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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짐승 아닌 사람이다”

<현장> 장애아 학부모 40여명, 국회 본청 기습 연좌농성

“우리 아이들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왜 이 사회는 장애아동을 교육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나. 제발 부탁이다. 당신들 국회의원들도 자식이 있을 것 아닌가. 당신들의 당리당략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길 수는 없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소속 40여명의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24일 국회 본청 1층에서 기습적인 연좌농성에 돌입했다.

교육권연대 소속 학부모들은 이날 오후 3시께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1년째 늦추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면담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지만 면담이 여의치 않자 곧바로 본청 면회실을 뚫고 한나라당 대변인실 앞 로비에 자리 잡았다.

장애인교육지원법 1년째 표류, 분노한 학부모들 국회 본청 농성

학부모들은 국회 본청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위과 직원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고 장애아동 1명은 안면부에 많은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국회 본청과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비서실에서 ‘장애인교육지원법 4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라’라고 쓰인 피켓과 대형 걸개를 들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소속 장애아동 학부모 40여명이 24일 국회 본청에서 기습 연좌농성에 들어갔다.ⓒ최병성 기자


이에 앞서 이들은 지난 달 26일부터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7층에서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한달 가까이 단식농성을 벌여왔다.

현재 경위과 직원들은 이들이 연좌하고 있는 자리에서 외부로 나가는 모든 통로를 봉쇄하고 해산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권연대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면담하고 이들이 4월 임시 국회 통과를 약속할 때까지 연좌농성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전국에서 올라온 학부모들이 저마다 자신의 아이들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받는 설움과 차별을 토로하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서울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소속 김혜미씨는 “전국의 장애아동들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교육을 받을 곳을 찾지 못하고 많은 학교들이 우리 아이들의 입학을 거부해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시설에 쳐박혀있다”며 “우리가 얼마나 더 싸우고 시위를 해야 우리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라고 절규했다.

"내 아이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대전에서 올라온 한 학부모는 “내 아이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유치원도 못가고 겨우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거기서도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 어느덧 4학년이 됐다”며 “사회에 외치고 싶다. 살려달라고. 내 아이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교육을 받을 권리를 누려야한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올라온 또 다른 학부모도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으로 싸우는 지금도 전국에서 장애아동과 학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고 있다”며 “지금껏 박탈당한 우리 아이들의 행복권을 찾기 위해서라도 4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이 제정되야한다”고 촉구했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장애학생 부모, 특수교사, 장애인당사자, 장애인교육 전문가들이 3년여에 걸쳐 준비해온 법안으로 ‘장애인의 교육권 보장 전면 제도화’를 통해 전국 모든 장애인들이 법적 틀 안에서 특정상황에 제한 없이 교육을 제공받는 것을 골자로 지난 5월 2일 국회 교육위에 제출됐다.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은 장애 영유아시기부터 초중등, 장애성인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에 따른 장애인의 교육지원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규정, 기존의 특수교육진흥법이 드러냈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아왔다.

법안은 구체적으로 ▲장애학생의 유치원, 고교과정 의무교육화 ▲장애학급 학급당 학생수 하향조정 ▲특수교육지원체제 법적근거 마련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의 권리 명시 등 장애인의 의무교육 확대 및 평생교육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 해 5월 국회에 제출된 장애인교육지원법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촉구해왔지만 국회는 1년 가까이 단 한 차례의 심의도 하지 않았다.ⓒ최병성 기자


장애인계의 숙원, 정치권 당리당략 희생양으로 전락

법안발의 당시 초안마련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해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손봉숙 민주당 의원이 공동발의했고 당시 국회의원 2백25명이 법안 발의에 서명, 전체 의원 중 76%에 달하는 초당적인 지지를 얻어냈었다.

그러나 정작 국회 교육위는 당시 병합심의 대상인 교육부의 특수교육진흥법개정안이 제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안심의를 미뤘다. 교육부의 법안이 제출된 이후에도 교육위는 법안심사소위 구성 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1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심의 한번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한나라당이 교육위에 계류된 모든 법안을 사학법 재개정과 연계시킨다는 방침을 고집하면서 법안심사에서 후순위로 밀려있는 상황이다.

도경만 장애인교육권연대 위원장은 “1년이 지나도록 심의 한번 없이 공청회만 개최했을 뿐”이라며 “당장 6월부터는 정치권이 대선정국에 매몰되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묻힐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반드시 4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제정되야한다”고 주장했다.

27번째 장애인의 날을 맞은 지난 4월 20일, 정치권은 저마다 장애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국회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장애인교육지원법’을 거론한 정당은 없었다.

이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학부모들의 기습시위가 계속되는 와중에 국회 정론관을 찾았지만 브리핑의 내용은 4.25재보궐선거와 관련된 정치공방이 전부였다.

한 학부모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여러 차례 “제발 누구엔가는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법안 처리를 외면하지 말아달라”며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만 했다면 우리 같은 학부모들이 왜 이렇게 밥을 굶고 머리를 깍고 시위를 하겠나”라고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질타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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