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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비정규직법 무력화 책자 발간 파문

우원식 의원 "기업 사회적 책임 회피에 착잡"

올해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정규직화를 회피할 수있는 방안 등 법의 허점을 소개한 책자를 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비정규직법 제정으로 비정규직에게 피해만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로 나타난 징후이기 때문이다.

법망 피한 고용 방안소개 책자 펴내

6일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경총 노동연구원은 지난 1월 중순 75쪽 분량의 <비정규직 법률 및 인력관리 체크포인트>라는 제목의 책자를 제작해 서울지역 4백개 회원사 기업에 배포했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의 골자는 '계약직을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는 것. 그러나 경총은 이 책자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법정 사용기간(2년) 이내에서 사용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같은 근로자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2년에서 며칠 모자란 7백20여 일간 고용한 뒤, 한두 달 쉰 뒤 다시 고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 의무를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인 셈.

경총은 또 같은 직무에 비정규직을 최대 4년 동안 연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파견근로자를 2년 사용하고 동일 직무에 사용했던 파견 근로자를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파견근로자의 경우 2년 뒤 고용의 의무는 있지만 정규직화할 의무는 없다는 법률 해석을 적용한 것이다.

경총은 또 고령자 인력활용 차원에서 55살 이상일 경우 '2년 뒤 정규직화'규제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한 법조항의 허점을 이용해, 53살 근로자를 2년 계약직으로 고용하면 이 근로자가 55살이 된 뒤에는 계속해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하고 있다.

경총은 이밖에 "비정규직으로 2년 뒤 정규직이 되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다"는 법의 맹점도 지적했다. 우리은행 여직원의 정규직화처럼 고용안정은 보장받을 수 있지만, 임금 등 근로조건은 기존 정규직과 격차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경총은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면 고용의무를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고용의무를 계속 이행하지 않고 있어도, 고용의무 규정만으로는 이행 강제를 요구하는 소송 제기는 곤란하다"고 소개했다.

경총은 파문이 일자 "법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법률적 자문을 받아 내부용으로 만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비정규직 법안을 만든 의원들도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비정규법안 처리를 주도했던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경총이라는 사용자 단체가 본인들도 법 개정에 참여했으면서 공식적으로 이렇게 문건을 만들어 농락하고 우롱했다는 데 대해 법을 만든 사람으로 화가난다"며 "경총이 내놓은 방안에 대한 보완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어떤 법이든 악의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은 있겠지만 기업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서는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경총을 비난했다.
심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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