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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이 다들 빚쟁이니, 시장이 죽지"

<현장> 두 시장 이야기 "2,3억 하던 권리금이 사라졌다"

재래시장에게 명절특수는 두 차례 다가온다. 1년 3백65일, 대형마트와의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설날과 추석에는 잊지 않고 시장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역상권 대부분을 대형마트에 내준 2006년 10월의 재래시장은 명절을 맞은 활기찬 기운보다는 ‘평일과 다름없는 명절’의 기운이 강하다.

광장시장 "2~3억 하던 권리금이 사라졌다"

추석연휴를 사흘 앞둔 2일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 시장 정문에는 ‘중추절 맞이 고객만족 세일행사’라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추석을 맞아 대형마트에 빼앗긴 손님들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풍물놀이패는 시장 곳곳을 누비며 흥을 돋우고 시장 가운데 ‘만남의 거리’에서는 시장을 찾은 손님들을 대상으로 ‘막걸리 빨리 마시기’, ‘즉석 떡 시식회’ 등 명절 분위기를 돋우는 이벤트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먹거리 장터는 발 디딜 틈 없이 장터 음식을 맛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댔고 시장 안 식당은 테이블 치우기가 무섭게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선다. 하지만 종로 최대 재래시장인 이곳의 체면치레는 여기까지였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요즘 추석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말을 끊기 일쑤다. 상인들은 대부분 “한 때 권리금이 2억~3억원을 넘고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미리 뒷돈을 찔러줘야 들어오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 임대료만 내고 장사하라고 해도 사람이 안 나선다”고 푸념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 추석을 맞아 시장 곳곳에서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최병성 기자


40년 넘게 광장시장에서 숙녀복 매장을 꾸려 온 손모씨(65)는 “추석이 추석 같아야 추석이지, 평일에도 안되는 장사가 명절이라고 반짝하던 시기는 10년 전에 끝났다”고 말했다.

7년 전 남성복 매장을 시작한 송재영씨(54)는 뒤로 슬쩍 다가와 주머니에서 천원 짜리 한 뭉치를 꺼내들고 이렇게 말한다.

“오늘 만져본 돈이라고는 아침에 장사하려고 바꿔 온 이 천원 뭉치뿐이다. 그나마 만원짜리 한 장 만져보기 힘들다. 지금이 오후 2시가 넘었는데 개시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송씨는 다시 문이 굳게 닫힌 한 매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내의를 팔던 매장이었지만 추석특수가 시작됐다는 오늘 오전에 가게를 접고 떠난 곳이었다. 송씨는 “보증금 다 까먹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버티다가 결국은 나가는 매장들이 늘고 있다. 나도 두 달만 더해보고 나갈 생각”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상인들 “서민들이 다들 빚쟁이인데...”

하나둘씩 송씨 주변으로 모여든 상인들은 “우리 1년 벌이 다 합쳐도 백화점 밍크코트 한 벌 값도 안된다”며 우스개 소리를 하고 한바탕 웃고는 각자 다시 자신들의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평화시장에서 꾸준히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주단.청과.정육점 밀집 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전통적으로 추석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상인들의 반응은 인적이 드물었던 의류매장 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 추석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한복집에서 만난 한 상인은 “예전에는 추석 전날 저녁에도 한복 옷감을 떼다 선물을 한다며 북적대고는 했다”며 “지금이야 돈 있는 사람들은 백화점 가서 다 쓰고 돈 없는 서민들은 시장도 못 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예전부터 재래시장이라는 곳은 서민들이 찾아와 돈을 풀던 곳”이라며 “다들 빚쟁이들인데 무슨 돈이 있어 추석이라고 시장에 와서 돈을 쓰겠나”라고 말하고는 이내 기자를 뒤로 한 채 TV로 눈을 돌렸다.

한 청과상은 “예전을 100으로 치면 지금은 40도 안된다”며 “그나마 명절이라도 돼야 예전평일 매상 정도가 될까 말까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청과상은 “40은 무슨, 30 아니 20도 안되는 수준”이라며 핀잔을 준다. 시장 입구에서 즐비해있는 속칭 나라시(배달꾼)들도 불경기를 체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침체와 대형마트의 영향은 대형 재래시장에게도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한때 자리가 없어서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던 광장시장은 요즘 빈 점포가 늘고 있다.ⓒ최병성 기자


30년 동안 광장시장을 비롯해 평화시장, 남대문 시장 등 배달일을 안한 곳이 없다는 김모씨(53)는 “예전에는 조금 둘러치면 오토바이 기름 넣을 시간이 없어서 가다가 선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요즘은 일감이 신통치 않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재래시장, 늘어나는 대형마트

국회 산자위 소속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이 2일 중소기업청으로 제출받은 ‘2005년도 재래시장 빈점포 현황’에 따르면 전체 점포수 23만9천2백개 중 빈점포는 3만1천6백45개로 빈점포 비율은 13.2%였다. 특히 서울.경기 등 대형마트가 우후죽순 생겨난 곳의 빈점포율이 증가했고 같은 기간 서울시는 무려 5천6백98개의 점포가 줄어들었다.

