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농성 끝내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현장] 동아투위 보름 천막농성 1일 막내려
“지금까지 동아일보가 저지른 모든 죄과를 민족과 역사 앞에 낱낱이 고하고 무릎 끓고 사죄하라. 그런 연후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장)
동아일보 창간 86주년을 맞은 지난 1일 오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지난 17일부터 보름 동안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진행해 온 천막농성이 막을 내렸다.
엄혹했던 유신시절, 74년과 75년 ‘동아 백지광고 사태’와 ‘언론인 해직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동아투위는 이날 천막농성을 마무리 짓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거듭 동아일보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동아투위 해직언론인과 당시 정권의 탄압으로 광고가 끊겼던 동아일보에 자발적인 격려광고을 냈던 시민 광고주들이 30년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자유’라는 말이 반공을 의미했던 70년대 유신시절에 젊은 언론인들이 외친 언론자유의 절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격려광고로 화답했던 시민들. 이들은 3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고 오히려 화려한 고층건물 속에서 ‘민족정론’을 내세우는 동아일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 “동아일보 똑바로 안할거면 광고비 도로 내놔라”
동아일보 격려광고를 시작으로 한겨레, 노동일보 등 우리사회에서 진보언론의 기치를 내건 모든 매체에 애정을 쏟아부어왔다는 박성극(66)씨. 당시 건설업에 종사했던 박씨는 “과거 동아일보는 사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매체였다”며 “이런 매체를 올바로 지켜내고자했던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성금액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시 상황이 어려워 그리 많이 내지는 못했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동아일보가 반성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해직기자들을 복직시킨다면 가족을 모두 동원해 다시 성금을 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남대문 재래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번 돈으로 격려광고를 내기위해 한달음에 달려오곤 했다는 박선용(66)씨는 이날 당시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감사문과 광고문구 스크랩이 담긴 액자를 가져왔다.
전날 부인과 사별하고 삼오제를 치르는 와중에도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는 박씨는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뒤로 하고 기자들을 내치며 ‘수구언론’의 길을 걸어온 동아일보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박씨는 “나같은 서민들의 애정을 담아 보낸 격려광고를 받고도 동아일보는 가진 자들, 수구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해왔다”며 “이따위 감사장 던져주고 광고비를 되돌려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뜻있는 농민들이 쌀을 팔아 모은 성금을 직접 동아일보로 들고 왔던 서경원 전 국회의원(당시 카톨릭농민회 소속)은 “석달간 모은 쌀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광고를 내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동료와 둘이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이런 식으로 해직기자들 길바닥에 앉혀놓고 언론 같지도 않은 언론으로 행세하려면 이제 우리가 낸 쌀 다시 되돌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동아투위 “독립언론의 새 시대 열 포럼 만들 것”
보름동안 번갈아가며 천막을 지켜왔던 동아투위 위원들은 이날 ‘포럼 독립언론’의 구성을 시민사회단체에 제안했다.
지금까지 동아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과거’의 일에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언론의 민주화와 독립성이라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인 셈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투쟁으로 버텨오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언론의 보수성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기자후배들에게 ‘독립언론’이라는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포부다.
이들은 “오늘의 한국언론은 과거 자유언론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쟁취한 언론자유를 이용해 오히려 민주개혁을 발목잡고 남북 민족의 화해와 공존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제 언론은 언론사주와 대기업 광고주의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책임있는 독립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포럼 제안의 이유를 밝혔다.
촛불문화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에세 보내는 공개서한을 낭독한 1부 기념식과 2부 자유언론 대화마당, 풍물패와 노래패의 공연을 곁들인 3부 문화제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빗속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1백여명의 참가자들은 문화제의 모든 일정을 마친 후 동아일보 사옥 주변을 가두행진한 후 해산했다.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장은 “정권이 세 번 바뀌어도 여전히 동아사태에 대한 무관심은 변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의 30년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매년 3월 이곳에서의 농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창간 86주년을 맞은 동아일보는 이날 ‘자유와 시장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한국이다. 피땀 흘려 산업화도 민주화도 이뤄냈다. 초강대국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협상 중인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런 위대한 성취를 자학하거나 선배들의 헌신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지난 2004년 민주화운동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가 해직기자 1백25명에 대해 내린 복직권고에도 불구하고 1년 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보상위의 복직권고에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대해 성유보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명예회복만을 바랐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을 싸워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아일보는 복직은 물론이고 해직기간 어렵게 살아온 이들을 위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창간 86주년을 맞은 지난 1일 오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지난 17일부터 보름 동안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진행해 온 천막농성이 막을 내렸다.
