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야기: Global Korean <4> 어떤 은퇴
Global Korean: 젊은 그들”
- (4) 어떤 은퇴
윤경과 점심을한 다음날 다시 그녀와 첼시에서 아침을 먹고 서울로 돌아온 충원의 데스크에는 회장님이 부르신다는 메모가 있었다.
"찾으셨습니까?"
"그래. 이따 저녁에 집으로 좀 들를수 있을까?"
"한 7시쯤 들르면 될까요?"
"맛있는 안주 감쳐둔거 있으면 혼자먹지 말고..."
"하하, 들켰네요. 가져가겠습니다."
장충동 골목길을 운전하며 충원은 어릴 때 뛰어놀던 그골목길이 왜이리도 좁게 줄어들었을까 다시 한번 의문을 품었다. 그길로 들어서면 그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
"어머니, 접니다. 충원이요."
문을 열고 들어서며 부산을 떤다.
"그래, 뭐 맛있는거 가져온다고 느이 대디가 기대가 크시던데?"
어머니가 나오시며 한마디 하신다. 충원이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녀에게 한방 당하게 마련이다.
"별거 아니고.... 아니지, 이거 기가 막히게 맛있는 치즈예요."
"쵸콜렛은 아니고?" 역시 한방 들어왔다.
"쵸콜렛은 아까워서 못드립니다!"
"내가 돈주고 사먹어도 아깝지않아, 체일 쵸콜렛은! 너도 얻어먹지 말고 사먹어라."
얻어먹다니! 충원은 뉴욕에 가면 체일샵에 들러 이거 한파운드, 저거 한파운드 하며 각종 쵸콜렛을 잔뜩 사서 낑낑매며 들고온다.
"그래, 윤경이는 잘있고?"
아버님 방에 들어서자 첫마디가 그질문이셨다.
"제가 뉴욕 간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난거 보고 네 녀석이 다음 비행기로 뉴욕 갔을거라 넘겨 짚은거 뿐이다."
"이크, 당했네요. 시침뗄걸..."
"나도 네 엄마가 뉴욕에 있다면 그렇게 뻔질나게 다녔을게다. 진짜로 근사한 여자는 남자의 영원한 선망의 대상이지. 난 아직도 네엄마한테 잘보일려고 얼마나 애쓰는데...."
"체일 쵸콜렛 좀 사드리세요!"
"아니, 근데 서울에는 샵을 안 연다더냐? 쵸콜렛 사러 뉴욕에 부러 갈수도 없고...."
충원은 마지못해 겨우 한다는 듯, 쵸콜릿 상자를 꺼내 어머님께 받쳤다.
"마님, 여기 대령했습니다."
소파에 편하게 둘러앉아 치즈와 와인을 즐기다가 아버님 채 회장이 본론을 꺼내셨다.
"이제 나는 회사에서 은퇴를 한다. 연말에. 너도 알다시피 나는 아직 기운이 남았을 때 기업 경영에서 은퇴하여 내 경험과 능력을 다른사람들과 나누며 사는게 꿈이잖느냐.”
충원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어디로 가실건데요?"
"세계적 은퇴 기업인들이 개발 후진 지역에 콘설팅을 해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단다. 혹시 아냐. 이제 어느 아프리카 부족에서 추장으로 모셔가줄지?"
"여보, 꿈도 크시구려. 일단 쫒아내지않고 자기들 세계에 들여보내만 줘도 고마울텐데...."
"당신은 이미 지구촌 문화교육 센터 활동을 벌여온지 오래라 추장으로 추대될 가능성은 당신이 더 크겠는데.... 나야 항상 당신 쫒아가기 바쁘니까.... 그래서 얘긴데, 충원이 너는 그간 생각을 좀 정리해봤느냐?"
"재벌 기업 총수는 저의 꿈이 아님은 이미 아시지요. 저는 보다 인간 생활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작지만 알찬 회사를 꾸려보겠습니다."
"식구중 아무도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너희 큰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아마도 이해 하셨을게야."
미국에서 경영대학 교수를 하고 있다가 회사 창업자인 형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급히 귀국해 회사를 이끌어 오신 충원의 아버님은 평생 본인이 은퇴한 후 회사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철저한 준비를 해오셨다.
