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 아끼자고 경비원 64명 잘라야 하나"
이준구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될 64명의 경비원과 그 가족은..."
이 교수는 19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고용을 대폭 줄이고 그 대신 기계화된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받았다"며 "현재 우리 아파트에서 고용하고 있는 경비원의 숫자가 100명인데 그 중 64명을 감축해 36명만을 남기겠다고 한다. 무려 2/3에 달하는 인원을 대량으로 해고하려 한다"며 고지서 내용을 전했다.
그는 이어 "이를 통해 절감되는 세대별 관리비가 월 10만원 정도라고 한다"며 "그것이 과연 경비원들의 대량해고를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큰 이득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될 64명의 경비원과 그 가족을 생각한다면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으로 월 10만원의 추가 부담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된 주민회의가 열리고 그 석상에서 내가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하자. 나는 과연 어떤 반응에 직면하게 될까?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너 혼자 잘났구나.'라는 식의 냉소적 반응을 보일 게 분명하다"며 "상생이란 말이 오직 대기업에게만 적용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상생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대기업만의 몫이 될 수도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강자가 약자와의 상생을 도모하려는 의지의 부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화살을 MB정부로 돌려 "정부는 강자가 더욱 강해져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 풍조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상생’, ‘친서민’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진정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아파트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상생을 위해서는 자신의 조그마한 이득을 포기해야 한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상생을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월 10만원이라는 눈앞의 이득을 포기하고 64명 경비원의 생계를 보호해주는 것이 결코 비효율적인 일이 아니다"라며 "이런 상생의 정신이 더욱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아파트 주민들의 이득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가진이들에게 상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상생의 정신이 실종된 사회
인도나 필리핀처럼 인건비가 아주 싼 지역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다 돌아온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그곳에 있을 때 마치 황제처럼 , 살다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운전기사, 정원사 그리고 가정부를 몇 명씩이나 고용해 허드렛일은 전혀 하지 않고 살다 왔다니 말이다. 인건비가 어느 정도로 싸기에 그렇게 호사스런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입에 풀칠을 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자리나마 얻을 수 있는 게 큰 다행일 것이다.
허드렛일 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는 부자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고용해 그들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부자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보기에 낭비처럼 보이는 일이 실제로는 자발적인 소득재분배를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는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것이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상생(相生)의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고용을 대폭 줄이고 그 대신 기계화된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최저임금법 특례적용기간의 만료에 따라 2012년부터 대폭적인 임금인상 요인이 있기 때문에 주민부담 증가를 고려해 통합경비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모든 시안이 그렇듯, 그 안내문에 제시된 개편 시안을 보면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체제 개편으로부터 나오는 편익은 최대한으로 부풀리고 이에 따르는 비용은 거의 무시해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체제 개편에서 오는 편익과 비용의 계산이 잘못되어 있다고 믿지만, 잘 되었다고 믿는 주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나중에 주민들의 투표로 체제 개편 여부를 결정할 때 각자의 믿음에 따라 표를 던지게 될 것이다. 나는 나와 다른 판단을 하고 있는 사람의 믿음을 존중한다. 따라서 편익과 비용의 계산이 잘 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시비를 걸 의사가 없다.
내가 보는 바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즉 경비 절감을 이유로 경비원들을 대량 해고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의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개편 시안에 따르면, 현재 우리 아파트에서 고용하고 있는 경비원의 숫자가 100명인데 그 중 64명을 감축해 36명만을 남기겠다고 한다. 무려 2/3에 달하는 인원을 대량으로 해고하려 한다는 말이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될 경비원들이 겪을 경제적,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이 노년층에 속하는 그들로서는 다른 곳에서 직장을 다시 얻기가 무척 힘든 처지에 있다.
체제 개편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통해 절감되는 세대별 관리비가 월 10만원 정도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매우 과장된 수치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경비원들의 대량해고를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큰 이득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될 64명의 경비원과 그 가족을 생각한다면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으로 월 10만원의 추가 부담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물론 우리 아파트 주민들 중에는 한 달 생계비 10만원을 절약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정도의 부담을 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다 강남의 한복판에 . 위치해 있는 아파트의 주민들이 그런 여유도 없다고 엄살을 부리면 그걸 믿어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인도와 필리핀의 부자들이 하는 것처럼, 절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상생의 정신으로 짐짓 모른 체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문제와 관련된 주민회의가 열리고 그 석상에서 내가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하자. 나는 과연 어떤 반응에 직면하게 될까?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너 혼자 잘났구나.”라는 식의 냉소적 반응을 보일 게 분명하다. 대놓고 나에게 야유를 보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너무 부정적인 생각인지 모르나, “미처 생각해 보진 못했지만 좋은 생각이오.”라고 맞장구 쳐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설사 체제 개편에 반대하더라도 나와는 다른 이유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내 짐작이 거의 그대로 들어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상생’이란 말이 나오면 으레 대기업을 머리에 떠올린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강자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약자인 중소기업의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사실 대기업의 행태를 보면 그런 비난을 받아 싸다는 생각이 든다. 입으로만 상생을 외칠 뿐 진정으로 상생하려는 의지는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내 친구들 하소연하는 것 들어보면 나까지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낄 지경이다.
그러나 상생이란 말이 오직 대기업에게만 적용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상생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대기업만의 몫이 될 수도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강자가 약자와의 상생을 도모하려는 의지의 부족을 발견할 수 있다. 강자들은 ‘효율성’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내걸고 자기 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정부는 강자가 더욱 강해져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 풍조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상생’, ‘친서민’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진정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상생을 위해서는 자신의 조그마한 이득을 포기해야 한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상생을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용기 있게 “우리 집단의 조그마한 이득을 포기하자.”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그런 주장을 하면 뻔히 왕따를 당할 것을 알면서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나 역시 우리 아파트 주민회의에 나가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할 자신이 없다.
지금 우리가 빠져 있는 ‘효율성의 신화’는 근시안적 관점에서 본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본 효율성이다.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월 10만원이라는 눈앞의 이득을 포기하고 64명 경비원의 생계를 보호해주는 것이 결코 비효율적인 일이 아니다. 이런 상생의 정신이 더욱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아파트 주민들의 이득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내 이웃들의 반발에 부딪칠 것을 알면서도 경비원의 대량해고에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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