엄혹했던 유신시절, 74년과 75년 ‘동아 백지광고 사태’와 ‘언론인 해직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동아투위는 이날 천막농성을 마무리 짓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거듭 동아일보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동아투위 해직언론인과 당시 정권의 탄압으로 광고가 끊겼던 동아일보에 자발적인 격려광고을 냈던 시민 광고주들이 30년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자유’라는 말이 반공을 의미했던 70년대 유신시절에 젊은 언론인들이 외친 언론자유의 절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격려광고로 화답했던 시민들. 이들은 3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고 오히려 화려한 고층건물 속에서 ‘민족정론’을 내세우는 동아일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 “동아일보 똑바로 안할거면 광고비 도로 내놔라”
동아일보 격려광고를 시작으로 한겨레, 노동일보 등 우리사회에서 진보언론의 기치를 내건 모든 매체에 애정을 쏟아부어왔다는 박성극(66)씨. 당시 건설업에 종사했던 박씨는 “과거 동아일보는 사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매체였다”며 “이런 매체를 올바로 지켜내고자했던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성금액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시 상황이 어려워 그리 많이 내지는 못했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동아일보가 반성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해직기자들을 복직시킨다면 가족을 모두 동원해 다시 성금을 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남대문 재래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번 돈으로 격려광고를 내기위해 한달음에 달려오곤 했다는 박선용(66)씨는 이날 당시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감사문과 광고문구 스크랩이 담긴 액자를 가져왔다.
전날 부인과 사별하고 삼오제를 치르는 와중에도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는 박씨는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뒤로 하고 기자들을 내치며 ‘수구언론’의 길을 걸어온 동아일보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박씨는 “나같은 서민들의 애정을 담아 보낸 격려광고를 받고도 동아일보는 가진 자들, 수구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해왔다”며 “이따위 감사장 던져주고 광고비를 되돌려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뜻있는 농민들이 쌀을 팔아 모은 성금을 직접 동아일보로 들고 왔던 서경원 전 국회의원(당시 카톨릭농민회 소속)은 “석달간 모은 쌀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광고를 내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동료와 둘이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이런 식으로 해직기자들 길바닥에 앉혀놓고 언론 같지도 않은 언론으로 행세하려면 이제 우리가 낸 쌀 다시 되돌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동아투위 “독립언론의 새 시대 열 포럼 만들 것”
보름동안 번갈아가며 천막을 지켜왔던 동아투위 위원들은 이날 ‘포럼 독립언론’의 구성을 시민사회단체에 제안했다.
지금까지 동아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과거’의 일에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언론의 민주화와 독립성이라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인 셈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투쟁으로 버텨오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언론의 보수성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기자후배들에게 ‘독립언론’이라는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포부다.
이들은 “오늘의 한국언론은 과거 자유언론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쟁취한 언론자유를 이용해 오히려 민주개혁을 발목잡고 남북 민족의 화해와 공존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제 언론은 언론사주와 대기업 광고주의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책임있는 독립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포럼 제안의 이유를 밝혔다.
촛불문화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에세 보내는 공개서한을 낭독한 1부 기념식과 2부 자유언론 대화마당, 풍물패와 노래패의 공연을 곁들인 3부 문화제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빗속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1백여명의 참가자들은 문화제의 모든 일정을 마친 후 동아일보 사옥 주변을 가두행진한 후 해산했다.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장은 “정권이 세 번 바뀌어도 여전히 동아사태에 대한 무관심은 변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의 30년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매년 3월 이곳에서의 농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창간 86주년을 맞은 동아일보는 이날 ‘자유와 시장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한국이다. 피땀 흘려 산업화도 민주화도 이뤄냈다. 초강대국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협상 중인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런 위대한 성취를 자학하거나 선배들의 헌신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지난 2004년 민주화운동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가 해직기자 1백25명에 대해 내린 복직권고에도 불구하고 1년 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보상위의 복직권고에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대해 성유보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명예회복만을 바랐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을 싸워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아일보는 복직은 물론이고 해직기간 어렵게 살아온 이들을 위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