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육’에 내 아이를 맡길 건가
[김순덕 칼럼] ‘전교조 교육’에 내 아이를 맡길 건가
2010-05-30
아직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21년 전 출범 당시 촌지거부 운동을 기억하는 이들은 전교조의 ‘참교육’이 순수한 교육운동이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런 순진한 분들은 이 단체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으로 10년을 복역한 이수일 전 위원장 같은 전사(戰士)들이 만든 조직임을 모르는 것 같다.
남민전은 남한 정부를 전복한 뒤 북에 동조하는 인민정부를 세울 목표로 총기 탈취까지 해 1979년 반국가단체로 대법원 판결을 받은 조직이다. 유신정권이 용공사건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조작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대법원 판결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하필 스승의 날인 15일에 이 씨의 저서 출판기념회까지 열어 치하했다.
전교조가 말하는 참교육이 뭔지도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이 창립선언문에서 밝힌 ‘우리의 교육’이란 ‘군사독재를 청산해 민주화를 이루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길 동량을 키우는 민족사적 성업’이다.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이 참교육이라는데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과 거리가 멀다.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은 통일교육을 통해 이뤄진다”는 게 2006년 박미자 전교조 통일위원장이 참교육실천대회에서 한 말이다.
‘참교육 초심’ 같은 건 없다
이들이 바라는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홈페이지에 소개해 놨다. 이런 식의 참교육을 위해 전교조는 ‘참교육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투쟁한다’고 실천강령에서 사실상 정치활동을 맹세하고 있다. 따라서 전교조가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비슷한 색깔의 단체와 연대투쟁 하는 건 그들로선 너무나 당연한 활동이다. 초창기 촌지거부운동이라는 전술에 감동한 학부모들만 속은 셈이다.
백번을 양보해 학생들을 입시경쟁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전교조의 주장이 옳다고 하자. 그러나 그 이유가 일반 국민들과는 다르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이장원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올 초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전교조는 경쟁적이고 입시위주인 사회, 즉 계급적이고 분단적이며 분열적인 상황에서는 민족 통일교육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즉, 교사가 교과수업만 잘해선 학생들을 ‘조국통일 동량’으로 키울 수 없어 수준별 수업과 고교 선택제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들이 교원평가제와 성과급제에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치사하기까지 하다. 1월 전교조의 참교육실천대회에서 ‘전교조 운동방향과 과제’를 발표한 진보교육연구소 이현 씨는 “교원들에게 가장 큰 고통으로 다가올 정책은 역시 교원평가”라고 했다. 노동 강도가 세질 뿐 아니라 교사 서열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 중고교 교사의 수업시간은 30개국 중 가장 적다. 15년 경력 초등교사의 보수는 룩셈부르크에 이어 2위였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열심히 가르치는 게 귀찮다고 평가제와 성과급제 반대가 민주화투쟁이라도 되는 양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교원노조법 3조는 ‘교원의 노동조합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반노조는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노조의 결격사유로 규정한 데 비해 훨씬 엄격하다. 2006년엔 대법원이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정치활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전교조가 교단을 무대로 정치활동을 하는데도 묵인한 역대 정부는 직무유기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비로소 전교조 교사 명단이 전격 공개되고 정치교사들에 대한 징계방침이 나왔다. 그러나 이들이 교단을 계속 농단할지 여부는 6·2지방선거에서 어떤 시도교육감, 교육의원이 당선되느냐에 달려 있다. 전교조와 가치를 공유하는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이 다수 등장한다면 전교조 교육은 기세등등해질 게 분명하다. 선거벽보라도 유심히 보고 반드시 이름을 기억한 뒤 투표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
“때려서라도 가르치려는 건 지식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연대(連帶)를 못하게 하는 상벌 포상제도를 없애자.” “하면 된다고 학생들을 기만하지 말라.” 참교육실천대회에서 나온 전교조의 교육관이다. 이런 전교조에 교육행정을 맡기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httpnews.donga.comColumnKSD37004010000006420100530287151261
2006.3. [ 전교조의 남민전 이수일 만세 ]
이수일 전위원장 민주화운동 인정 환영
작성자 대변인 작성일 2006-03-15
이수일前위원장 민주화운동 인정 환영, 원상회복 조치 뒤따라야
전교조 전 위원장(11대) 이수일 선생님(53. 역사. 중화고등학교)이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故 김남주 시인 등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사건 관련자 29명과 함께 인정된 이번 조치는 79년 구속 해직된 이후 20년만인 99년 복직 조치에 이어 이수일 전위원장의 민주화 운동 역정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로 해석할 수 있다.
