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여론조사, 손학규 잡나?
[김행의 '여론 속으로']<37>'저평가 우량주'냐 '작전주'냐
사실 말도 안 되는 여론조사다. 아니 여론조사를 빙자한 장난이다. 이를 두고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미국으로 말하면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에서 1등하는 격”이라며 “여론조사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여론조사를 손 전 지사는 믿었던 것일까? 결국 19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마따나 경선이 불리하니 탈당한 것이다. “새 주도세력을 만들겠다”는 명분은 앞세웠지만, 그 속내는 범여권후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말도 안 되는 여론조사에 속은 셈이다.
손 전 지사가 계속해서 속을 만한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가 19일 갤럽에 의뢰해 전국의 19세 이상 7백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자. ‘손학규 탈당’ 반대 34.9%, 찬성 30.1%, 모르겠다 또는 무응답 35%다. 여론조사를 액면 그대로 보자면 생각보다 비난여론이 거세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범여권후보 적합도를 보면 손학규 16.6%, 정동영 12.4%, 강금실 8.5%, 한명숙 8.0%, 김근태 7.5%, 정운찬 6.9%다. 여전히 1위다.
더구나 손 전 지사를 더욱 흥분하게 할 만한 여론조사는 그의 지지율이 탈당 전인 지난 3일(5.9%)보다 2.3%포인트 오른 8.2%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역대 최고치다. 여전히 이명박(43.9%), 박근혜(20.3%)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약간의 수확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수치를 좀 자세히 보자. 누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찬성하는가. 범여권 지지층 및 20·30대, 호남권(46.6%), 충청권(37.3%), 화이트칼라, 대학생 등에서다. 손 전 지사의 지지율 상승에도 이들의 결집이 기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의 주된 색깔은 ‘반한나라당’일 뿐이다. 손학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구도는 ‘빅2 구도’였다. 이명박, 박근혜의 지지율에 비하면 손학규의 지지율은 조족지혈이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그를 ‘빅3’로 칭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를 아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개혁’하려는 그를 ‘보석’처럼 아꼈던 것이다.
범여권 대선주자 선호도 1위, 탈당 ‘찬성’ 30% 등에 손학규가 속아 넘어간 여론은, 죽어도 한나라당을 찍기 싫은 유권자들이 범여권후보 부재상황에서 일단 한나라당이라도 깨지길 바라는 ‘이간질의 성격’이 상당부분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깨지는 것을 바라는 마음과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를 실제로 범여권후보로 밀어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손학규에게 바라는 당장의 역할은 범여권이 모양새를 갖출 동안 일단 한나라당에 재를 뿌리자는 것이다.
그 증거 역시 여론조사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 속에서 발견된다. 같은 조사에서, 손학규가 범여권후보가 되는 것에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 ‘부정적’ 42%, ‘긍정적’ 26.5% 였다. 호남권에서도 ‘부정적’ 42.3%, ‘긍정적’ 28.5%였다.
손학규의 가치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 빛났다. 한나라당을 떠난 손학규의 가치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한나라당 주자로 거론될 때 ‘저평가 우량주’에서 ‘재평가 우량주’로 주가를 올렸던 그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나라당을 교란시킬 ‘작전주’로 전락할지 모른다. 아니, 탈당 당시 손학규의 태도를 보면 스스로 ‘작전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5년 동안 자기가 퍼먹던 우물에 침만 잔뜩 뱉고 떠났다.
그는 앞으로 범여권후보로 거론되는 주자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잠재적 여권주자들 중 중 일부는 지금 환영 메시지를 보내지만, 각이 세워지면 ‘철새’로 몰아붙이며 칼을 꽂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 불쏘시개가 되라면 될 수 있고, 치어리더가 되라면 될 수 있다"라며 일단 ‘로우 키’(low key)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진심이라고 믿겠는가? 만약 그 말이 그의 진정이라면 그 역할은 오히려 한나라당 안에서 더 잘 해낼 수 있었다. ‘아까운’ 그 역시 ‘대통령병’이라는 중병에 걸렸던 것은 아닐까. 참, 사람 잡는 여론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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