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이 저소득층에 타격을 준다”는 거짓말

[기고] 금리인상으로 ‘잃는 자’와 ‘얻는 자’

2018-10-21 19:21:58

“향후 금리상승 시 가구의 이자상환부담이 가중되면서 소득 및 자산 대비 부채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가구들을 중심으로 고위험가구로의 편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소득 하위 20~60% 부채가구 중에서 고위험가구가 가장 크게 증가하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2018.6)

한국은행이 반기마다 발간하는 <금융안정보고서>는 경제주체별 위험요인을 분석한다. 그 분석결과는 금통위의 금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위 내용은 가장 최근에 발간한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금리를 인상할 경우 저소득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내용이다.

이런 분석결과가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 것이 저소득계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 한국은행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연구기관들 역시 금리인상의 효과를 분석하는 보고서를 낼 때마다 이와 유사한 결론을 내렸다.

3년 8개월간 기준금리가 1%대를 유지한 것이 집값 폭등의 원흉이란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금통위는 엊그제 또 금리인상을 거부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첫째 명분은 경기둔화지만, “금리인상이 저소득층에 큰 타격을 준다”는 연구기관의 분석결과도 작지 않은 명분을 제공했다.

“저소득계층을 위해 금리인상을 반대한다”는 거짓말

'경기둔화'라는 명분이 주류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거짓 핑계라는 사실은 이전 글에서 밝혔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명분이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금리상승이 가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경로는 두 가지다. 대출이자가 증가하여 가계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고, 부동산 등 가계가 보유한 자산가격이 하락함으로써 가계에 또 한번의 타격을 준다. 그러므로 금리인상이 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다는 주장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부채비율이 더 높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등 자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전제가 거짓이라는 것은 너무 뻔한 사실이므로 긴 말이 필요 없다.

저소득층은 소득이 적어서 주택을 구입할 여력이 없고, 대부분 주택을 임차한다. 그들에게 주택을 임대하는 쪽은 다주택자들인데, 바로 뒤에서 알아보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고소득자들이다. 전세와 월세는 장기적으로 보면 주택가격과 연동된다. 그러므로 금리인상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임차인인 저소득자는 주택구입비용은 물론 전·월세 비용이 감소한다. 주택가격 하락은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아닌 “축복”인 것이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부담의 증가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중 어느 쪽에 더 큰 부담을 줄까? 2018년 6월 말 현재 가계부채총액은 1천493조원인데, 그 중 금융기관에서 받은 가계대출은 1천410조원이다.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연간 28조원 증가한다. 전 국민이 매년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19조원임을 생각하면 28조원의 이자부담 증가는 가계에 엄청난 부담이 됨을 알 수 있다. 대출을 받아 주택에 투자한 가계라면 그 주택을 매도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고소득층이 가계대출의 60% 차지

28조원의 이자비용 증가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에게 각각 얼마만큼 돌아갈까? 이를 정확하게 계산하려면 가계대출 1천410조원이 소득계층별로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여러 자료 중에서 KDI가 2012년 12월 발간한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주요 현황과 위험도 평가>가 가장 믿을 만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금융기관의 실제 대출자료에서 50만명의 표본을 추출한 다음 소득계층별로 5분위로 나누어 분석하였으므로,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보다 신뢰도가 훨씬 더 높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고소득층일수록 대출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소득하위 60%는 100명 중 38명이 대출을 받았는데, 소득상위 20%는 두 배에 달하는 73명이나 대출을 받았다.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소득상위 20%가 전체 가계대출의 무려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득하위 20%와 20~40%의 대출 비중은 각각 7%와 6%에 불과하다. 금융이 다른 어느 분야보다 양극화가 극심함을 말해준다. 다소 오래 된 데이터이고 최근의 데이터를 구할 수 없긴 하지만, 소득계층별 대출 비중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금리가 2%포인트 올랐을 때 소득상위 20%의 이자부담은 17조원이 증가한다. 하위 20%와 20~40%는 각각 1.9조원과 1.7조원 증가한다.

금리인상은 저소득계층이 아니라 고소득계층에게 엄청난 이자부담을 안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소득계층 역시 금리부담이 증가하긴 하지만 그 부담은 고소득층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가계대출의 60%를 고소득자에게 대출하고서, 금리가 인상되면 대출을 거의 받지 못한 저소득자들이 타격을 입을 거라는 주장은 어떤 논리를 동원해도 해명할 수 없는 거짓말이다.

“금리인상 반대”는 고소득 자산가계급의 이익 대변

이런 의문이 솟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소득층은 말 그대로 소득이 많은 사람들인데 왜 더 많은 대출을 받았을까? 위 자료에 의하면 소득상위 20% 대출자의 평균소득은 연 4676만원으로 하위 20%와 20~40% 대출자의 평균소득 1737만원과 2235만원보다 2.7배와 2.1배 더 많다. 소득이 두 배 이상 많은데도 대출을 훨씬 더 많이 받은 이유는 주택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다주택자는 거의 대부분 고소득자들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금리상승은 자산가격 하락과 이자부담 증가라는 경로를 통해 가계에 충격을 주는데, 두 경로 모두 고소득층에 충격이 집중된다. 늘어나는 대출이자의 60%를 고소득자들이 부담해야 할 뿐 아니라,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도 대부분 고소득 자산가들에게 돌아간다. 저소득층도 이자부담이 증가하긴 하지만 고소득층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고, 주택가격 하락은 이들에게 이익이 된다.

이처럼 진실이 명백한데 국책기관을 비롯한 연구기관들은 “금리인상이 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다”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그 거짓말을 명분삼아 금통위는 금리인상을 거부한다. 주류경제학자들과 박사 연구원들이 모두 억대 연봉을 받는 고소득자들이고, 그들이 속한 연구기관들이 고소득 자산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현실을 확인하고 분노가 치민다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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