알려진 바대로 남민전 사건은 유신 말기 대표적인 공안사건으로 체제에 저항한 운동이었다. 이 사건은 79년 검찰에 의해 ‘북한 공산집단의 대남전략에 따라 국가변란을 기도한 사건’으로 발표되었고, 법원은 검거된 관련자들에게 사형, 무기, 징역 15년 등 중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수일 전위원장은 이 사건으로 구속 해직되어 10년간 수감 생활을 했으며 출소한 이후에는 전교조에 몸담아 전교조 정책연구국장, 정책위원장,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거쳐 조합원 직선으로 2005년 11대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11개월 동안 위원장직을 수행하다가 지난 11월 26일 위원장직을 사퇴하였고 현재는 교단에 복귀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이번 결정이 늦은 감은 있지만 어두운 과거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조처라고 판단하며 분단의 굴레에 들씌워졌던 공안 시대의 암흑을 걷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정부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는 선에서 그치지 말고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2000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에관한법률이 제정되어 전교조 결성, 사학민주화 운동 등과 관련된 1500여명의 교사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지만 실질적인 명예회복 조치인 해직기간의 교육경력(호봉, 경력, 연금)인정과 복직 등 실질적인 피해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교조는 이수일 전위원장의 민주화운동 인정을 계기로 복직 교사와 미복직 교사들에 대한 원상회복 조치를 시급히 이행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httpwww.eduhope.netcommuneview.phpboard=eduhope-4&id=3075
[소식] 이수일 선생님 출판기념회 안내
작성자 대변인 작성일 2010-05-13
【소식】
이수일 선생님 출판기념회 안내
-「자기땅에 유배당한 사람들」 출판-
1. 전교조 위원장을 지낸 이수일 선생님이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되어 1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돌아오기까지의 체포와 구속,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그린 「자기땅에 유배된 사람들」이 출판되어 이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다.
2. 이수일 선생님은 서울 정신여중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중 1979년 이른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88년 대통령특별사면으로 10년의 옥고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게 됐다. 출소 이후 전교조 결성에 참여하여 정책위원장, 사무처장, 위원장 등으로 일했다. 또한 녹색대학 창립위원,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
3. 이수일 선생님은 “이 땅에 역사의 봄을 맞이하려고 애쓰다 먼저 가신 님들께 보잘 것 없는 이 글을 바칩니다”로 글머리를 시작하여, “돌이켜보면 옥문을 나온지도 벌써 2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세상이 몇 번씩 바뀌었지만 정말 역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회한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며 현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밝혔다.
도종환 시인은 “전사에서 교사로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오늘도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의 여정에 밝은 빛이 환하게 내리치기를 기대한다”고 추천의 말을 하였다.
........................................................................................................
2010년 5월 1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남민전 이수일 --- 남민전 김남주
[ ..... 우리 민족해방운동 동지였던 김남주 시인 ....... ]
'남민전’ 관련 교사의 옥중기가 책으로
이수일 전 위원장,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출간
임정훈 기자 2010.05.19
..........................................................................................................
- 2006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공안사건의 주인공에서 민주화 인정까지 심정이 어땠나
“우리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사건 관련자 모두가 신청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했다고 할까 그런 의미는 있다. 학교 복직(1999년)하면서 복권은 됐다.”
- 제목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이 번역 · 출간했던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원제-검은 피부 흰 가면)’의 여운이 짙은데.
