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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좌파 탄핵, 새롭게 시작하라!

萬古日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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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주의의 심판과 좌파대통령의 심판이다.

해방이후 전례가 없던 선거의 대참패는 국민의 가혹한 채찍을 넘어 정권에 대한 탄핵쯤으로 받아들여야할 엄청난 것이었다. 한마디로 민중봉기수준의 국민들의 반란이다. 저마다 해법도 다양하고 분석도 다양하다. 일치된 의견은 대통령의 독선과 집권여당의 무능함이라는 것들이다. 신자유주의 좌파는 자유롭지 못했다. 한마디로 자유로움에 속박당한 오만의 굴레가 되었던 것이다. 사사건건이 국민의 이름과 개혁의 이름을 빙자한 교만한 대결과 갈등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모른 체 갈등을 부추겨 민심을 곡해만 했었다.

대통령은 신자유주좌파라 스스로 결정하고 누구의 주장도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좌파는 권위주의 탈피라는 외피를 둘러 쓴 채 당정분리라는 책임정치를 들고 나왔다. 스스로들 갇혀버린 것이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마실을 당겼고 당 쪽에서는 당정분리 담 넘어 대통령의 신좌파주의 정책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이다. 서로가 오만이 낳은 방관을 즐겼고 교만에 젖어 흥분에 빠졌다. 뒤에서는 정치팬클럽의 오만한 권력이 끊임없는 좌파주의에 대한 충성만 있었다. 그들도 스스로 놀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권력이 되어 있었다. 참견 아닌 선동을 해댔고 선동이 곧 권력에 대한 정신장애만 낳았다.

권력은 이 맛에 살고 이 맛에 죽었다. 국민을 가려버린 팬클럽정치에서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 좌파들을 국민은 지켜만 봤다. 해도 해도 너무들 했다. 보수에 속고 좌파에도 속았다. 보수보다 못한 좌파 신자유주의좌파들이었다. 너무나 무능했다. 독선이 난무하고 오만의 춤을 췄다. 인내의 한계를 느낀 것이 531의 탄핵이다. 신자유주의 좌파정권은 국민의 준엄한 탄핵을 받았다. 국회수준의 탄핵은 헌법재판소라는 여과 장치가 있지만 선거 발 탄핵은 여과장치가 없는 직접심판이다. 그 심판은 누구도 곡해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절대의 값이다. 한마디로 준엄한 심판이라는 말이다.

국민탄핵에 대한 과제

어쩔 수 없다. 해법이 없다는 말이다. 국민이 없어지거나 정권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인 선거 발 탄핵도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모두 다 준엄함에 순응하여야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역사적 과정이기에 그렇다. 정권이라는 것은 어떤 정당에게도 승자를 안겨줄 수 있는 가변적 성질의 것이다. 민주사회의 절대적 가치아래 있는 국민의 힘은 누구의 것이라기보다 국가공동체의 공정한 순리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처참한 탄핵을 받은 여당의 정권도,· 일순간 승자가 된 야당도 국민의 위임에 대한 절대적 보존과 보호의 가치일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능력여하에 따라 권력을 쥐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531의 선거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누릴 수 있는 절대적 권력이라 착각한 것이 원인이다. 그래서 오만해 진 것이다. 오만하면 뵈는 것이 없는 법이고 뵈는 법이 없는데 국민이 보일 리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물은 엎질러지면 그만이고 말은 뱉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을 왜 엎질렀는지를 모르면 그릇에 물은 남아나지 않는 법이다.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대통령은 아직도 멀었다. 탄핵수준의 심판도 대통령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아직도 홍보용 기타의 눈물 속 저들에 푸르른 솔잎인지만 착각하고 있어 큰일이다. 대통령은 푸르른 솔잎이 아니다. 솔잎을 갉아먹는 송충일 뿐인 것을 아직도 모르는 것이 진정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대통령은 불안한 권력을 애써 강변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인 것을 부정하면 이보다 더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받아들여라. 그리고 엎드려 진정한 심판에 대한 곡해를 접고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을 빨리 터득하라는 말이다. 곡해는 여과 없는 오만이다. 되돌아보고 한 번쯤 숨을 고르면서 교만을 접으면 국민이 보일 것이다. 팬클럽 정치에 매몰되지 말고 제발 팬클럽의 마약을 끊어라 그러면 진정 국민이 보일 것이기에 말이다.

531발 정개개편의 향방

531이 아니더라도 누적된 국민의 불만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될 것이라는 것은 일찍이 예견되었을 뿐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결과와 국민 불만의 크기만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531을 치렀다. 한마디로 절벽위로 정권을 내몰았다. 준엄한 심판이다. 순도 99%의 엄청난 분노를 보여준 한판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정개개편의 서막아래서 갑론을박과 책임전가로 분열의 일보직전이다.

고건 발 정개개편은 서막을 고하며 쓰나미 충격에 젖은 정국의 핵으로 등장했다. 내년은 대선이다. 어차피 치러야할 국가대사가 당장 내년이다. 이대로라면 한나라당의 대권은 8부 능선에서 9부를 넘보는 형국이다. 문제는 공룡이 된 한나라당을 상대하기엔 노무현의 이름이나 열린 우리당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합집산과 대통합론 그리고 합당론과 민주세력연대로 야단법석이다. 어차피 열린 우리당으로는 공룡 한나라를 상대하기에는 이미 역부족이기에 그렇다. 새로운 정치지형을 그리지 않고선 정권재창출은 없다는 말이다.

일시적인 처방을 내려서 현상유지나 충격 요법을 동원하여서는 국민감정을 감동시킬 수 는 없다. 만약 정권에 대한 불신에 그 반사이익정도로 착각하며 안일하게 대처하면 큰 코 다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대통령의 이름은 죽은 이름이다. 열린당도 마찬가지다. 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씨가 먹히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정권도 정당도 인정할 수 없다는 반란수준의 결과 때문이다. 시간을 낭비하면 손해다. 빨리 손을 쓸수록 좋다는 말이다. 그럴 바에야 아름답게 찢어지는 것도 지혜로운 법이다.

생각과 인식이 다른 정치관으로 몸을 섞어서는 아름다운 정치구현과 정권재창출은 요원하기만한 꿈일 수 있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은 또 필연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국민의 심판의 원인을 곡해할 때가 아니다. 대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필연이 되어버린 정개개편으로 공룡을 무너뜨리는 국민적 감동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깨닫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 와서야 개혁을 닦달하고 정체성 운운 하는 것으로는 국민마음들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딱한가지다. 아름답게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차선이 아닌 최선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국민은 절대적 권력은 영원히 주질 않는다. 민주국가와 민주사회 속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531은 달랐다. 보수에 싫증난 국민이 좌파정권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절망 앞에서 가혹한 심판을 내렸다. 분노의 누적이 묻지마를 만들고 말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 보았는가? 한마디로 배신의 감정이 투표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절대 권력의 또 다른 헤게모니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절대 권력이라도 줘서 처참한 응징을 내리고자한 표심이다. 그 표심에 순응하는 것은 아름답게 흔적을 지우는 것이 차선 아닌 최선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절대 권력을 시험하는 국민의 분노를 누그려 트리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국민의 곁으로 다가서 미래를 여는 역사의 일꾼 국민을 즐겁게 하는 정치적 일꾼이 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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