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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동 철거민 자살, 그로부터 2년후...

<현장> 뿔뿔이 흩어진 힘없는 철거민들

2006년 3월 13일 인천시 만수동 향촌지구 철거촌에서 세입자 신현기(당시 48)씨가 주인집 부엌에서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인천 남동구청 철거반 직원 4백여명이 새벽부터 들이닥쳐 포크레인과 살수차를 동원해 신씨의 집을 비롯해 판자촌 1천8백여 가옥들을 허문 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한 철거민의 '사회적 타살', 그 이후

당시 사회는 신씨의 죽음을 두고 서민들을 외면하는 도시 재개발 사업과 대책 없는 강제철거의 문제점을 성토하며 '사회적 타살'이라 애도했지만 비판 여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8년 3월 13일, 인천 부평묘지공원에는 무연고자라는 이유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공동묘지에 묻힌 강제로 묻힌 신씨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간단한 제례를 마치고 묘지 주변에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 그들의 표정을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만수동 향촌지구 철거민 신현기씨는 2년 전 3월 13일, 남동구청의 강제철거에 항의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최병성 기자


이날 모인 이들은 대부분 만수동 향촌지구 재개발사업 이후 인천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주거권을 빼앗길 처지에 내몰린 철거민들이었기 때문이다. 48세 노총각 신씨가 죽음으로 대책없는 도시재개발의 부당함을 알렸지만 여전히 인천은 도시재개발의 광풍이 불고 있다.

인천시가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개발사업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비롯해 총 1백79개 지역에 이른다. 향촌지구를 비롯한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는 12곳, 주택재개발사업지구는 90곳, 주택재건축지구는 45곳에 달한다.

이들 지역 중 상당수는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저개발 지역으로 영세가옥주와 세입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만수동과 마찬가지로 주거권 논란이 계속해서 불거져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뿔뿔이 흩어진 철거민들, 대부분 불안한 주거환경 시달려

철거민들이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도시재개발과 강제철거에 앞서 우선적으로 주거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4~5백여만원의 이주비용을 부담하고 도시근로자기초생활분 몇 개월치로는 철거촌을 떠나 주거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에게 가혹하다. 향촌지구 철거민 이수용씨가 전하는 향촌지구 철거민들의 2년 후 현실은 개발사업이 이들의 삶에 미친 악영향을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당시 2년여간 정부와 주공을 상대로 싸워왔던 영세 철거민 1백40여명은 저마다 개별보상을 받고 뿔뿔이 흩어져야했다. 그나마 사정이 좋았던 일부는 주공이 제공한 매입전세아파트로 들어갔고 또 일부는 전세임대아파트, 공공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러나 이수용씨는 "허울 좋은 이주대책이었다"며 "아직까지 주공이 제공한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향촌지구 세입자들 대부분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로 한달 1백여만원 안팎의 수입으로 근근히 생계를 꾸리는 영세계층이었다. 주공이 제공하는 아파트들의 보증금은 최소 2천만원에서 5천만원, 월세는 최고 45만원에 달한다.

당장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들어가도 이들의 경제사정으로는 관리비 내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주공이 내놓은 대안은 0.6%의 초저리 융자금 대출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들어간 임대아파트도 최장 6년이 지나면 일반분양으로 전환된다.

2008년까지 6만2천평 부지에 2천8백25호의 분양,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 향촌지구.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빈민거주지역이었다.ⓒ최병성 기자


2차례 계획변경을 거쳐 당초보다 늦은 2007년 부지조성에 착공해 2010년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총 38개동 3천2백8가구가 들어서는 이 곳에 지어지는 임대아파는 6백73가구에 불과하다.ⓒ최병성 기자


"100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수천만원대 임대아파트가 이주대책인가"

입주자들은 만수동 주거환경개선사업이 끝나는 3년 후 수천만원에 달하는 아파트 입주금을 걱정하기에 앞서 당장 임대아파트에서도 버티기가 어려운 셈이다. 결국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원주민들의 재정착을 돕는다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취지는 철저히 현실에서 부정당하고 있다.

이씨는 "일부 철거민들은 결국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고 만수동과 비슷한 간석동으로 옮겨갔지만 거기도 얼마 전 철거지역으로 지정됐다"며 "철거를 당해 다시 철거촌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나라의 주거정책을 보면 빈민들은 살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거나 죽어나가도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다"며 "강제철거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흔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겠냐"며 줄담배를 피워물었다.

이런 상황은 향촌지구만이 아니다. 이날 추모제를 찾은 송도신도시 인근 동춘1지구 하분자씨도 2년 간 철거대책을 마련해달라며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하씨는 "누구도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없지 않나. 신씨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수십년간 살던 집이 돈 몇백만원에 허물어지는 상황을 상상도 못한다"며 "왜 우리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그런 일들이 현실이 되야하는지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대안은 없을까. 철거민들은 "이미 대안은 분명히 나와있다"고 말한다. 다만 재개발 정책의 '눈높이'가 영세 원주민이 아닌, 새롭게 조성되는 택지개발에 흥미를 느끼는 가진 자에게 맞춰져있어 대안들이 쉽게 폐기돼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20여년간 인천지역에서 철거민 투쟁을 벌여 온 박원주 인천빈민연합 의장은 "공공개발사업은 당연히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하고 그렇다면 주민들을 위한 개발이 되야한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모든 개발사업은 행정편의주의와 전시행정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박 의장은 "전국 어디에 가도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은 통계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고 투자를 목적으로 한 외지인들만 넘쳐난다"며 "결국 시행사와 시공사, 부동산 투기꾼들의 배만 불리는 것 말고 어떤 목적도 찾을 수 없는 게 도시재개발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인천지역 시민단체와 철거민들은 무연고자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시민묘지에 강제로 묻힌 신현기씨를 위해 매년 명절과 기일에 맞춰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최병성 기자


"대안은 재개발의 눈높이를 영세세입자에게 맞추는 것"

그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역주민의 의견 수렴이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 주민들의 생계현실에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점을 꼽았다. 이는 결국 영세 원주민들의 현실을 고려치 않은 획일적인 대형주택 건설로 재정착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무엇보다 현지 주민 실태조사, 현실성 있는 이주대책, 투명한 보상심의위원회 운영, 공정한 보상 절차, 다양한 주택 건립 등이 선행돼야 한다"며 "최소한 주민들의 생활권이 파괴되거나 크게 벗어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대책들이 마련될때만 지자체와 주민간의 극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식에 참여한 노수희 서울통일연대 의장의 말은 전국의 영세철거민들이 처한 역설적인 현실을 함축하고 있다.

"50년 가까운 고단한 삶을 살며 제 몸 하나 누일 땅이 없었는데, 죽고 난 뒤에야 번듯한 집이 생긴 것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야만 편안해질 수 있는 사회를 과연 정상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최병성 기자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29 37
    icpwjj

    어두운 세상입니다!
    없는 것이 죄가 되나요?
    가진자들의 정부 서민들은..............
    죽음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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