“처음 생각한 건 ‘기록, 학교 갔다 온 이야기’였다.(‘학교’는 감옥의 은어). 지금의 제목은 본문에 들어가는 소제목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정했다. 파농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이었다. 그것과 우리 민족해방운동 동지였던 김남주 시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jinbo_media_24&nid=56839
2005.5
[ 이수일 -- 홍세화 -- 전교조 -- 문교부 ]
공지사항
5. 31 교육개혁안 10년, 한국 교육의 오늘과 내일
작성자 참교육연구소 작성일 2005-05-27
1. 취지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집대성판인 531 교육개혁안(이하 ‘개혁안’)이 발표된 지 올해로 10년이 된다.
이에 지난 10년 동안 개혁안이 한국교육에 끼친 영향을 각 분야별로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개혁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이 진척되고 있는 상황을 고찰하고 실제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한국교육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2. 주최
주최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범국민교육연대,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실
3. 일시 및 장소
일시 2005년 5월 30일(월) 오후 1시~오후 6시.
장소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의실(1층), 도서관 소회의실(지하 1층)
4. 세부 내용
[여는 행사]
가. 오후 1시.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의실(1층)
나. 사회 이철호 참교육연구소 부소장
다. 여는 인사
이수일(전교조 위원장)
이태기(공무원노조 교육기관본부장)
라. 기조강연 531 교육개혁안의 교육철학에 대하여
세계화정보화시대, 무한경쟁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련된 개혁안의 주요 교육철학을 살펴보고, 그것의 문제와 한국교육에 미친 영향 등을 알아본다. 그리고 향후 한국교육의 철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기조강연자 홍세화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
[1 분과] 창조적인 대학교육의 방향
가. 오후 2시 20분~오후 6시.
나. 531 교육개혁안은 대학의 다양화특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대학모형의 다양화, 대학정원학사운영의 자율화, 설립기준의 다양화, 대학평가에 따른 차등 지원 등의 정책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1996년부터 대학설립준칙주의와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대학사회는 변모되어왔고, 531 교육개혁안의 여러 방안 중 가장 많이 진척되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531 교육개혁안의 공과에 대한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대학 분야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대학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다. 형태
사회 김세균 서울대 교수, 민교협 공동의장
주발표 대학, 고등교육 그리고 학술연구 제도의 혁신을 위한 종합적 정책 방향
(주경복 건국대 교수, 민교협 공동의장)
휴식
보조발표 1 서울대 및 국립대 개혁 방향과 과제(정진상 경상대 교수)
보조발표 2 사립대학 구조 개혁의 문제(김상곤 한신대 교수)
휴식
종합토론 교육부, KEDI, KDI, 대교협, 국교협, 학단협, 학진 등.(섭외 중)
장소 헌정기념관
.............................................................................................................
httpwww.eduhope.netcommuneview.phpboard=eduhope-3&id=468&page=7
[ 오종렬 -- 전교조 -- 전국연합 -- 통일연대 -- 진보연대 ]
오종렬 -- 남민전 김남주 -- 정광훈
[ ...... “남주의 시는 사상이요 철학이요 행동이다. 아니 혁명이다. 그렇다, 김남주는 민족서정이며 민중해방 전사이자 혁명 그 자체이다.”
이구동성이요 이체일심 .......
인간의 피가 흐르는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 ]
의장님은 ‘걸어다니는 민중학교’ 바로 그것
추모사 정광훈 의장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와 -오종렬
2011.05.23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의장님,
삼우제를 올리려고 묘 앞에 섰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아래 땅속에 의장님이 묻혀있다니,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
이승에서는 우리 둘을 정치사상적 쌍둥이 같았다고들 말하는데 땅으로 돌아가서는 김남주 시인과 나란히 계십니다 그려. 이승을 떠난 의장님 자리는 지금 누워계신 그곳이 바로 맞습니다. 의장님과 나는 어느 것 하나 닮은 곳이 없는데도 쌍둥이라니, 말 같지 않으면서도 정확히 맞는 핵심이 있으니 그건 ‘김남주 시인’ 아니겠습니까
“남주의 시는 사상이요 철학이요 행동이다. 아니 혁명이다. 그렇다, 김남주는 민족서정이며 민중해방 전사이자 혁명 그 자체이다.”
