 자살 얘기 좀 쓰지 말아달라. 살기가 힘들어지면 여기저기서 매일같이 죽고 있다. 괴로운 일이다. 문제는 이처럼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한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람은 약한 존재다. 자살 뉴스를 접하면 '나도...'라고 울컥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이 자살 얘기는 쓰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난 원로 뱅커는 이런 얘기도 했다.
"선친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불러 앉혀놓고 이런 가르침을 주시곤 했다. '집안에 절대로 칼이나 총 같은 흉기를 둬선 안된다'고. 부모형제가 같이 사는 집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말씀이셨다. 부모형제간에도 이럴 수 있는 일이거늘, 낯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야 말해 못하겠나."
사람이 경제난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인격이 붕괴될 극한위기에 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불허라는 의미다. 경제위기가 정치-사회위기와 동전의 앞뒷면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가르침이자, 용산참사의 배경이기도 하다.
李대통령 한 측근의 절절한 편지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김영우 한나라당 의원은 28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를 올렸다.
"제가 4년 동안 옆에서 모시는 동안 대통령님께서는 수없이 가난과 교육, 배고픈 사람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하셨습니다. 모든 국민들을 가난과 질병에서 구하고 경제위기가 가정의 위기, 인격의 위기, 사회적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그것만이 진정 대통령님의 삶의 철학이고 국정의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IMF때 가정파탄으로 인해서 많은 고아들이 생겼었는데 지금의 경제위기 속에서 또 다시 엄마의 품을 떠나고 할머니의 손에서 또 다시 떠나야 하는 경제고아들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경제문제를 경제적인 정책만으로 풀 수 없다는 것도 대통령님의 철학이라 믿습니다. 지금 경제문제를 경제적인 접근만으로 이해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경제의 덫’에 걸려 있는 상황입니다.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정책을 수립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느리더라도 근본을 살피면서 민심을 얻어가는 당과 정부가 됐으면 합니다."
충정이 넘치는 측근이 아니면 쓸 수 없는 편지였다.
李대통령의 선택은?
이 대통령 주위의 전언에 따르면, 요즘 이 대통령은 극보수인사들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몇몇 내로라하는 극보수 인사들의 실명까지 나열하며 "제발 그런 얘기 좀 듣지 말라"고 측근들에게 말하기까지 한다고 전해진다. 이 대통령이 극보수 인사 등의 '이념 과잉'에 질렸다는 의미로도 해석가능한 전언이다.
이 대통령이 질릴만도 하다. 한 예로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은 28일자 칼럼에서 "이제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으로서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를 살리며, 성장률을 올리고, 대운하를 만드는 등의 업적을 해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가 이제 새삼스럽게 국민통합적 지도자로 재탄생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며 남은 임기동안 '좌파와 전쟁'이나 열심히 하라고 주문했다. 김 고문은 이 대통령을 "이명박씨"라고 표현, 노골적으로 깔아뭉개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고독해보인다. 고립무원의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디 그 자리가 그런 자리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새벽 잠행'을 많이 한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이었다. 새벽에 점퍼를 걸치고 나와 미화원들과 함께 쓰레기를 나르곤 했다. 두 손에 피를 묻히고 집권한 데 대한 죄의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나, 그는 새벽 잠행에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나름대로 경제챙기기에도 열성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다. 김대중 고문의 표현을 빌면, 어렵더라도 점퍼를 걸치고 '국민통합적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 쉬운 '우파 전사'의 길을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 역시 이 대통령의 고독한 몫이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