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들, 채점해보니 모두 F학점"

이준구 교수 충격 폭로, "MB의 사교육 미봉책에 절망감 느껴"

2009-06-29 09:16:03

"이번 학기 ‘재정학’ 학기말시험 채점을 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예년보다 더 어렵게 출제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의 답안이 말 그대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0점 아니면 거의 0점에 가까운 답안이 대략 3분의 1 정도 되었고, 모두 정답에 가까운 것을 써낸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채점을 끝내고 나서 평균점수를 계산하니 30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절대평가를 하면 거의 모두 F학점을 받아야 했으나, 내가 상대평가 방식을 선택한 덕분에 간신히 그 비극을 면할 수 있었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가 밝힌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다.

이 교수는 "우리 대학에 들어올 정도라면 그 동안 공부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이 약간의 응용을 요하는 문제를 냈다고 백지에 가까운 답안을 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들이 그 동안 공부해 온 방식에 무언가 결정적인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며 "내 느낌으로는 그저 암기한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것만 능할 뿐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같다"고 탄식했다.

이 교수는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같은 글을 올렸다. 우리 사회 최고대학의 충격적 실태를 공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가 이같은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최근 드라이브를 건 사교육비 절감 대책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지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교수는 "최근 정부가 교육을 바로 잡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왔다. 대통령은 대학입시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정부 일각에서는 사교육을 줄일 획기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뉴스를 흘린다"며 "정부가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사실 정부가 뒤늦게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팔 걷고 나서는 것 자체가 약간 우스꽝스럽다"며 "지금까지는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교육의 판을 다시 짜는 데 전념해 오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사고나 국제중의 설립이 모두 사교육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대학입시를 전적으로 대학에 맡기는 것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라며, 사교육비 폭증의 근원을 현 정부가 제공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는 사교육비 절감책과 관련해서도 "내신과목을 축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과목 수를 줄여 집중적인 사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될 뿐, 사교육의 규모 그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또한 10시에 학원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은 변칙, 음성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수능시험을 2, 3회 보게 하고 그 중 높은 점수로 대학에 지원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라며 "시험을 여러 번 보게 한다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한 번 쳐서 좋은 점수 나왔다고 그냥 있을 사람은 만점 맞은 사람밖에 없으리라는 것도 쉽게 점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 과외 금지라는 고단위 처방도 별 효과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 논의하고 있는 대책 정도로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대책들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병을 낫게 하는 처방이 아니라 단지 열을 내리려 하는 미봉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교수는 "우리 교육이 직면해 있는 좀 더 본질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글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공부만 많이 한 지적 미숙아를 양산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입시 준비에 낭비해 버린 탓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되고 공부를 할 열의도 없어진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다"라며 현재 한국교육의 본질을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기계적 암기식 교육에서 찾았다.

그는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데 흔쾌히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교육의 질을 대학 입학 성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핵심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느냐에 있다. 이에 관한 논의는 실종되고 사교육 줄이는 미봉책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느끼는 절망감의 원천"이라며 현 정부 교육대책에 절망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왜 좋은 대학 들어가는 데 목을 걸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좋은 대학들어가는 데만 목을 걸고 있기 때문에 교육이 파행의 길을 가고 사교육이 창궐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이 구도를 바꾸려면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바뀌기 전에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이란 지적으로 글을 끝맺었다.

이 교수 글은 한국교육에 대해 "인풋(input)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으나 아웃풋(output)은 거의 없다"는 선진국가들의 힐난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글로, 우리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질책에 다름 아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사교육 줄인다고 팔을 걷어붙였으나

병이 깊은 우리 교육

이번 학기 ‘재정학’ 학기말시험 채점을 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예년보다 더 어렵게 출제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의 답안이 말 그대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0점 아니면 거의 0점에 가까운 답안이 대략 3분의 1 정도 되었고, 모두 정답에 가까운 것을 써낸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채점을 끝내고 나서 평균점수를 계산하니 30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절대평가를 하면 거의 모두 F학점을 받아야 했으나, 내가 상대평가 방식을 선택한 덕분에 간신히 그 비극을 면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과목의 수강생이 특별히 공부를 게을리 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모두들 강의도 열심히 들었을 뿐 아니라, 책이 헐어버릴 정도로 부지런히 읽은 기색도 보인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사실 학생들의 학력이 조금씩 떨어진다고 느낀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료 교수들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대학에 들어올 정도라면 그 동안 공부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이 약간의 응용을 요하는 문제를 냈다고 백지에 가까운 답안을 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들이 그 동안 공부해 온 방식에 무언가 결정적인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 내 느낌으로는 그저 암기한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것만 능할 뿐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같다.

