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무능하거나, 지독히 타락했거나"

<뷰스 칼럼> 盧대통령의 8.24 '바다 이야기'와 '정권재창출 이야기'

2006-08-28 10:32:36

"집에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더니... '바다 이야기' 사태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책이었다. 어떻게 이 상황까지 되도록 모르고 있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파문이) 청와대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아직 젊다. 나와 얘기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도 열린우리당에 있다. 그들과 당에 끝까지 남고 싶다. 그러나 총선-대선에 걸림돌이 된다면..."

지난 24일 밤. 노무현 대통령이 김영춘 송영길 안영근 오영식 임종석 정장선 등 열린우리당 수도권 재선의원 6명을 청와대에 불러 3시간여 만찬을 하던 자리에서 했다는 말이다. 노대통령은 참석자들을 보고 "반노만 다 모였네"라고 뼈 있는 농을 던졌고, 한 참석자 역시 "레임덕이 오니까 대화가 됩니다"라고 뼈 있는 화답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바다 이야기'와 '정권 재창출 이야기'가 이날 모임의 양대 화두였던 셈이다. 이는 노대통령이 요즘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풍광이기도 하다.

<화두 1> '바다이야기': "지독히 무능하거나, 지독히 타락했거나..."

그러나 이 전언을 접한 대다수 국민은 화를 낸다. 모독감까지 느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시민은 "지독히 무능하거나, 지독히 타락했거나..."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우선 '바다 이야기' 사태만 해도 그렇다.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1%는 '바다 이야기' 사태를 '권력형 비리'로 생각하고 있다. 75%는 검찰 조사를 못믿겠으니, 국정조사와 특검으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마당에 "집에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더니"라며 정책실패임을 강조하는 노 대통령의 해명은 구차스럽기까지 하다.

"집에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짓는다"는 말은 철저한 면피다. 기막힌 '우연의 연속'으로 '바다 이야기' 사태가 터졌다는 강변에 다름 아니다.

개가 왜 안 짖었을까. 연일 계속되던 '집 지키기'의 긴장에 지쳐 잠시 잠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도둑이 던져준 수면제 묻은 고깃덩어리를 꿀꺽 삼켰기 때문일까. 다수 국민은 후자라 생각한다. "집에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짓는다"는 우리 속담 대신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더 믿고 있는 것이다.

'바다 이야기'와 '정권 재창출 이야기'로 고심하고 있음을 토로한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실제로 노 대통령 만찬 다음날인 25일 본지의 단독발굴을 통해 청와대의 5급 권모 행정관과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주)코윈솔루션간 유착 의혹이 밝혀지기도 했다.

정부여당은 "권 행정관 의혹은 청와대가 내사를 통해 밝혀내 25일 밤 검찰에 고발한 만큼 권력형비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또 "그는 청와대 직원이 아니라 국세청 파견 공무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지 취재과정에 받은 느낌은 그게 아니었다. 권 행정관 비리를 확인한 뒤 마지막 사실 확인사살차 25일 오전 오후 여러 차례 청와대 홍보수석실, 민정수석실로 사실관계를 물었으나 이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기사 최종 발행전에 "마지막으로 1시간만 사실관계 확인시간을 주겠다"고 했으나 확인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본보가 이 사실을 보도한 지 4시간 뒤인 25일 밤 10시 청와대는 기자회견을 갖고 권 행정관 비리 및 검찰 이관, 국세청으로의 발령 사실을 발표했다. 과연 청와대가 처음부터 이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힐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가는 대목이다.

또한 청와대는 이날 검찰로 이관했으나 검찰은 이미 오래 전 권 행정관 비리를 내사해왔다는 사실도 이같은 의혹을 증폭시킨다. (주)코윈솔루션의 최춘자 대표는 본지 취재과정에 "이미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실토했다. 청와대가 25일 밤 검찰로 이관하겠다고 밝히기 전에 검찰은 이미 그 내역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권 행정관이 '국세청 파견직원'일뿐 '청와대 직원'이 아니며, 따라서 권력형비리는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란 마찬가지다. 권 행정관은 지난 2004년 3월부터 장장 2년 5개월동안 청와대에 근무해왔다. 그런 그의 잘못을 어떻게 '청와대' 잘못이 아닌 '국세청' 잘못으로 몰아부칠 수 있나. 지난 2년 5개월동안 그를 관리-통솔한 것이 국세청장이었나 청와대 비설실장이었나.

'바다 이야기' 파문이 물의를 빚은 것은 지난해초부터다. 지난해 4월 여야 국회의원 26명이 경품용 상품권 폐지법안을 제출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몰랐다"고 말한다. 노 대통령은 몰랐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조차 "몰랐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한 시민의 말대로 "지독히 무능하거나, 아니면 지독히 타락했거나" 둘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최근 <청와대브리핑>에 띄운 글에서 "청와대 근무자는 그 분야 최고의 인재이자 높은 윤리의식 소유자"라고 강변했다. 비서진의 '민심 불감증', '몰염치'가 어느 수준인가를 보여주는 풍광이다.

<화두 2> '정권 재창출 이야기': "국민이 조작대상인가"

"내가 아직 젊다. 당에 끝까지 남고 싶다. 그러나 총선-대선에 걸림돌이 된다면..."이라는 노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이야기'도 세간에서 마찬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1987년 대선때 노태우가 전두환한테 그러했고 1992년 대선때 김영삼이 노태우한테 그러했듯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 나를 밟고 가도 된다는 뉴앙스다.

여기한 화답한 열린우리당의 "레임덕이 오니까 대화가 된다"는 발언은, 정부여당이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아는가를 보여주는 백미다. '국민은 조작대상'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현역대통령 밟고가기'라는 정부여권의 대선전략이 곧바로 언론에 노출된 것도 정부여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심스런 모습이나, 진정성이 결여된 그런 쇼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더욱 한심하다.

수십년간 정치권의 꼼수를 지켜본 까닭에 그들의 속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국민을 알아도, 너무 우습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나까지 조사하라"고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은 참여정권에게 두번 세게 뒤통수를 맞았다.

한번은 아파트값 폭등이었다. 뒤늦게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난리법석이나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정권출범후 못난 경제관료에게 경제운영을 맡긴 결과, 아파트값은 단군이래 최대폭등을 거듭했고 한국의 양극화는 회복불능의 상태로 벌어졌다.

다른 한번이 작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바다이야기' 사태다. 양극화의 늪에 빠져 절망하던 서민-샐러리맨에게 '바다이야기'는 악마의 유혹을 던졌고 다수가 여기에 말려들어 완전몰락했다.

이런 마당에 총리나 앞세워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통령은 뒷전에서 '식사정치'를 통해 "정책실패일뿐, 청와대는 무관하다"고 연일 주장하는 모양새는 보기에 안타깝기까지 하다.

"국민 여러분,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제 주변만은 깨끗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제 주변도 오염됐을 수 있습니다.

검찰에게 이 순간 지시합니다. 제 비서뿐 아니라 제 일가친척, 아니 나에 대해서까지 혐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조사하십시오. 사소한 비리라고 적발되면 무조건 구속하십시오. 성역은 없습니다."

국민들이 지금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이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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