반면 3백 24개에 달하는 대형마트는 여전히 확장일로를 거듭, 대부분 전년 대비 20%에서 70%까지 추석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농협 하나로마트 용산점은 전년대비 매출이 1백% 증가했고 리뉴얼에 따른 증가요인을 제외한다 해도 60% 이상 증가한 폭발적인 성장이다. 이 매장 관계자는 “10만원대 중저가 위주로 선물세트들은 지난 주말부터 꾸준히 팔려나가고 추석이 다가올수록 매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10만원대 중저가 상품은 재래시장들의 주요 강세 품목들. 다양한 홍보전략, 재래시장 상품권 발행,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 홍보강화 등 과거의 활기찬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상인들의 치열한 노력들은 계속되지만 한번 떠난 손님들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재래시장을 지켰던 상인들이 하나둘씩 시장을 떠나고 있다. 의류점 거리에서 만났던 송씨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앓는 소리하면 세금 덜 내려고 그런다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런 소리 안한다. 상인들이 ‘잘된다, 잘된다’ 말을 해야 정말 서민경제가 사는 것이다.”

2년새 또 다시 터전 내줄 위기, 동대문풍물벼룩시장

추석특수와는 거리가 먼 곳이지만 명절을 맞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준비하는 시장도 있다.

2003년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로 인해 고가 밑 중앙시장(황학시장)에서 쫓겨나와 동대문운동장 안에 다시 자리를 편 이들. 서울 을지로 7가 동대문운동장 축구경기장 내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의 상인들이다.

과거 시골 정취 물씬 풍기는 놋쇠요강에서 빛바랜 도색잡지, UN성냥, 녹슨 섹스폰까지 ‘옛 것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꼭 가봐야 할 곳’이었던 황학시장이 헐리면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과거 청계천 황학동 벼룩시장을 옮겨 온 서울 을지로5가 동대문풍물벼룩시장.ⓒ최병성 기자


이들은 서울 도심의 휴식공간을 목표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진행한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에 맞서 노점상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계속했다. 2002년과 2003년 서울시는 강제철거를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한 노점상은 분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결국 동대문운동장에 새 터를 마련해준다는 시의 약속과 ‘세계적인 풍물시장 건립을 약속한다’는 이 전 시장의 호언을 믿고 평생 자리 잡았던 터를 내줬지만 그들은 운동장 한 켠에 갇혀버린 신세가 됐다. 서울시의 지원 없이 이들은 전기공사를 새로 했고 햇볕을 피하기 위한 차양막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시장을 가꿔왔다. 과거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져 매출은 급감했지만 여전히 벼룩시장을 잊지 못하는 손님들은 이곳을 찾았다.

2일 오후에도 풍물시장에는 나이 든 어르신부터, 외국 관광객들까지 심심찮게 물건을 사가고 있었고 추석 선물을 사기위해 들른 조선족 노동자들도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내다버린 전축에서는 흘러간 옛 노래가 쉼 없이 흘러나왔고 그 옆에서는 그보다 더 오래된 전축을 솜씨 좋게 고치는 50대 상인이 있었다.

한 상인은 “처음 여기에 풍물벼룩시장을 열었을 때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안 왔지만 2년 새 조금씩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이제 서울에 여기 말고는 더 이상 벼룩시장이라고 할만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상인들 “여기서 다시 내쫓는 것은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

그러나 서울시는 최근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부지 안에 8백억원을 들여 2천5백평 규모의 ‘디자인 콤플렉스’를 건립하겠다는 ‘서울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거 공약이었다.

서울 최고의 관광명소를 만들겠다던 풍물시장 상인들의 꿈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실천으로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동대문운동장 공원화계획은 2년 전 청계천에서 쫓겨나온 상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최병성 기자


상인들은 “청계천 복원한다면서 억지로 운동장에 자리 내주고 이제 와서 공원 만든다며 또 다시 떠나라는게 말이 되는냐”며 “우리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청계천과 동대문을 포함해 20년간 가죽벨트.지갑.우산.장갑 등 잡화를 취급했던 고모씨(47)는 “우리가 2003년 철거 당시에 갈 곳이 있었다면 이곳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여기는 우리가 하루 끼니를 떼우기 위해 택한 마지막 장소”라며 “하루벌이로 공과금 내기도 버거운 형편에 어디로 또 나가라는 거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벌써부터 지난 2002년과 2003년, 서울시의 행정대집행에 따른 강제철거에 눈물 흘려야했던 이 곳 상인들은 다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동대문풍물벼룩시장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기석 빈민연합 부의장은 “서울시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가라고 할지 몰라 상인들 대부분 추석명절에 자리를 지킬 것”이라며 “번듯하게 청계천 복원하고 공원 만들면서 뒤로는 서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서울시의 파렴치한 행동에 두 번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10월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이한 종로 광장시장과 동대문풍물벼룩시장. 두 시장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싸움 모두 '경기침체'와 '대형마트', 그리고 '도심정화'라는 괴물 앞에서 속절없이 한숨만 내쉴뿐 뾰족한 대안을 보이지 않는다. 상인들의 가슴만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최병성 기자

댓글이 3 개 있습니다.

  • 0 0
    지나가다

    @ 감사해라
    당신의 댓글, 도데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막장 시정을 한 사람들은 한나라당 사람들인데
    도데체 왜
    김대중, 노무현한테 표 준 사람들의 자읍자득이란 말이지?
    당신은 그냥 그 무조건 니 탓이다의 전형적인 사람이로구만.

  • 14 24
    독자

    이제 이런 기사는 진부하지 않나요?
    재래시장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몇년 되지 않았습니까? 굳이 기자가 현장을 찾지 않더라도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제목만 읽고도 내용을 짐작했으리라 봅니다. 앞으로는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에 밀리는 이유, 재래시장 퇴조가 시대의 흐름인지, 아니면 아직 존재의 이유가 있지만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뷰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 27 16
    감사해라

    데중이 덕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돌삼,데중,무헨한테
    몰표준 너그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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