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출범의 일등공신중 한명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결국 국정원 댓글 사건은 특별검사제 도입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다른 길이 없다"며 친박인사 중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특검 수용을 공개 촉구했다.
이상돈 교수는 <월간 중앙>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야당이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특검 아니면 안 되겠다는데 받아야 하는 것이지”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사태 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돼"
이 교수는 “국정원 사태를 대통령이 풀지 않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과거 정권에서 일어난 일을 깨끗하게 털지 못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야 어차피 심판 받을 게 많지 않나? 4대강도 그렇고, 해외 자원개발도 의혹투성이다. 전 정권에서 생긴 일을 옹호하느라고 야당과 대결할 필요가 어디 있나? 그러면 국회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이명박 정권처럼 날치기도 못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검찰에서 수사 중이라 특검을 도입하지 못한다는 정부여당 주장에 대해서도 “간단하다. 진행 중인 수사를 중단하면 된다. 여권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정부여당의 박 대통령 정당성 훼손 우려에 대해서도 “댓글이 선거결과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를 계량화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본인,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배우자 직계존비속 중 누군가 당선무효형을 받아야 당선이 무효된다. 국정원 댓글사건은 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공소시효 6개월도 지났다"며 "특검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유감을 표하는 선에서 매듭짓는 게 상책”이라며 거듭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
그는 "댓글사건이 불거졌던 지난봄이나 여름 사이에 단호하게 수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 무마하고 덮고 넘어가려는 모습으로 비쳐지다 보니 일이 꼬였다. 10월 말 총리가 엄벌 의지를 밝히기 전에 단 한 사람의 연루자가 있더라도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어야 했다"며 "검찰은 수사 의지가 없었고, 여권은 마냥 뭉개는 통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탄식했다.
"국회선진화법 되돌리겠다는 건 코미디"
이 교수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추진중인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호된 쓴소리를 했다.
그는 “국회선진화법은 박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 새누리당을 이끌 때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률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발의한 법안으로 4·11총선의 중요 공약이기도 하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위헌이니 뭐니 하는 것은 완전한 자기부정이고 자가당착이다. 유사한 제도는 미국 상원에도 있다. 미국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때는 의원의 60%가 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화법 탄생 과정에 대해서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하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신 한나라당이 거의 와해 일보직전에 다다른 적이 있다. 새누리당은 새로 태어나는 각오와 반성이 필요했다"며 "그 상징으로 쟁점 법률안의 경우 재적의원 과반이 아닌 5분의 3(180명)에게 동의를 얻도록 하는 국회선진화법을 제안했고 소수파인 민주당도 흔쾌히 동의했다. 4·11총선의 주요공약으로 내세웠다가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되돌리겠다는 것은 코미디와 다름없다”고 힐난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어떤 해석을 할지에 대해서도 “위헌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라며 "헌법 49조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에 특별한 규정(국회법 85조)을 둔 이상 문제가 될 게 없다. 또 법률에 과반수 아닌 특별한 규정을 둔 예는 많다. 각종 법률에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국회의원 제명 등), 4분의 1(임시 국회 소집) 등으로 정한 것도 다수결 원칙을 부정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그는 우호적 여론을 기대하는 새누리당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이 생길 리 만무하다. 한심한 노릇”이라고 질타했다.
"朴대통령, 남은 임기동안 굉장히 힘들 것 같아 걱정"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의 집권 1년에 대해서도 혹독한 평가를 했다.
