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로펌의 원조 '태평양'
[김진원의 로펌이야기] <13> 한국형 로펌문화 형성 주역
국내 최초의 로펌인 '김 · 장 · 리 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주요 로펌의 설립자들은 한결같은 미국 유학파들이다.
국제변호사 1호인 김흥한 변호사가 그랬고, 이병호, 김진억, 김영무, 이태희, 신영무 변호사가 모두 국내에서 사법시험 등에 합격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식 로펌을 경험하고 국제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후에도 미국의 대형 로펌인 '베이커 & 매켄지(Baker & McKenzie)'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활약한 경력의 윤호일 변호사가 나중에 법무법인 화백과 합친 법무법인 우방을 세우는 등 미국파의 로펌 설립은 좀 더 이어진다.
그러나 로펌이 미국 유학파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특히 우리 경제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1980년대 들어 기업법무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른바 국내파 법조인들도 잇따라 로펌을 설립하고 나섰다. 시장이 성숙되면서 기업법무에 특화하는 대형 법률회사가 자생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그 원조쯤에 해당된다.
이어 법무법인 화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법무법인 화백,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서정, 법무법인 로고스 등도 법원과 검찰의 간부를 지낸 재조 출신의 중량급 변호사들이 설립을 주도한 게 특징이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미국 유학에 나섰던 유학파들과는 달리 판, 검사로 임관해 오랫동안 재조에서 실무를 익힌 후 로펌을 열어 기업법무, 국제법무 분야로 영역을 넓혀 갔다. 기업법무로 시작해 재조 출신을 영입하며 송무쪽을 강화해 온 미국 유학파들의 로펌과는 성장경로가 다르다.
태평양의 설립자인 김인섭 변호사가 당시 대법원 이하 서울 지역의 각급 법원과 검찰청이 모여 있던 서울 서소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낸 때는 80년 12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그는 순수한 국내파로, 고시 사법과 14회에 합격해 17년간 일선 법원의 판사로 근무했다. 외국에 유학한 경험은 없었다. 지금은 태평양의 지휘부를 이루고 있는 이재식, 황의인 변호사도 이때 함께 참여했다.
김 변호사의 활약에 힘입어 법률사무소는 성장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송무 중심의 전통적인 변호사 사무실에 머무르지 않았다. 기업법무를 지향하며 로펌 형태의 법률사무소로 발전 방향을 잡았다. 태평양이 지금도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 '한국형 로펌'을 일궈 보겠다고 나섰다.
변호사로 개업한 지 꼭 6년만인 86년 12월. 배명인 전 법무부장관과 서울지검 검사 출신으로 미 노틀담대 로스쿨에서 J.D.를 마친 이정훈 변호사 등이 합류하며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란 간판을 내걸었다. 외국 고객들에게 '배, 김 & 리(Bae, Kim & Lee)'로 더 잘 알려진 태평양이 국내 로펌 시장에 본격적으로 돛을 올린 것이다.
이때 이정훈 변호사와 함께 기업자문 분야를 대표하는 오용석, 이근병 변호사도 합류하는 등 규모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정훈 변호사는 현재 태평양의 대표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오용석 변호사는 몇년전부터 매니징 파트너가 돼 크고 작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후 태평양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특히 태평양 이전부터 쌓인 탄탄한 송무 기반이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송무의 경쟁력을 밑바탕으로 갈수록 확대되는 기업자문 분야를 강화하며 일찌감치 한국을 대표하는 로펌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얼마전에 영입한 이강국 전 대법관과 송진훈 전 대법관을 위시해 법원과 검찰에서 이름을 날리던 쟁쟁한 재조 출신이 많은 것도 태평양 송무팀의 특징이다. 로펌 업계의 한 분석에 따르면 전직 고법부장 이상 변호사를 기준으로 하면 태평양이 가장 많다고 한다. 전직 지법부장 이상 변호사는 김&장이 가장 많다고 한다.
한때 태평양의 준비서면을 받아 본 서울중앙지법의 판사들로부터 사법연수원의 교재로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 정평이 나 있는 태평양 송무팀의 경쟁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변호인으로 선임돼 검찰과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변호인도 태평양이다. 정몽구 회장이 구속기소된 현대자동차 비자금사건에도 관여했다. 그만큼 태평양이 크고 어려운 사건의 단골 변호인으로 뽑혀 다닌다는 얘기다.
