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각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예상대로 이명박 40%전후, 박근혜 20%전후 등 한나라당 후보진영이 60%대의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12월19일 대선은 해보나마나다.
더욱이 과거 '대세론'에 안주했다가 다 잡았던 토끼를 놓쳤던 경험이 있는 한나라당은 집안 단속에 철저하다. 지난 연말 강재섭 대표가 주도한 대선주자 4인 모임에서 원론적 차원에서나마 "경선 승복"이라는 합의를 도출해 낸 것이나, 연초에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힌 것도 "쪼개지면 끝장"이라는 보수진영내 거센 압력의 산물이다. 이렇듯 보수세력의 결집력은 사상 최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나 보수진영은 안심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대선은 마지막 투표 몇시간 앞두고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경험법칙 때문이다. 아직 범여권이 자중지란 양상에 빠져있으나 대선에 임박하면 이들도 결집, 단일후보를 내세워 일대 접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반노 전선'
선거는 전선이다. 어떤 전선이 구축되는가에 따라 선거는 결판난다.
열린우리당의 대선 전선전략은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이다. '한나라 대 반한나라' 전선을 구축하자는 거다. 반면에 한나라당의 대선 전선전략은 '노무현 실정 5년 심판론'이다. '반노 대 친노'의 전선을 구축하자는 거다.
현재로선 한나라당 전선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일 '격정 발언'을 쏟아내는 데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짙다. 노 대통령이 고건 전총리를 질타하면 고 전총리 지지율이 낮아지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지율이 높아지는 식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범여권내 반노세력과 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한나라당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같은 경우는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을 한나라당이 돕자"며 노 대통령 지원사격에 나설 정도로, 한나라당은 내심 노 대통령의 '마지막 파이팅'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한나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한다면 1등공신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겠다"고 이미 선언한 상태다. 12.19대선때까지 '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한 셈. 한나라당에게 더없이 유리한 국면 전개다. 여기에다가 2.14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결과에 반발해 친노세력을 모아 '노무현당'을 걸성, 유시민이나 강금실 등 독자후보를 내 범여권 표를 분산시키거나,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언급했던 '조기 하야'까지 해준다면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은 기정사실이 될 게 분명하다.
열린우리당 '반한나라 전선', 그리고 동상이몽
한나라당이 뚜렷한 전선 전략을 세운 데 반해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반한나라당 전선'만 내세우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정파별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김근태-정동영은 12.26 합의를 통해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에 합의했다. 그러나 김근태측은 '노무현 배제'라는 반한나라-반노 전선 구축을 주장하는 반면, 정동영측은 노무현 배제에 펄쩍 뛰고 있다.
대선주자를 뽑는 방식에서도 양계파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근태계는 '정운찬 영입'에 적극적이고 고건에 비판적이다. 이는 김근태 의장의 대선 불출마를 전제로 깐 포석이기도 하다.
반면에 정동영계는 '정운찬은 외부영입대상중 하나일뿐'이라는 입장이다. 친노 칼라의 강금실 등도 포함하고, 필요하다면 골수친노 유시민 등의 출마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정동영의 출마도 포함돼 있다.
열린우리당내 친노진영은 당연히 정동영계 입장에 가깝고, 김태홍-임종인 등 개혁파와 천정배 전 장관 등은 김근태계 입장에 가깝다.
'노무현 배제' 여부를 놓고 두 갈래 각기 다른 세력이 팽팽한 대립상을 보이고 있는 양상이다.
민주당 '반노-반한나라'
동상이몽 상태인 열린우리당에 비해 민주당측은 '반노-반한나라 전선'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신중식 의원 등이 최근 토로했듯, '고건-정운찬 양자 경합'을 대선후보 경선구도로 잡고 있다. 당연히 유시민-강금실 등 친노진영은 물론, 김근태-정동영 등 열린우리당 창당세력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전선론은 '노무현 5년의 실정'을 규탄하는 동시에, '한나라당의 수구성'을 함께 비판할 때에만 연말대선에서 한나라당과의 대접전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이 고건-정운찬을 양대 경선후보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아울러 이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지난해말 던진 '정통 민주당 복원' 메시지와도 일치한다.
이들의 노선은 열린우리당내 김근태계와 가깝다. 김근태 의장이 불출마선언을 한다면 적극 연대한다는 게 이들의 내부방침이다.
정가에서는 '반노-반한나라 전선'이 범여권이 추진중인 통합신당의 골간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들은 여기에다가 한나라당 소장파, 민주노동당 합리파 등까지 합류하면 명실상부한 '반노-반한나라 전선'이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3개의 전선, 그리고 연말에 표출될 '민즉천'
3개의 각기 다른 전선 중 올 상반기는 한나라당의 '반노무현 전선'이 주도할 것이다. 그러나 5~6월께 각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마치면 정치지형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연말까지 개입하고 싶다 할지라도 '노무현 변수'가 급속히 소멸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선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대 범여권 대선후보, 양자간 대결구도로 좁혀지며 본격적인 대선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즉 '반노무현' 대 '반노-반한나라' 전선이 정면 격돌할 것이라는 전망인 셈.
이렇게 되면 자칫 2002년 대선때 이회창 후보의 패착수였던 '과거 심판론'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유능한 대안세력' '합리적 보수세력'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현재의 '대세론'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물론 향후 정치상황이 꼭 이런 식으로 전개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 대통령의 '히든 카드', X파일 같은 변수 돌출 등 과거 대선때 나타났던 온갖 변수가 출현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하나의 기본법칙에 따라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 법칙은 '민즉천(民卽天)'이다. 민심을 얻는 자, 민성을 듣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의미다. 민(民)은 일순간에 사육사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호랑이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정치세력은 집권불가능하다. 이는 정치공학적으론 민(民)이 갈망하는 전선을 구축하는 세력만이 집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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