이구동성이요 이체일심이랄까, 여러 소리 할 것 없이 ‘김남주를 보는 시각과 입장과 행동의 일치성’ 아니겠습니까
앞서 가신 열사들의 무덤 앞에서 늘 “지하에 가셨으니 이웃 열사들과 지하조직 잘 하여 해방세상 이루시라”고 하셨지요. 저승은 이승의 연장이요 죽음 역시 삶의 한 표현일 따름이니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생사를 넘어 이뤄내야 한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
의장님의 거처, 의장님의 잠자리에서 그 날 밤을 보내며 의장님 평생의 뜻을 세상에 밝히기로 작심했습니다. 그리고 해남 군청광장 노제에서 “민중의 벗, 시대의 등불 정광훈 의장님의 정체성을 애매모호케 하지 말자”고 전제한 다음 “인간의 피가 흐르는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탐욕의 본성에 따라 착취와 수탈과, 그게 여의치 않을 땐 학살도 서슴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의장님 사상의 핵심을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해남 사람들에게 “해남 땅은 왜 이리 찰지고 붉은가 농민군이 흘린 피가 스며들어 붉게 물든 것이고 공동체의지와 동지애가 질기고 단단하여 흙조차 찰진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
2십여년 전 우리가 만났을 때 내 눈에 비친 의장님은 유난히 ‘계급’에 천착해 보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의장님 눈에 비친 나는 ‘민족’에 천착해 보였겠지요 내가 혼신의 힘을 붓던 교원노조(전교조)를 ‘계급성과 변혁성을 덜 가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보는 시각을 명확히 여러 차례 나타내곤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둘이서 대화와 논쟁을 많이 해온 줄로 알던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지요
서로 삶의 방식과 견해를 존중하면서 마치 북한강과 남한강처럼 제 물길 따라 흘렀다고나 할까~. 밀고 당기고 하지 않고 제 물길 따라서 자연스럽게 만났다고나 할까~.
“자주와 평등은 동전의 양면”이며 “자주통일은 민중해방 복지사회로 가는 결정적 관문이자 절대적 필요조건”이고 “자주통일 그 자체가 곧 복지사회는 아니지만 자주통일 없는 자리에 민생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화통하게 일치했습니다.
.............................................................................................
“총 든 자본주의, 제국주의 몰아내고 통일세상, 대동세상 이루어서 향기롭고 맛나게 자손만대 살아보자!”며 “Down Down WTO! Down Down FTA! Down Down USA!를 외치고 싶어서,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손자 손녀에게 사랑한다는 한마디, 동지들을 믿고 사랑한다는 한마디라도 하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입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산처럼 쌓인 일을 놔두고 갈 수 없어서 눈도 감지 않으셨습니다.
...................................................................................................................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4758
1989.5. [ 전교조 대의원대회 의장 오종렬 ]
..............................................................................................................
전교조가 처음 모습을 갖춰갈 89년, 오종렬 의장은 전교조 결성의 주도적 인물로 찍혀 감옥에 끌려갔었다. 교단에 있던 그는 구속될 때도 교단에서 끌려 나갔다. 그는 전교조 결성을 추진하면서부터 정부의 압력도 계속 받아왔기 때문에 막상 구속됐을 때는 쉽게 문제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각오한 터였다.
........................................................................
전교조 결성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그는 조합원 명단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마 순처럼 땅속에 묻어두려 했던 조합원들의 명단은, 구속되지 않고 밖에 있던 조합원들이 공개해버렸다.
.........................................................................................................
[감옥에서 읽은 책]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
오량 기자
2007년04월13일
신현수
오종렬 선생님
오종렬 선생님
1
1989년 5월 28일, 그와 나는 건국대에 함께 있었다
그날 전교조 결성식장이었던
연세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따로 모인 자리에서
그는 전교조의 대의원대회 의장으로
전교조 결성보고대회를 진행했다
수배 때문에 비록 며칠째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아주 꾀죄죄한
주름이 모두 풀려버린 흰빛의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교사는 노동자여야 한다고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만이 우리의 미래라고
흰머리를 흩날리며 포효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때 50대 초반의 중년교사였고 나는 30대 초반의 청년교사였다.