이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전 어떻게 공부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동안 이들이 ‘선행학습’이란 명목으로 낭비해 온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미친 듯이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이렇게 낭비적인 방식으로 하면 지적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신 준비, 수능 준비 역시 지적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낭비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는 매 일반이다.

게다가 대학에서 면접 비중을 높인다고 하면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모의면접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논술 비중을 높인다고 하면 모범답안을 앵무새처럼 외우느라 진을 뺀다. 도대체 논술에 어떻게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논술을 채점해 본 사람이라면 학생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학생들 면접해 보고 논술 채점해 보면 이 땅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 되어 있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우리 어린 세대가 이 병든 교육의 희생자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부에만 혼신이 힘을 쏟은 결과가 바로 이런 지적 미숙의 상태라면 사회가 그들에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거의 0점에 가까운 답안지를 내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강의실을 떠난 내 재정학 수강생들은 바로 이 병든 교육의 희생자들일 뿐이다. 내가 채점을 하면서 그들에게 분노가 아닌 깊은 연민을 느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효과가 의심되는 사교육 대책

최근 정부가 교육을 바로 잡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왔다. 대통령은 대학입시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정부 일각에서는 사교육을 줄일 획기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뉴스를 흘린다. 정부가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우리 교육의 고질적 병폐를 바로 잡는 것은 고사하고 사교육을 줄이는 것조차 어려울 게 분명하다.

사실 정부가 뒤늦게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팔 걷고 나서는 것 자체가 약간 우스꽝스럽다. 지금까지는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교육의 판을 다시 짜는 데 전념해 오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사고나 국제중의 설립이 모두 사교육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대학입시를 전적으로 대학에 맡기는 것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뒤늦게나마 정부가 사교육 대란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대증요법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내신과목을 축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과목 수를 줄여 집중적인 사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될 뿐, 사교육의 규모 그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또한 10시에 학원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은 변칙, 음성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수능시험을 2, 3회 보게 하고 그 중 높은 점수로 대학에 지원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시험을 여러 번 보게 한다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한 번, 한 번 뼈를 깎는 자세로 시험을 칠 것이 뻔하고, 이것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번 쳐서 좋은 점수 나왔다고 그냥 있을 사람은 만점 맞은 사람밖에 없으리라는 것도 쉽게 점칠 수 있는 일이다.

수능시험을 여러 번 보게 만드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사교육을 줄이는 데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내 나쁜 머리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미국에서 그렇게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닐까?

그렇다면 이만저만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다. 강남(*중국 양쯔강 이남의 땅)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가 되는 이치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사교육 억제 방안 중 이렇다 할 효과를 내리라고 예상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별 효과를 내지 못 하고 공연히 혼란만 부채질하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 과외 금지라는 고단위 처방도 별 효과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 논의하고 있는 대책 정도로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대책들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병을 낫게 하는 처방이 아니라 단지 열을 내리려 하는 미봉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본적 재검토 필요한 교육정책

