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쇼크, 한나라 물밑은 부글부글

[한나라, 릴레이 익명인터뷰] "쟁점법안 처리? 물 건너갔다"

2009-01-21 18:52:14

한나라당 지도부는 21일 '용산 참사'와 관련, 함구령을 내렸다. TV토론에도 일절 나가지말고 언론 인터뷰도 당의 사전 허가를 얻도록 했다. 선(先)진상조사 방침에 따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인책도 거론하지 말도록 했다.

때문에 소신발언을 거듭하는 홍준표 원내대표를 제외하곤 대다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외형상 조용해졌다. 하지만 물밑기류는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부글부글이다.

"용산 참사, 권력구도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일대사건"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의원은 이날 오후 본지와 통화에서 용산 참사에 대해 "정말 상황이 어디까지 번질지 걱정"이라며 "여권의 권력구도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일대 사건"이라며 극한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일부 초선의원들의 '도심테러론' '폭력단체배후론' 등 강경 발언에 대해서도 "지금 돌아가신 분들 앞에서 잘잘못을 그렇게도 따져야 되겠나? 부관참시 아니냐"며 "정무 감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분위기 파악이 그리도 안되나?"라고 개탄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경질 문제도 마찬가지다. 평소 홍준표 원내대표에 비판적인 의원들도 김 내정자 조기경질을 연일 주장하는 홍 원내대표에 대해선 "할 말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이명박 직계의 한 의원은 "당연히 김석기 청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날 문제"라며 "자신이 진압 승인을 해놓고 이제 와서 진상조사를 한다 어쩐다 해서 시간을 끌면 결국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밖에 더되나? 꼭 물러나라고 해야 물러난다는 말인가?"라고 힐난했다.

대구-경북의 한 중진의원도 "뭐가 그리 급하다고 점거농성 한 지 25시간만에 그렇게 밀어부치나?"라며 "그게 경제살리기냐?"고 김 내정자를 질타했다. 그는 "자를 인간은 빨리 잘라야지, 하루 이틀 더 시간을 끌고 이리저리 재 봤자 답도 안 나온다"며 "민심을 그렇게 모르나?"라고 김 내정자 즉각 경질을 주문했다.

친박 핵심 의원도 "당연히 잘라야 할 김석기를 뭣하러 품고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진상 조사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이 성난 민심을 어떻게 달래야할 지 고민하는 게, 그게 바로 정치고 여당의 자세"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가 20일 용산 구민회관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속전속결로 진압하고 가겠다는 기류가 이번 참사 주범"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봇물터지고 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청와대를 비롯해 당 수뇌부까지 전부 속도전, 돌파, 돌격 이런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법을 안지키면 국회고 사회고 전부 다 속전속결로 진압하고 밟고가겠다는 이런 기류가 이번 사태를 낳은 게 아닌가?"라고 지도부의 청와대 추종을 꼬집었다.

영남권 중진 의원은 "이대로는 안된다"며 "이제는 당청관계부터 이대로 가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청이 대등한 역할로 갈지, 비판할 것은 비판할 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라며 "그런 관계 설정이 재정립돼야지, 단순히 인물만 바꾼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한나라당이 이제는 이 정부를 그대로 놔 두었다가는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까지 극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쟁점법안 처리? 물 건너갔다"

용산 참사의 후폭풍이 2월 임시국회를 강타할 것이란 우려도 곳곳에서 쏟아져나왔다.

3선의 영남권 의원은 "2월 임시국회는 물건너 갔다"며 "우리가 원하는 소위 쟁점법안은 밀어부치자마자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의 한 의원은 "진상조사와는 별도로 당장 2월 인사청문회에서 경찰청장이나 국정원장을 상대로 이 문제에 대한 집중 추궁이 있을텐데, 그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시위진압 강화법을 한쪽에서는 밀어부친다? 이건 자살행위"라며 집시법 개정이나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도권 친이 직계 의원은 "그런 정치적 유불리에 앞서 나는 우리당이 처음부터 우리안만을 무조건 통과시키겠다고 고집한 그 자체부터 자세를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며 "타협과 양보가 정치인데 그런 게 하나도 안된 상태에서 밀어부친다고 그게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전직 고위당직자 출신의 중진 의원은 "벌집을 쑤셔 벌에 쏘여 본 경험들이 없는 사람들이 정국을 쥐고 있다"며 "오로지 벌집을 발로 차는 데에만 익숙해져있던 사람들이 지금의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어제 사건을 보면서 지금 정국이 똑같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국'이라는 방안에 가스가 가득 차 있으면 반드시 화재사고가 나게 돼 있는데, 그런 정권 차원의 대형 참사의 시작이 바로 어제 사건부터라는 불길한 징조가 든다"고 극한 위기감을 토로했다.

이밖에 일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를 소집해 지도부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 "4월 재보선은 치루나마나 참패"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등, 용산 참사로 한나라당 내부는 아노미적 상태에 빠져드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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