그는 “임기 첫해 야당·언론과의 허니문 기간 동안에 새 정권은 할 일을 해야 한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보지 않았나? 첫해에 많은 일을 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임기 말은 힘들었다. 대통령 당선도 어렵지만 임기 5년을 끌고 가는 것도 정말 어렵다. 첫해에 할 일을 못하는 정권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돌아보니 박근혜 정부의 첫해는 특별히 하는 게 없는 듯하다. 정부기관 대선 댓글사건 뒤치다꺼리하다 세월을 다 보낸 것 같다.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창출은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까”라며 “새 정부 출범 이후 우리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단어는 ‘국정원’, ‘검찰’, 그리고 무슨 무슨 ‘의혹’이었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정 방향이나 정책은 실종되고 온통 정치적 논쟁이 판을 쳤다. 그나마 내놓은 ‘창조경제’는 주무 장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더 나아가 “대선 전에 박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는 ‘신뢰’ ‘원칙’ 그리고 ‘약속’이었다. 2012년 7월 대선 출마선언 당시 내건 약속은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와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였다. 대선 과정에선 ‘국민 대통합’, 그리고 강도 높은 ‘검찰개혁’과 ‘정치쇄신’이었다"며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공약은 아직까지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주 안 지켜진 것은 아니므로 공수표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기초노령연금 20만원 공약은 이미 변질되고 말았다. ‘검찰개혁’도 언제 그런 말이 있었나 싶다”고 힐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에게는 기본적인 지지율이 따른다. 약 35% 정도는 불변의 지지층이다. 게다가 응답률이 낮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주로 응답하는 층이 나이든 분들이다. 걸려온 전화에 짜증을 내며 확 끊어버리는 사람들은 대개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저조한 응답률에 따른 반사이익이 10%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고 꼬집었다.
그는 새누리당 당적을 계속 유지할지에 대해선 "박 대통령 임기 동안에 탈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시작을 같이 했으니 임기 끝까지는 가는 게…. 하지만 임기 첫 해가 이렇게 지나면 남은 임기 동안 굉장히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다”라고 우려했다.
"오만한 ‘올드 보이’와 무능한 참모때문에 부시 실패"
이 교수는 ‘신386 세대(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활동을 시작하고 80세를 바라보는 이들)’가 권력핵심으로 부상한 데 대해서도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실패를 예로 들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과거에 고위 공직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정책 결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의 예를 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또 그 전쟁을 잘못 이끌어간 데는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책임이 크다. 체니는 포드 대통령 때 비서실장을 하고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냈다. 럼스펠드는 포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력이 화려한 두 사람 모두 자신감에 넘쳐서 CIA와 합참의 전문적 견해를 듣지 않았다. 1970년대 냉전 마인드에 사로 잡혀 오만과 독선에 빠진 거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육군참모총장을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해임시켜버렸다. 참모총장은 이라크 장악에 40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봤고 럼스펠드는 14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며 "럼스펠드 주장대로 14만 명만 투입했다가 이란·시리아에서 넘어온 테러리스트의 역공을 받는 등 생고생을 했다. 게다가 안보보좌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동유럽 정치를 전공한 학자라서 중동문제와 테러에 무지했다. 오만한 ‘올드 보이’와 무능한 참모가 미국을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대통령은 시대에 걸맞은 사람, 또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기업 부채폭탄, 朴정부에서 터질 가능성 매우 높아"
이 교수는 박 대통령 재임기간중 재정위기 도래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와 공기업 부채가 연간 GDP(국내총생산)의 100%를 넘고, 민간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한국은 41개 공기업 부채(520조원)가 정부 부채(480조3000억원)보다 더 많은 나라다. 어느새 부채공화국이 됐다. 이자율이 오르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며 "공기업 부채 폭탄이 박근혜 정부에서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고 경고했다.
그는 "4대강 사업에 참여한 수자원공사,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주도한 LH공사, 해외 자원개발에 간여한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 등이 지난 정권에서 부채가 큰 폭으로 늘었다. 이들 회사에 대해선 강도높은 조사를 해서 사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정부는 새 경영진을 임명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처럼 공기업을 확 뜯어고쳤어야 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경영마저 방만한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그랬다면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지지율도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제2의 IMF 사태' 발발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그는 “지난 2008년 미국 경제위기도 공기업 부실에서 촉발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공기업인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 사고를 쳤는데 결국 그 부채를 연방정부가 떠안고 말았다. 이 두 회사는 워낙 부실한 공기업이라 회사의 대표가 워싱턴 사교 모임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사람 취급도 안 했다고 한다"며 "그런데 우리는 너나 없이 부실 공기업 사장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나? 이들이 무슨 재주로 그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나? 손 놓은 정부도 한심하다"고 질타했다.
그는 "공기업 몇 개 무너지고, 재벌기업 몇 개 더 넘어지면 문자 그대로 ‘제2의 IMF’가 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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