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무회의는 교과서 값을 출판사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럴 경우 교과서 값은 급등할 것이란 게 출판업계의 일반적 관측이다.
국무회의에선 또 교과서 공동발행제도 폐지했다. 출판사 실력대로 맘껏 교과서를 만들어 입찰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덩치 작은 중소형 출판사들은 앞으로 교과서시장에 뛰어들 생각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대형출판사에겐 낭보이나, 학부모와 중소 출판업자들은 열불 받게 하는 소식이다.
전날인 10일에는 안경점과 이-미용실 주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날 한국개발연구원(KDI) 대회의실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주최로 해운업과 안경업, 이·미용업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경사회협회·미용사협회 소속 회원 500여명이 토론회 진행을 막아 무산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안경점과 이-미용업소는 면허증을 취득한 개인이 1곳의 업소만을 개설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기업이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을 고용해 다수의 업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이 안경업, 이-미용업에도 뛰어들게 하겠다는 것. 그러면 '값싸고 양질의 서비스'가 가능해지리라는 것.
하지만 공정위 논리는 해당업종 상인들은 물론, 보건복지가족부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대표적 서민업종인 안경점과 이-미용업소에까지 기업진출을 허용하면 서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실세 공정거래위원장이 포진한 공정위는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소비자들도 "싹 풀어" 효과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한 소비자의 말이다.
"이미 강남의 기업형 미용실들은 살인적 요금을 받고 있다. 내부설비에 많은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판에 기업이 미용업에 진출하면, 고급 내장 값에다가 브랜드 로열티까지 붙여 더 비싸게 받을 게 분명하다. 미용실에 진출할 기업들의 목적은 브랜드 장사이기 때문이다."
10일 오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진입규제 개선을 위한 공개토론회'에 들어가지 못한 안경사들이 정문 앞에서 영세 안경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나중에 떡볶이 장사, 라면가게까지 넘볼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정부는 "싹 풀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기업수퍼마켓(SSM) 파동이 거세게 일자, SSM 관리권을 지자체로 넘기면서 슬그머니 논란의 와중에서 빠져나온 중앙정부답지 않은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다. 그 기저에는 '강자 독식'의 논리가 짙게 깔려 있다.
하지만 '강자 독식'이 과연 한국경제, 한국사회에 도움이 될까. 물론, 새로운 업종에 진출하는 기업은 돈을 벌 것이다. 그 대신 무수한 소상인과 그들의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다.
이들은 정부를, 그리고 기업을 원망할 것이다. 그 원망은 길거리에서 과거 솥뚜껑 시위처럼 시위 형태로 폭발할 수도, 선거 때 '투표 반란' 형태로 폭발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에 정부와 재계 전체에 대한 적개감이 지금보다 몇 배나 급증할 것이란 점이다.
아울러 한국 경제계 자체도 쇠락의 길로 빠져들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겠다는 기업들의 호연지기는 사라지고, 나중엔 떡볶이 장사까지 넘보고 라면가게까지 넘볼 게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수 기업이 '구멍가게 재벌'로 전락하고, 한국경제도 동반 쇠락할 것이란 얘기다.
"싹 풀어"가 "싹 바꿔" 초래할 수도
"규제 전면해제는 이명박 후보의 선거공약이었다. 대선 때 몰표를 던지지 않았나. 몰표를 받은 대선공약을 이행에 옮기려 할 뿐인데 지금 와 왜 난리인가."
한 여권인사의 항변이다.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만큼 '다수결 원리'에 따라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대선 때 다수 유권자가 지지한 게 이런 '강자 독식'이었나. 지금 다수가 반대하는 '다수결'은 묵살해도 되는 것인가. '과거의 다수결'만 중요할 뿐, '지금의 다수결'은 묵살해도 된단 말인가. '다수결의 역설'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싹 바꿔"라는 노래가 선거 때 맹위를 떨친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의 "싹 풀어"는 가까운 시일 내 "싹 바꿔"를 초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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