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박근혜, 한나라 간판 갖고 복지 말해도 누가 믿겠나"
"한나라당이 걸어온 길은 반복지-반서민이 아닌가"
이상돈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같은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가 복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어 과연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된다고 해도 한나라당 후보로서의 ‘복지 공약’이 신뢰할 만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야권이라고 해서 복지 문제에 손 놓고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진보 진영 인사들은 '복지가 총선이나 대선의 쟁점이 되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야권 인사들이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을 환영하는 데는 그런 속내가 담겨 있다"며 "정당은 ‘말’ 보다는 자신들이 걸어 온 ‘길’로 심판받는 것인데, 현 정권 들어서 한나라당이 걸어온 길은 문제 그대로 ‘반(反)복지, 반(反)서민’이 아닌가"라고 거듭 반문했다.
이 교수의 이같은 문제 제기는 한나라당 브랜드는 이미 명(命)을 다했다는 지론에 근거한 것으로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내년 대선에 임했다간 패할 것이란 판단을 깔고 있는 것이어서, 박 전 대표의 대응이 주목된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복지, 청년실업 그리고 재정건전성
다음 대선에서 복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맞춤형 복지’를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운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지금은 그 구체적 방안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진보 인사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 논쟁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 내지 불신을 표시하고 있다. 경향신문 ‘대화’에서 김호기 교수도 그런 생각을 내비쳤고, 월간중앙 5월호에선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한나라당은 반(反)복지 정당이란 국민의식이 강한데 어떻게 정당을 뛰어넘어 박 전 대표가 나 홀로 소신있는 복지정책을 펼 수 있나”고 의문을 표시했다.
나는 ‘복지’에 대한 박 전 대표의 관심은 진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상정 전 대표가 지적하듯이 그것이 과연 ‘한나라당’이란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하는지, 또 그것이 과연 표로 연결될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하겠다. 같은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가 복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어 과연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된다고 해도 한나라당 후보로서의 ‘복지 공약’이 신뢰할 만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공약을 헌신짝 버리는 정당으로 낙인찍힌 ‘한나라당’의 간판으론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상황인데,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복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나라당’ 브랜드가 ‘명(命)’을 다했다”고 보는 것인데, 4·27 재보선 후에는 이런 나의 생각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생각된다.)
유시민 참여당 대표가 복지부장관하면서 노령연금을 도입했지만 노년층은 유 대표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연금 수혜는 수혜이고, 정서적으로 그 사람과 그 정당을 싫어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서 내건 복지 공약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한다. 즉, 그런 공약은 타당하지만 정작 복지를 수혜 받을 계층은 여전히 야권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야권이라고 해서 복지 문제에 손 놓고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진보 진영 인사들은 “복지가 총선이나 대선의 쟁점이 되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야권 인사들이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을 환영하는 데는 그런 속내가 담겨 있다. 정당은 ‘말’ 보다는 자신들이 걸어 온 ‘길’로 심판받는 것인데, 현 정권 들어서 한나라당이 걸어온 길은 문제 그대로 ‘반(反)복지, 반(反)서민’이 아닌가.
복지 논쟁은 재정건전성과 분리해서 논의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표, 그리고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이한구 의원은 재정건전성에 대해 관심이 많다. 박 전 대표는 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복지 구상’은 아직은 구체적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그로 인한 재정수요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경선 당시 ‘감세를 통한 경제 살리기’를 내걸었다. 박 전 대표의 그 약속이 아직도 유효한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박 전 대표는 증세를 통해 복지예산을 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MB 정권의 후유증으로 국가부채가 폭증한 상황에서 복지 재정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진보 일각에서는 “증세를 통해서 복지수요를 충당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쉽게 말해서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자는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당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세금 올리자”는 공약을 내걸고 집권하는 경우란 ‘코끼리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격’임은 민주당도 알 것이다. 지난 주에 만난 이해찬 전 총리도 “4대강 사업 같은 예산낭비를 없애면 세금인상 없이도 새로운 복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박 전 대표 사이의 ‘복지 논쟁’은 MB 정권의 예산낭비를 도마에 올려놓고 하는 논쟁이 될 것인데, ‘한나라당’이란 간판은 박 전 대표에게 ‘멍에’가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란 ‘브랜드’가 ‘명’을 다했다”는 또 다른 증거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복지 못지않게, 또는 복지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실업’이다. 돌이켜 보면 4·19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도 당시 심각했던 청년실업이다. 금년 들어서 이집트와 튜니지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중요한 원인의 하나도 청년실업이다. 청년실업은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어서 얼마 전에 세계은행과 IMF 총재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각국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이 문제에 대처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산하 노동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더라도 MB 정권 들어서 대졸실업자의 실업률이 거의 두 배가 되었고, 실제 체감은 정부 통계의 4.5배나 된다고 한다. (내일신문 4월 16일자 기사) 이쯤 되면 집권당은 총선과 대선에서 백기를 들어야 할 상황이다. 진보측은 청년실업을 복지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국가예산을 투입해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은행 총재와 IMF 총재도 그런 말을 했지만 이들의 주장은 실업청년들에게 직업훈련을 시키고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알선하는 수준일 것이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은 이른바 ‘사회적 일자리 창출’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젊은 층이 노년층에 대한 복지를 늘이려는 데 반대하는 정서가 강하다. 유럽의 청년층은 복지정책이 그들의 미래에 짐을 지우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청년실업을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민간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를 창출해야 세금도 많이 거둘 수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진리이다. 그러나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던 제조업이 공동화되어 버린 유럽,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일자리 창출'은 쉽지 않다.
사상 최악의 공공 부채를 남기고 물러날 MB 정권 덕분에 차기 정부는 출발부터가 힘들 상황이다. 극심한 부채에 허덕이는 LH 공사와 수자원공사의 처리 문제는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될 것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제기될 ‘재정건전성’ 논쟁은 ‘MB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박근혜 전 대표의 근심이 깊어만 가지 않겠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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