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바리 나라에 원폭투하 한번 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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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썩을넘들
1945년 7월26일 포츠담 회담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을 무렵 캘리포니아의 메어 섬을 출발한 미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호는 마리아나 제도의 티니안 섬에 도착했다. 인디애나폴리스호는 4.6m 가량되는 투박한 나무상자와 무지막지한 납(鉛)통을 내려놓고 티니안 섬을 떠났다. 3일 후 순양함은 불행히도 일본 잠수함 I-58호가 발사한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으며 승무원 800명 중 500명이 익사했다.
순양함이 놓고 간 상자와 통은 육군항공대의 B-29 비행장으로 옮겨졌는데 ‘맨해튼 계획’의 수석 병기장교 월리엄 파슨스 해군 대령의 지시에 따라 취급됐다. 나무상자에는 길이 305cm, 두께 71cm, 무게 약 4t의 원자폭탄의 강철 케이스가 들어 있고 무지막지한 납통 속에는 TNT 2만t의 위력에 해당하는 우라늄(U-235) 덩어리가 있었다. 만약 이것이 폭발한다면 반경 5km 이내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폭발시 섬광은 16km, 폭음은 80km 밖에서도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버섯구름은 9km 상공까지 치솟는다.
파슨스 대령이 담당한 주임무는 원자폭탄이 이동 중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부분별로 분해해 싣고 온 것을 조립하는 일이었다. 조립은 우라늄 덩어리를 4.5m의 폭탄 안에 밀어넣고 후미에 기폭장치와 전기식 신관을 장치하는 것이다.
맨해튼 계획 추진자들은 2주일 전 앨라모 고도(孤島)에서 시험한 플루토늄 폭탄을 ‘뚱뚱보’, 우라늄 폭탄을 ‘꼬마’라고 불렀다. 티니안 섬에 처음 도착한 것은 ‘꼬마’였다.
태평양에 신설된 미 육군 전략공군사령관은 스파츠 장군이었는데 그는 미 육군성의 극비명령을 갖고 있었다. 명령은 문서화돼 있었는데, 내용은 8월3일 이후 기상이 허락하는 대로 빠른 시일 안에 일본 본토에 ‘특수폭탄’을 투하하라는 지시였으며 추가로 제2, 3, 4의 폭탄이 도착하는 대로 투하하라는 것이었다. 일본 본토는 티니안 섬에서 2400km 떨어져 있어 왕복 4800km는 B- 29의 항속거리 내에 들어 있었다.
이 섬에 폴 티베츠 대령이 지휘하는 제509혼성비행대대 요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1년 동안 호박(폭탄)투하 훈련을 하고 있었다. 도착 다음날 스파츠 장군이 티베츠·파슨스 대령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즉 폭격 목표는 히로시마·고쿠라·니가타·나가사키 등이었는데 이 도시 가운데 하나를 선정해야 했다. 그리고 티베츠 대령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요원을 선발, 인솔토록 돼 있었다.
티베츠 대령이 선발한 요원들은 제1 목표물 식별 및 폭탄투하 팀, 기상정찰 팀, 제2 목표물 정찰 팀, 폭격 후 폭발강도와 효과측정 팀, 그리고 예비 승무원들이었으며 임무별로 7대의 B-29가 준비돼 있었다.
8월2일 스파츠 장군의 참모장 리메이 준장이 파슨스 대령에게 첫 번째 표적이 히로시마라는 것과 임무일은 8월6일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히로시마에는 많은 군수품 공장과 숙련공이 있으며 일본 육군의 제2군 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재래식 폭탄을 수없이 얻어맞은 고쿠라와 나가사키는 히로시마가 구름에 가려 폭격할 수 없을 때 대신 선택할 목표였다.
공식 절차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히로시마까지 가는 과정의 안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즉 폭탄을 싣고 이륙할 때와 그 밖의 어떤 충격으로 폭탄이 조기에 폭발한다면 비행기와 승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티니안 섬을 비롯한 일대는 일시에 생명체가 없는 폐허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꼬마’의 폭발장약과 우라늄 덩어리를 분리, 이륙해 비행기가 고도를 유지하고 정상비행할 때 파슨스 대령이 이동하는 비행기 내부에서 조립토록 한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일정한 상황에서 차례대로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는 세 개의 스위치 시스템이었다. 첫 번째 스위치는 폭격 후 B-29가 그곳을 탈출하는 데 필요한 15초 동안 시한장치를 가동해 신관 내의 모든 회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스위치는 기압에 반응해 1500m 상공에서 접속하게 돼 있었고, 세 번째 스위치는 폭탄 내부에 설치된 레이더 장치로부터 발사된 전자파가 지상에서 반사돼 돌아온 것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 스위치는 576m 상공에서 접속돼 우라늄 탄환 - 이것이 발사돼 우라늄 덩어리를 때린다 - 뒤에 있는 폭발장약을 터뜨리게 돼 있다. 또 기압계와 레이더 장치에 의한 신관 작동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 탄두와 탄미에 재래식 신관도 부착했다.
임무가 있기 하루 전 티베츠 대령은 자신이 탑승하게 될 B-29 조종석 밑에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쓰라고 지시했다. ‘에놀라게이’.
8월6일 오전 2시45분 68t이나 되는 에놀라게이호가 이륙했다. 에놀라게이호는 티베츠를 포함한 승무원 12명과 2만6500ℓ의 연료, 4.5t이나 되는 ‘꼬마’를 품고 약10여km의 창공을 날고 있었다. 이때 티베츠는 포로가 될 경우 승무원 각자에게 나누어 줄 청산가리 캡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륙 15분 후 파슨스는 폭탄을 조립하기 시작, 20분 후에 작업을 완료했다. 이제 꼬마는 완전히 무장됐다. 5시5분 에놀라게이호와 다른 두 대의 B-29가 유황도 상공에서 히로시마로 방향을 잡았다.
7시9분, 히로시마 라디오 방송은 공습경보를 발령했다. 그것은 에놀라게이호보다 약 1시간 먼저 이륙한 기상정찰 비행기에 대한 경보였다. 그 비행기에서 히로시마 상공은 쾌청이라고 알려 왔다. 8시12분 에놀라게이호는 고도 9470m에서 320km/h 속도로 폭격지점 위를 날고 있었다.
8시13분 히로시마 지상감시소에서 3대의 B-29가 접근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도시는 이미 폭격조준기 안에 들어와 있었다. 폭탄이 투하되기 15초 전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돼 신호는 08:15:17에 멈추었다. 폭격담당 페레비 소령이 ’폭탄투하!” 라고 소리쳤다.
꼬마가 에놀라게이호의 배에서 떨어진 지 43초 후 도시 위에서 핑크색과 자주색 섬광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져 갔다. 곧 이어 거대한 공 같은 회색의 구름덩어리가 비행기를 향해 돌진해 올라오고 있었다. 이윽고 충격파가 비행기의 배를 때렸을 때 승무원들은 마치 인형처럼 내던져졌다.
오후 2시58분, 에놀라게이호는 티니안 섬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이 미국 전역과 일본 정부에 송신됐다. “그것은 원자폭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