"형님은 아이디얼리스트 이셨으니까. 방직회사로 시작했던 회사가 자꾸 커져 재벌기업이 되고 상장기업이 되자 형님은 이제 나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일 분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었지. 딸만 둘이니 교육 잘시켜 좋은사람 만나 잘 살도록 밀어주면되고, 혹 저희가 원하고 능력이 된다면 회사일을 할수도 있겠지만 회사가 우리 가족 소유라는 생각은 심어주지 않겠다고...."
"그 누나들은 회사에 관심이 없을뿐 아니라 아마 우리회사 제품 하나 쓰지 않으며 살고 있을걸요."
큰딸 미선은 예일대학에서 우리 국악 연구로 음악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대학 교수로 국악연주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남편은 같은 대학 연극과 교수로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그녀는 충원의 어머니 김여사와 지구촌 문화교육 센터를 공동 설립, 운영해오고 있기도 하다.
둘째딸 유선은 종교학 박사로 미국, 인도, 독일, 브라질, 이집트의 대학들에서 돌아가며 공부하여 6개국어에 능통하고 세계 종교학계의 유망한 소장파 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어디 매이는게 싫다며 교수직은 마다하고 몇몇 대학에 연구교수로 적을두고 세계를 돌며 살고 있다. 결혼할 생각은 전혀하지 않아 그 어머님이 안타까와 하시지만 워낙 개성이 강한 딸이라 잔소리도 못하신다.
"말이 그렇지 재벌 기업의 창업주 가족이 소유권을 포기한다는게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다행히 형님과 나 둘뿐이었는데다 2세들도 통털어 딸둘에 아들은 너하나 뿐이니 냬뜻대로 하기가 수월한거지.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거고, 재산을 정리한다는 것이 액수가 커질수록 어려운거지. 나는 그간 해왔던대로 서서히 소유 주식들을 처분해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에 쓸거니까. 너는 어떤 생각이냐?"
"저는 아버님 은퇴하시고 2년 이내에 제회사를 차려 독립할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회사 주식을 점차적으로 1% 정도만 남기고 다 처분해 자본으로 쓸거지요."
"그간 얘기한대로 엔지니어링 회사를 할거냐?"
"처음 5년간은 연구만 할겁니다. 인간 생활의 의식주를 향상시키는 기술들을 개발하고 제품화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보다 안락한 주거환경에서,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건강하고 편안한 의복을 입고, 우리 몸에 맞는 식생활을 하느냐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지요. 건강한 생활에는 정신건강이 중요하고 그에는 인간 사이의 소통, 코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 연구소가 회사의 본체이고 그밑에 주생활, 의생활, 식생활을 결정적으로 향상시키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을 3개 두려고 합니다."
"기본 구상은 좋은 것 같구나. 네 큰아버님이 회사를 한창 키우실때는 미국에 오시면 백화점이나 수퍼마켓에 가서 이물건 저물건 살펴보시곤, 이건 쓸모가 있겠다 싶으게 있으면 곧 귀국하여 생산해 내셨다. '이건 팔리겠다' 가 아니라 항상 '이건 필요하겠다' 셨어. 물론 생산 전에 사업적 타산을 따져보기도 하셨겠지만. 그러니 네 생각이 형님 생각에서 멀지않다. 형님 세대는 카피하면 되는 세대였지만 네세대는 남이 카피할 것을 먼저 만들어내야하는 세대란 차이가 있을뿐. 잘 생각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보려무나. 나도 거들어주마."
"당신, 추장 노릇은 안하시고요?"
"아들 고문 역할이 추장 노릇보다는 쉽게 나한테 떨어질 것 같아서...."
"많이 도와주세요. 이제 종아리 때려주실 외할아버님도 안계신데.... 어머님도 아이디어 좀 많이 주시구요."
"그래, 어디 한번 우리 아들이 제대로된 사업을 해내는지 보자. 해낼거야, 너는. 내아들이니까."
"결국 어머님 자화자찬이시네...."
"그럼, 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건데. 그런 잘난 여자랑 같이 사는 나 또한 잘난 사나이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