2
그때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1999년 2월 7일, 그와 나는 동국대에 함께 있었다
그는 새롭게 출범하는 전국연합의 상임의장으로,
민족의 미래인 청년학생에 대하여
평생을 걸고 신념을 지킨 장기수 선생님들에 대하여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들에 대하여
참된 지식인에 대하여
1만년을 먹여 살린 농민에 대하여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에 대하여
자주와 민주와 통일에 대하여
검은 양복을 입고, 연설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환갑이 지나버린 노년 교사였고, 나는 마흔이 넘은 교사였다
학교에서 함께 쫓겨났으나
10 년 동안 그는 더욱 근본적이었고 나는 근본적이지 않았다
..............................................................................................................
민족민주운동의 영원한 의장, 고 오종렬 선생 영결식
김상정 20191210
그가 살아온 길, 그를 떠나보내는 길
밤새 비가 내렸다. 광화문 광장을 밟고 서 있는 이들도 깊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12월 10일 오전 10시에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고 오종렬 선생의 영결식이 열렸다.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범시민사회교육단체 소속 활동가를 포함한 2000여 명이 인파가 모여 고 오종렬 선생을 떠나보내며 헌화했다. 영결식 책자 표지에는 고 오종렬 선생의 이름 앞에 민중과 함께, 자주민주통일의 지도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 오종렬 선생이 살아온 길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은 연단에 올라 고 오종렬 선생의 지나온 삶을 소개했다. 오종렬 선생은 1938년 전남 광산에서 태어나 1961년 교사가 된다. 금산초금익분교를 시작으로 고흥포두증, 신안암태중, 진도고성중, 전남고, 광주동명여중, 전남사대부고, 전남여고에서 해직되고 11년만에 학교로 복귀해 광주 용봉중학교에서 정년을 맞이한다.
고 오종렬 선생은 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출범에 참여하고 88년 전교협 대의원대회 의장을 지낸다. 다음 해인 1989년 전교조 결성에 함께하며초대 전교조 광주지부장이 된다. 이로 인해 구속되었고 옥중에서 해직교사가 되었다.
1991년을 시작으로 고 오종렬 선생은 민족민주통일민중운동의 맨 앞에 서서 고난과 역경의 운동가의 삶을 살아간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공동의장(1991년)이 되고 1994년에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수감되어 2년 8개월을 복역한 뒤 1997년 출소한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상임의장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1999년), 6.15 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상임대표(2001년), 미군장갑차사건 여중생 범대위 대표(2002년)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2003년), 한칠레 FTA 저지 범국민대책위 공동위원장(2003년),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단 단장(2004년), 우리쌀 지키기 운동본부 대표, 전용철·홍덕표 농민열사 범국민대책위 공동대표, APEC 반대 국민행동 공동대표, WTO 협상 저지 한국민중투쟁단 공동단장(2005년)을 맡았다.
2006년에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로 한미 FTA 저지 투쟁의 선봉에 선다. 2007년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하면서 상임공동대표를 맡는다. 2008년에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를 하고 그해 8월 구속된다. 2009년 2월에 출소하여 2013년 통일의 길 이사장을 역임하고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과 5.18 민족통일학교 이사장은 현재 약력이다.
한국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의 선봉에서 싸웠던 고 오종렬 선생은 2014년 건강악화로 투병하다 2019년 12월 7일 22시 57분, 81세로 영면한다. 오종렬 선생의 삶은 민족민주운동진영의 가슴 속에 ‘영원한 의장’으로 새겨졌다.
고 오종렬 선생을 떠나 보내는 길
송경동 시인은 ‘영원한 민족민중의 의장, 오종렬 선생님 영전에’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조시를 낭독했다.
.............................................................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향한 동지의 염원은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몫은 우리에게 남겨놓고 부디 영면하소서”라고 조서를 낭독했고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도 “자주민주통일과 노동자민중 해방세상을 향한 저희의 결의를 믿으시고, 노동이 해방되고 민중이 해방된 고통 없는 세상에서 민족민주노동열사들과 편히 영면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의장님의 불굴의 투쟁정신, 민중에게 한없이 인자한 품성, 일생을 건 혁신의 의지와 실천정신은 민중과 후대가 가는 길에 이정표로 빛날 것입니다.”라며 “역사와 민중의 품에서 영면하시라”고 기원했다.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문경식, 박석운, 한충목)는 “의장님, 함께 해서 감사했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의장님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 이제 살아 있는 우리가, 민주주의와 민중생존, 민족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한 남은 여정을 계속을 할 것입니다.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기어이 그날을 앞당길 것입니다.”라고 결의문을 낭독했다. 결의문에는 오종렬 선생이 남긴 말이 담겼다.