송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형사팀을 가장 먼저 운영한 곳도 태평양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많은 로펌에서 검찰 출신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형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나 기업인 등이 관련된 형사사건이 늘면서 로펌 형사팀의 비중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게 주요 로펌의 최근 추세이기도 하다.
태평양에선 창립 멤버중 한 사람인 배명인 전 법무장관과 이명재 전 검찰총장, 김영철 전 법무연수원장,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한 강원일 전 검사장, 박종렬 전 검사장 등이 후배들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해말 막을 내린 대검찰청의 공적자금비리수사에서 관련 사건을 가장 많이 맡아 변호하고 있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올초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을 지낸 이승섭 변호사를 영입했다.
▲기업 인수 · 합병(M&A) ▲국제중재 ▲정보통신 분야 등에서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 국제중재법정 제소로 번진 대한생명 인수를 둘러싼 한화그룹과 예금보험공사의 다툼에서 원고측에 해당하는 예보공사를 대리하고 있다. 태평양이 비슷한 사건을 처리해 본 경험(case record)에서 점수를 많이 받아 대리인으로 선정됐다는 후문이다. 상대방인 한화측은 김&장이 맡아 불꽃튀는 대리전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1998∼2001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원천기술 보유 업체인 미 퀄컴사을 상대로 진행한 로열티 지급 관련 국제 중재사건에선 ETRI를 대리했다. 정보통신분야의 오양호 변호사 등이 나서 퀄컴사로부터 2억 달러를 받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소버린자산운용과 SK측과의 경영권 분쟁에선 SK측을 대리했으며, 신호제지의 경영권 분쟁땐 국일제지측을 대리했다.
해외진출에도 앞장섰다.
2002년 4월 국내 로펌중 최초로 일본 동경사무소를 연데 이어 2005년 4월 역시 국내 로펌중 가장 먼저 사무소를 내고 중국 북경에 입성했다. 북경대 법학석사 과정을 수료한 김종길 변호사의 지휘아래 중국변호사 4명 등이 상주하고 있는 북경사무소는 최근 포스코를 대리해 중국철강업체 인수에 나서는 등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개설 초기엔 반덤핑, 설비투자업무와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었으나, 얼마전부터 M&A와 증권분야 업무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은 또 북경 진출에 이어 표인수 미국변호사를 대표로 상해사무소 개설을 준비중에 있다.
태평양의 20여년 역사를 보면 이처럼 국내 로펌업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대목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외적인 업무수행 뿐만 아니라 내부 운영에 있어서도 태평양은 여러 로펌에 참고 사례가 되고 있다. 다른 로펌의 관계자들이 태평양 변호사들의 분배시스템을 한 수 배우러 왔다는 얘기도 업계에선 나돌았었다. 2002년 12월엔 설립자인 김인섭 변호사가 일체의 지분을 포기하며 일선에서 사실상 은퇴해 또한번 업계에 뉴스가 되기도 했다. 태평양의 변호사들은 이에대해 "후발주자로서 가급적 우리 실정에 맞는 로펌 문화를 형성하고자 한 노력이 새로운 시도로 나타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1백50여명의 국내외 변호사가 포진한 태평양은 변호사 수에 있어서도 김&장에 이어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부쩍 규모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국내 로펌들이 합병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몸집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 등에선 법률회사를 선정할 때 일단 덩치 큰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로펌들이 경쟁적으로 변호사 수를 늘리는 측면도 있다. 또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국내 법률시장의 개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좀 더 규모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태평양 변호사들의 판단이다.
문제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태평양의 전통상 규모 확대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고민이라고 한다. 이정훈 대표변호사도 "중요한 것은 변호사 수가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의 돈독한 유대감"이라며 합병 등 인위적인 방법을 통한 세 불리기엔 분명한 선을 그은 적이 있다. 실제로 오래전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이 집단적으로 태평양을 찾아 와 적극적으로 합병을 제의했으나, 완곡하게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변호사들 사이의 내부 결속은 대단히 공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립 이후 뜻이 안맞아 태평양을 떠난 변호사가 거의 없다고 태평양측은 강조한다. 변호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대목에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러머니(Euromoney) 계열의 법률잡지인 아시아로(AsiaLaw)가 최근 변호사들을 상대로 '가장 일하고 싶은 로펌'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태평양이 '근무환경' 평가에서 국내 로펌중 1위를 차지했다. '전문성 계발' 항목에서도 법무법인 광장, 화우와 함께 공동 1위에 선정됐다.
