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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사망, '김형욱 실종' 영구미제화

3일 사망, "무덤까지 비밀 갖고 가겠다"며 함구로 일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 살해사건에 깊게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이상열 전 주프랑스 공사(77)가 3일 사망함으로써 김형욱 실종사건은 사실상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이 전대사는 3일 노환에 감기 기운이 겹치면서 별세했다. 향년 77세.

그는 김형욱 실종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나 "정보기관 출신은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며 마지막까지 함구로 일관하다가 사망, 결국 자신의 말대로 진실을 무덤까지 갖고 가게 된 것이다.

과거사위 "김재규 명 받고 이상열이 김형욱 살해지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국정원 과거사위)’는 지난해 5월26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은 79년 9월 중정의 프랑스 책임자였던 이상열 주불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다. 이공사는 파리에 체류 중이던 중정 어학연수생 신현진·이만수(가명)씨로 하여금 동유럽인 2명을 포섭토록 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에 대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조사결과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으로부터 김형욱 살해지시를 받은 것으로 밝혀진 이상열 당시 주프랑스공사. 그가 3일 끝까지 함구한 채 사망했다. ⓒ연합뉴스


이공사는 특히 김전부장이 “도박자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뒤 현지 연수생들에게 김전부장을 자신의 대사관 관용차로 납치, 파리 근교에서 살해토록 지시했다.

동유럽인 2명은 파리 근교의 외곽도로에서 50m 정도 떨어진 숲속에서 김전부장을 살해한 뒤 낙엽더미 속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범행 대가로 중정이 전달한 10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김재규 부장은 같은해 10월13일쯤 서울로 귀환해 직접 범행 결과를 보고한 신현진씨에게 3백만원과 20만원이 든 현금봉투를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이상이 과거사의 진상발표 요지다.

과거사위 안병욱 간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에 대해 “박전대통령이 당시 미국으로 망명한 김전부장이 유신정권을 비난하는 데 분개하고 회고록 출간 저지를 지시했지만 직접 살해 지시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사위 중간발표는 그 내용의 엉성함 때문에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고, 김형욱 실종 사건의 미스테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 후배들의 간청에도 '함구'로 일관

과거사위 조사의 부실함은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3∼4월 이상열씨에게 사실 고백 등 협조를 간청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과거사위의 '관련 인물 면담조사 결과'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3월 전직 중정요원 12명에게, 4월에는 이란대사 등을 역임한 이 전 공사에게 국정원 고위 간부 명의로 각각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상열 대사님께'란 호칭으로 이 전 공사에 보낸 서한은 "국정원이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털어버리지 않고서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살아 남을 수 없으며 미래도 개척할 수 없다"면서 '국정원 선배'로서 후배들의 앞길을 열어줄 수 있는 결단을 호소했다.

서한은 또 "국정원 조사에서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국정원 자체 조사활동에 대한 비난도 무릅써야한다"며 "조만간 결과를 밝혀야하는 만큼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부득이 대사님의 사건 연루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양해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서한은 "김형욱 유가족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유해를 찾아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사건 당시의 연수생들이 무척 괴로워하고 있는 바 이들을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 옛 상사로서의 도리라고 생각된다"며 이 전 공사의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열씨 등은 "정보기관 출신으로서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야한다"며 끝까지 협조를 거부했다. 과연 끝까지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한 이상열씨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지 지켜볼 일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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