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18일 '대통합 신당'이라는 봉합에 합의한 직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친노 당 사수파에게 "당 해체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면 신당 추진을 받아들이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당 안팎에서 커다란 정치적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盧 "당 해체 아니라면 통합신당 추진 반대 안해"

이는 노대통령이 범여권 정계개편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동시에 대선 등 향후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될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초대 비서실장이자 열린우리당 고문인 문희상 의원과 만난 자리에 이병완 비서실장을 불러 "당 해체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면, 통합신당 추진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신당 추진을 받아들여 전당대회를 치르라"고 지시했다. 이에 문 의원은 당 사수파 의원들과 접촉해 노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고, 그후 '신당'이란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당 사수파는 한발 물러서 '대통합 신당'이란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준비위의 절충안을 사실상 묵인했다.

당 사수파는 문 의원을 통한 노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노 대통령 의견은 참고사항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무늬만 신당' 추진 드라이브?

노 대통령의 지시 사실은 18일 전대준비위의 '대통합 신당'에 대해 "무늬만 신당이 아니냐"는 의혹을 한층 증폭시키는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여지며, 당 안팎에 커다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는 친노 당 사수파의 '당 해체 결사반대' 배후에 노심(盧心)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또한 노 대통령이 정치 불개입 입장을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헌 제안 등이 일련의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런 마당에 노 대통령이 직접 친노 당사수파에게 "당 해체가 아니라면 통합신당 추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토록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정가의 의혹이 근거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해주는 방증자료로 충분하다는 게 정가의 지배적 평가다.

정계개편에 노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대통합 신당'으로 미봉되는 듯 하던 열린우리당 신당 창당 갈등을 재차 증폭시키는 동시에, 한나라당, 민주당 등 야당들의 개헌반대를 더욱 강화시키는 후폭풍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천정배 '당 해체파' 중심축으로 급부상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고건 사퇴후 신당창당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김근태 의장이나, 고건 사퇴 반사이익에 대권도전 의지를 굳힌 정동영 전의장 대신에 '당 해체파'의 중심축으로 급부상 조짐을 보이고 있는 천정배 의원의 향배다.

천 의원은 이미 18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전대 준비위에서 당 해체 추진을 명문화하지 않은 것이 걱정된다"며 "전대 결과가 미봉으로 끝나면 비상한 길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탈당 경고를 한 바 있다. 천 의원은 앞서 본지와 만나 "노대통령이 나에게 있으면 있지, 나는 노대통령에게 부채가 없다"며 '제3 후보' 영입을 통한 신당 창당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천 의원의 이같은 분명한 입장 표명에 김근태-정동영의 '무늬만 신당' 합의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최재천, 임종인 의원 등 당내 상당수 의원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어, 고건 사퇴 쇼크로 큰 혼란에 빠졌던 신당 추진에 천 의원이 새로운 중심축이 될 지 주목할 일이다.

당 해체파의 한 관계자는 19일 "친노 당사수파에 대한 노대통령 지시는 '무늬만 신당'을 추진하라는 지시에 다름 아니다"라며 "분양원가 공개도 '무늬만 공개'로 그치더니, 신당까지도 이런 식으로 만들려 할 경우 연말 대선은 치루나마나"라고 노 대통령을 질타하며 '마이웨이'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