지금 정부가 취하고 있는 태도를 보면, 더러운 물이 나온다고 배수구를 틀어막으려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배수구를 틀어막으면 잠깐 동안은 더러운 물이 덜 흘러나오는것 같이 보일 테지만, 얼마 후 다른 데서 넘쳐흐를 것이 뻔하다. 중요한 것은 더러운 물의 발생 그 자체를 막는 일이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배수구를 아무리 막아 보아야 소용이 없다. 더러운 물이 차올라 다른 데서 넘쳐흐르면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더러운 물의 발생 그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사교육에 대한 수요 그 자체를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대학입시가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느냐에 따라 사교육 수요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본고사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고, 경시대회 입상자에 대한 우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손보는 것만으로는 사교육 수요를 크게 줄일 수 없다. 완전한 추첨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한 사교육을 통해 합격의 확률을 높여 보려는 유혹은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에 큰 기대를 거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 나도 본고사, 심층면접, 논술보다는 더 나은 제도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본격적인 시행이 시작되자마자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불붙을 뿐 아니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려는 집요한 공작이 난무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이 제도가 그런대로 잘 운영되고 있다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잘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어떤 대학입시제도를 채택하든 사교육 수요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차선책은 단순한 대학입시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대학입시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사교육 수요가 늘어나게끔 되어 있다. 여러 가지 요소를 다양하게 고려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지역균형 선발이나 영재 선발 같은 제한적인 목적으로만 활용하고, 나머지는 내신과 수능 성적만 고려해 선발하는 단순한 체제로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고교 교육의 기본골격 역시 사교육 수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정부는 평준화를 해체하면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이 대단한 착각이라고 본다. 특목고, 자사고가 아무리 교육을 충실하게 시킨다 해도 사교육 수요를 전혀 줄일 수 없다. 사교육의 유일한 목적은 입시에서 남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있어, 학교에서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해도 그 수요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공연히 말싸움 벌일 필요 없이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에게 물어보면 간단하게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다.

평준화의 기본구도를 해체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오히려 사교육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대입 관련 사교육 수요가 전혀 줄지 않은 상황에서 고입 관련 사교육 수요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사고, 특목고의 입시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든 이것은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결과다. 몇 개의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 수요에 비해 백개나 되는 자사고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 수요가 몇 배나 더 클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학입시제도를 손보든, 학원에 통제를 가하든, 고교 평준화의 기본골격을 깨든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사교육 수요 억제에 관한 한 현 정부가 그 동안 추진해 온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대안이다. 사교육 수요를 한껏 늘려놓은 다음 뒤늦게 줄이겠다고 미봉책을 쓴들 이렇다 할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교육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는 한 사교육 수요 억제는 실현 불가능한 과제다.

참다운 교육이 자리 잡아야

그런데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우리 교육이 직면해 있는 좀 더 본질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글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공부만 많이 한 지적 미숙아를 양산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입시 준비에 낭비해 버린 탓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되고 공부를 할 열의도 없어진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준비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을 되살릴 길이 없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에는 이 문제에 관한 그 어떤 비전도 발견할 수 없다. 자사고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 살린다고 하지만, 대입 준비 잘 시켜준다는 것은 참다운 교육과 거리가 멀다. 지금도 일부 특목고에서 입시 준비를 위해 교육과정을 변칙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문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보아 새로 만들어진 자사고 역시 입시 준비기관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 것이다.

그 동안 정부가 교육에 대해 한 말들 중 이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 경쟁을 유도하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학교와 교사의 평가가 참다운 교육보다는 입시 준비와 더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이라는 점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좋은 대학 많이 보내는 학교와 교사가 높은 평가를 받는 풍토에서 참다운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데 흔쾌히 동의한다. 그러나 교육의 질을 대학 입학 성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핵심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느냐에 있다. 이에 관한 논의는 실종되고 사교육 줄이는 미봉책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느끼는 절망감의 원천이다.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왜 좋은 대학 들어가는 데 목을 걸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좋은 대학들어가는 데만 목을 걸고 있기 때문에 교육이 파행의 길을 가고 사교육이 창궐하는 게 아닌가? 이 구도를 바꾸려면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바뀌기 전에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넓은 시각에서 보아야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교육 수요 억제라는 지극히 좁은 시야에서 교육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곧 판명이 날 테지만, 사교육 억제를 위한 미봉책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런 미봉책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데 그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할 것도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사교육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교육이 우리 교육을 병들게 하고 가정을 피폐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사교육의 광풍도 서서히 그 위력을 잃어 가리라고 믿는다. 이는 몸이 건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열이 내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열을 내리려고 부산을 떨지 말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힘써야 하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참다운 교육이 자리 잡게 만들 수 있는지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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