구성원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를 강조하는 태평양이 앞으로 규모의 고민을 어떻게 풀어갈 지 해법이 기다려진다.
국제변호사 1호인 김흥한 변호사가 그랬고, 이병호, 김진억, 김영무, 이태희, 신영무 변호사가 모두 국내에서 사법시험 등에 합격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식 로펌을 경험하고 국제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후에도 미국의 대형 로펌인 '베이커 & 매켄지(Baker & McKenzie)'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활약한 경력의 윤호일 변호사가 나중에 법무법인 화백과 합친 법무법인 우방을 세우는 등 미국파의 로펌 설립은 좀 더 이어진다.
그러나 로펌이 미국 유학파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특히 우리 경제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1980년대 들어 기업법무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른바 국내파 법조인들도 잇따라 로펌을 설립하고 나섰다. 시장이 성숙되면서 기업법무에 특화하는 대형 법률회사가 자생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그 원조쯤에 해당된다.
이어 법무법인 화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법무법인 화백,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서정, 법무법인 로고스 등도 법원과 검찰의 간부를 지낸 재조 출신의 중량급 변호사들이 설립을 주도한 게 특징이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미국 유학에 나섰던 유학파들과는 달리 판, 검사로 임관해 오랫동안 재조에서 실무를 익힌 후 로펌을 열어 기업법무, 국제법무 분야로 영역을 넓혀 갔다. 기업법무로 시작해 재조 출신을 영입하며 송무쪽을 강화해 온 미국 유학파들의 로펌과는 성장경로가 다르다.
태평양의 설립자인 김인섭 변호사가 당시 대법원 이하 서울 지역의 각급 법원과 검찰청이 모여 있던 서울 서소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낸 때는 80년 12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그는 순수한 국내파로, 고시 사법과 14회에 합격해 17년간 일선 법원의 판사로 근무했다. 외국에 유학한 경험은 없었다. 지금은 태평양의 지휘부를 이루고 있는 이재식, 황의인 변호사도 이때 함께 참여했다.
김 변호사의 활약에 힘입어 법률사무소는 성장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송무 중심의 전통적인 변호사 사무실에 머무르지 않았다. 기업법무를 지향하며 로펌 형태의 법률사무소로 발전 방향을 잡았다. 태평양이 지금도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 '한국형 로펌'을 일궈 보겠다고 나섰다.
변호사로 개업한 지 꼭 6년만인 86년 12월. 배명인 전 법무부장관과 서울지검 검사 출신으로 미 노틀담대 로스쿨에서 J.D.를 마친 이정훈 변호사 등이 합류하며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란 간판을 내걸었다. 외국 고객들에게 '배, 김 & 리(Bae, Kim & Lee)'로 더 잘 알려진 태평양이 국내 로펌 시장에 본격적으로 돛을 올린 것이다.
이때 이정훈 변호사와 함께 기업자문 분야를 대표하는 오용석, 이근병 변호사도 합류하는 등 규모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정훈 변호사는 현재 태평양의 대표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오용석 변호사는 몇년전부터 매니징 파트너가 돼 크고 작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후 태평양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특히 태평양 이전부터 쌓인 탄탄한 송무 기반이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송무의 경쟁력을 밑바탕으로 갈수록 확대되는 기업자문 분야를 강화하며 일찌감치 한국을 대표하는 로펌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얼마전에 영입한 이강국 전 대법관과 송진훈 전 대법관을 위시해 법원과 검찰에서 이름을 날리던 쟁쟁한 재조 출신이 많은 것도 태평양 송무팀의 특징이다. 로펌 업계의 한 분석에 따르면 전직 고법부장 이상 변호사를 기준으로 하면 태평양이 가장 많다고 한다. 전직 지법부장 이상 변호사는 김&장이 가장 많다고 한다.
한때 태평양의 준비서면을 받아 본 서울중앙지법의 판사들로부터 사법연수원의 교재로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 정평이 나 있는 태평양 송무팀의 경쟁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변호인으로 선임돼 검찰과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변호인도 태평양이다. 정몽구 회장이 구속기소된 현대자동차 비자금사건에도 관여했다. 그만큼 태평양이 크고 어려운 사건의 단골 변호인으로 뽑혀 다닌다는 얘기다.
송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형사팀을 가장 먼저 운영한 곳도 태평양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많은 로펌에서 검찰 출신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형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나 기업인 등이 관련된 형사사건이 늘면서 로펌 형사팀의 비중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게 주요 로펌의 최근 추세이기도 하다.