사상은 뿌리깊게!
표현은 얕고 낮게!
연대는 넓디 넓게!
실천은 무궁토록!
▲ 영결식을 마치고 연단에 마련된 빈소에 헌화하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가들. 한 해직교사는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라는 글귀가 적힌 조끼를 입었다. 고 오종렬 선생은 올해 초 투병 중임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의 뜻을 전하기 위해 청와대 앞을 찾은 바 있다. © 김상정
고 오종렬 선생이 남긴 말은 그의 생전 연단에서 선동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영결식 무대 현수막으로 영결식을 찾은 이들과 다시 만났다.
................................................................
영결식 참가자들은 연단에 마련된 빈소에 헌화를 하고 광주로 향하는 고 오종렬 선생의 운구행렬을 배웅했다. 이어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10일 오후 4시부터 11일 오전 8시까지 조문객을 맞이하고 유해는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httpsnews.eduhope.net21966
2019.12. [ 전교조의 오종렬 만세 ]
[추모성명] 우리들의 영원한 선생님, 자주민주통일의 지도자 故 오종렬 의장님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대변인 2019-12-09
[추모성명]
우리들의 영원한 선생님, 자주민주통일의 지도자
故 오종렬 의장님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오종렬 의장님의 삶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였습니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과 참교육 운동으로 민중과 함께하는 삶을 시작하셨고,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탄생으로 열매 맺었습니다. 전교조는 그러한 헌신을 토양 삼아 30년째 참교육 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의장님은 언제나 자주민주통일 운동의 최전선에 서 계셨고, 민중이 있는 모든 곳이 곧 의장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반복되는 구속과 탄압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민족의 자주·민주·통일을 향한 굳은 신념과 강인한 기개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선생님, 민중의 벗, 자주민주통일의 지도자 오종렬 의장님을 열사 곁으로 보내드립니다.
평생을 '영원한 청년’으로 사신 의장님이 보여주신 헌신과 참교육 정신, 실천적 삶을 기리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참교육 한 길로 흔들림 없이 걸어가겠습니다.
2019년 12월 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 윤영규 전교조 1~3대 위원장, 전국연합 공동의장, 범민련 창립 , 열린우리당 고문 ]
교육민주화 ‘큰 별’ 윤영규 선생 타계
[프레시안 2005-04-02 ]
[프레시안 이영환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위원장을 역임하며 교육민주화에 헌신했던 윤영규(69세) 재단법인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지난 3월 31일 저녁 심근경색으로 타계했다.
평생을 5.18민중항쟁의 아픔과 함께 한 ‘참스승’
선생은 1935년 광주 남구에 있는 광주천변의 한 가난한 움막집에서 태어나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으나 이 마저도 가난 때문에 중도 포기해야 했었다. 그러나 선생은 이후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에 진학해 61년 졸업과 동시에 목포 영흥 중·고교의 교사로 교단에 첫 발을 내딛으며 평생의 교육철학이었던 ‘참교육’과 인연을 맺게 됐다.
선생은 이후 광주 숙문중학교, 광주상고에서 차례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편으로 광주YMCA에서 청소년 서클을 지도하다가 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잠시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폭압조차 선생의 민주화 열망만큼은 가로막지는 못했다. 선생은 복직 뒤 흥사단 아카데미, 밀알회, 기독학생회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80년 5.18민중항쟁 당시에는 홍남순, 조비오, 송기숙 씨 등과 함께 ‘17인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평생을 전남도청에서 산화해간 젊은 제자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 했다.
5.18 뒤 선생은 본격적으로 교육운동에 매진해 82년에는 광주YMCA 중등교사협의회 창립을 주도했고, 87년에는 전교조의 전신인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의 초대 회장을 맡아 89년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표방한 전교조의 창립을 이끌어 냈다.
