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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분노케 한 고대 전철역 이야기

“장애인에게 엘리베이터는 권리이자 목숨”

“서울도시철도공사와 고려대역 관계자들은 장애인 등 이동약자 및 사고 피해자의 안전이나 인권에 대한 보장보다는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안전불감증 및 인권감수성의 결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중증장애인 고 윤재봉씨가 발산역에서 고정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이 사회적인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회를 향한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도시철도공사 관할 고려대역. 장애인용 택시도 운행하지 않는 늦은 밤, 장애인 10여명이 지하철을 이용하려 했지만 이틀째 고장난 엘리베이터로 인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중증장애인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장애인들은 곧바로 고려대역 관계자에게 항의했지만 역무원들은 한결같이 “다른 역을 이용하라”는 대답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날 엘리베이터 고장 사실을 모르는 장애인들 수명이 고려대역에 하차했다가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했고 항의하던 장애인들도 한참 떨어진 보문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권단체들은 8일 서울 용답동 서울도시철도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3일 고려대역에서 일어난 장애인 사고와 관련한 공개사과 및 재발방지를 촉구했다.ⓒ최병성


이틀간 방치된 엘리베이터에 발 묶인 장애인들

이와 관련 전국장애인차별철폐,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는 8일 오후 서울시 용답동 서울도시철도공사 앞에서 기자화견을 열고 도시철도공사와 고려대역 관계자들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고려대역 측이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2일부터 엘리베이터 고장 사실을 파악하고서도 이틀 가까이 방치한 것과 관련해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격렬히 항의했다.

박영희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는 “만약 비장애인이 다니는 통로나 도로가 막혔다면 과연 역무원들이 이를 방치했겠는가”라고 되물으며 “엘리베이터 하나 설치하고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줬다는 생색내기에 앞서 철저한 점검체계를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경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장애인위원회 위원장도 “사고 당일 고려대에 장애인행사가 있어 역무원들에게 수차례 수리를 요청했지만 고쳐지지 않고 방치돼 장애인들은 결국 먼길을 돌아가야했다”며 “명백한 고려대역의 직무유기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을 지켜 본 최인기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은 “사고 발생 당시 고려대역에 근무하는 역무원은 단 둘 뿐이었고 이틀동안 장애인들의 호소가 계속됐지만 시설은 고쳐지지 않았다”며 “이는 직원들의 안전불감증, 인권불감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날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장애인단체의 기자회견 직전 정문을 걸어 잠그고 공익근무요원들을 배치해 위압감을 조성하는 등 시종일관 이들의 요구를 외면해 빈축을 샀다. 특히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항의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지만 10여분 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뒤늦게 시설본부장이 나와 이들의 요청을 수락해 짧은 면담이 이뤄졌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철도공사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했지만 10여분 넘게 관계자들이 나오지 않아 반발을 사기도 했다.ⓒ최병성


면담요구 거부하던 철도공사, 뒤늦게 ‘유감’ 표명

서울도시철도공사는 면담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공식입장을 공문형식으로 이들 단체에 전달하고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시설점검 및 역무원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장애인권단체들은 향후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공식입장을 확인한 후 투쟁방향을 재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가 밝히고 있는 지하철역의 장애인이동 편의시설 설치현황은 총 2백62개 역사 중 2백42곳에 엘리베이터 및 에스컬레이터, 리프트 등의 수직이동 시설 설치로 설치율 92.4%의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고장이 잦고 자칫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지는 휠체어 리프트보다는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엘리베이터의 노후화에 따른 체계적인 시설점검도 끊임없이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은 장애인들의 단식투쟁이 39일간 계속되자 서울시 전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한 바 있지만 이듬해 실태조사를 통해 46개 역사의 ‘설치불가’를 발표해 현재까지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권단체들은 '46개 역사 중 45개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가능하다'는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의 지하철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서울시 지하철 46개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재조사 실시 ▲전국의 지하철 전 역사 스크린도어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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