태평양에선 창립 멤버중 한 사람인 배명인 전 법무장관과 이명재 전 검찰총장, 김영철 전 법무연수원장,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한 강원일 전 검사장, 박종렬 전 검사장 등이 후배들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해말 막을 내린 대검찰청의 공적자금비리수사에서 관련 사건을 가장 많이 맡아 변호하고 있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올초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을 지낸 이승섭 변호사를 영입했다.
▲기업 인수 · 합병(M&A) ▲국제중재 ▲정보통신 분야 등에서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 국제중재법정 제소로 번진 대한생명 인수를 둘러싼 한화그룹과 예금보험공사의 다툼에서 원고측에 해당하는 예보공사를 대리하고 있다. 태평양이 비슷한 사건을 처리해 본 경험(case record)에서 점수를 많이 받아 대리인으로 선정됐다는 후문이다. 상대방인 한화측은 김&장이 맡아 불꽃튀는 대리전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1998∼2001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원천기술 보유 업체인 미 퀄컴사을 상대로 진행한 로열티 지급 관련 국제 중재사건에선 ETRI를 대리했다. 정보통신분야의 오양호 변호사 등이 나서 퀄컴사로부터 2억 달러를 받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소버린자산운용과 SK측과의 경영권 분쟁에선 SK측을 대리했으며, 신호제지의 경영권 분쟁땐 국일제지측을 대리했다.
해외진출에도 앞장섰다.
2002년 4월 국내 로펌중 최초로 일본 동경사무소를 연데 이어 2005년 4월 역시 국내 로펌중 가장 먼저 사무소를 내고 중국 북경에 입성했다. 북경대 법학석사 과정을 수료한 김종길 변호사의 지휘아래 중국변호사 4명 등이 상주하고 있는 북경사무소는 최근 포스코를 대리해 중국철강업체 인수에 나서는 등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개설 초기엔 반덤핑, 설비투자업무와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었으나, 얼마전부터 M&A와 증권분야 업무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은 또 북경 진출에 이어 표인수 미국변호사를 대표로 상해사무소 개설을 준비중에 있다.
태평양의 20여년 역사를 보면 이처럼 국내 로펌업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대목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외적인 업무수행 뿐만 아니라 내부 운영에 있어서도 태평양은 여러 로펌에 참고 사례가 되고 있다. 다른 로펌의 관계자들이 태평양 변호사들의 분배시스템을 한 수 배우러 왔다는 얘기도 업계에선 나돌았었다. 2002년 12월엔 설립자인 김인섭 변호사가 일체의 지분을 포기하며 일선에서 사실상 은퇴해 또한번 업계에 뉴스가 되기도 했다. 태평양의 변호사들은 이에대해 "후발주자로서 가급적 우리 실정에 맞는 로펌 문화를 형성하고자 한 노력이 새로운 시도로 나타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1백50여명의 국내외 변호사가 포진한 태평양은 변호사 수에 있어서도 김&장에 이어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부쩍 규모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국내 로펌들이 합병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몸집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 등에선 법률회사를 선정할 때 일단 덩치 큰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로펌들이 경쟁적으로 변호사 수를 늘리는 측면도 있다. 또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국내 법률시장의 개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좀 더 규모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태평양 변호사들의 판단이다.
문제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태평양의 전통상 규모 확대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고민이라고 한다. 이정훈 대표변호사도 "중요한 것은 변호사 수가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의 돈독한 유대감"이라며 합병 등 인위적인 방법을 통한 세 불리기엔 분명한 선을 그은 적이 있다. 실제로 오래전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이 집단적으로 태평양을 찾아 와 적극적으로 합병을 제의했으나, 완곡하게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변호사들 사이의 내부 결속은 대단히 공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립 이후 뜻이 안맞아 태평양을 떠난 변호사가 거의 없다고 태평양측은 강조한다. 변호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대목에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러머니(Euromoney) 계열의 법률잡지인 아시아로(AsiaLaw)가 최근 변호사들을 상대로 '가장 일하고 싶은 로펌'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태평양이 '근무환경' 평가에서 국내 로펌중 1위를 차지했다. '전문성 계발' 항목에서도 법무법인 광장, 화우와 함께 공동 1위에 선정됐다.
구성원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를 강조하는 태평양이 앞으로 규모의 고민을 어떻게 풀어갈 지 해법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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