선생은 전교조 1~3대 위원장을 지낸 뒤에는 91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공동의장을 비롯해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위원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98년 1월 마침내 전교조가 합법화된 뒤에는 그리던 교단으로 돌아가 1년 뒤 광주 충장중학교에서 정년퇴임 했다. 선생은 퇴임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재단법인 5.18기념재단의 4대 이사장을 맡았고, 최근에는 열린우리당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선생의 장례식은 박형규 목사와 송기숙 청와대 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오는 4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 뒤 국립 5·18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다음은 전교조 충북지부장 등을 역임했던 도종환 시인이 전교조 광주지부가 마련한 추모 게시판에 올린 추모시의 전문이다.
쓴 잔 - 윤영규 선생님 영전에
당신은 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에 서 계시었고
더 오래 남아 계시었습니다
한 발 먼저 감옥에 들어가셨고
더 오래 포승줄에 묶여 계시었습니다
두 겹 세 겹의 감시를 뚫고 광장으로 나와
오늘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새 장을 연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먼저 말씀하셨고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더 많은 밤을 수배의 고통으로 떠돌았고
더 많은 날을 거리의 교사로 사시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바쳐
당신과 함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그 이름을 이 땅에 새겼고
어떤 이는 참교육의 씨앗을 땅에 묻으며 죽어갔고
어떤 이는 교육노동운동과 함께 늙어갔습니다
..................................................................................................................
윤영규 --- 남민전 김남주
[ ...... 김남주, 당신께서 반제민족자주와 반파쇼 민중해방 그리고 조국통일사업의 최전선에 서서 ‘혁명’을 불피울 때,.......
마지못해 영위된 우리의 삶은 어쩌면 당신에게 죽음을 안겨준 ‘재앙’이었음을 고백합니다.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httpblog.kdemo.or.kr55
우리 시대의 사표 윤영규 선생의 삶과 기록
사료이야기사료(구술) 이야기 20081219 1805
...........................................................................
후배 사랑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
선생은 전교조 초대위원장과 2대위원장을 역임한 이후에도 사회민주화운동에 지속적으로 헌신하였다. 1991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공동의장을 역임하였고, 이 무렵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남측위원회 창립을 주도하다가 또 다시 수배되기도 하였다. 선생의 머리는 희어졌지만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열정은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갔다.
선생이 1994년 세상을 떠난 김남주 시인을 애도한 ‘조사(弔辭)’는 먼저 떠난 후배에 대한 선생의 애정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을 보여주는 글로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김남주, 당신께서 반제민족자주와 반파쇼 민중해방 그리고 조국통일사업의 최전선에 서서 ‘혁명’을 불피울 때, 제국주의·독점자본·반통일의 거대 세력에 대한 ‘전사’로서의 단호함을 결행할 때, 전인류적 억압과 착취와 수탈을 깨부수는 전세계적 ‘시인’의 진면목을 푸담하고 실답게 제공할 때, ‘굴욕처럼 흐르는 침묵의 거리에서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고 마지못해 영위된 우리의 삶은 어쩌면 당신에게 죽음을 안겨준 ‘재앙’이었음을 고백합니다.(중략)
나의 죽음을 의탁해야 할 후배 가운데 하나인 당신의 죽음 앞에서 조사를 읊조리는 이 이승의 선배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영결해야 할 이 시간, 우리 사회 전체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너무 외롭게 그토록 고달프게 분투하던 당신의 마지막 신체 앞에 서 있는 나이 많은 선배는 의식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김남주를 위한 조사(弔辭)
[ ..... 전교조는 그동안 전국연합을 비롯한 전체 민족민주운동단체를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 ]
제목 [전연53] 정해숙 전교조위원장을 만나서
작성일 1995년 0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는 참교육 교사들의 마음
전교조 정해숙 위원장을 만나
이철상 (전국연합 정책실)
4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이시대 참교육 참교사의 길을 열어나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해숙 위원장을 만나보았다.
..............................................................................
우리 민중들 모두가 우리들에게는 스승인것 같아요. 며칠후면 스승의 날인데 평소 올바른 교사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해보신것이 있다면
- 저에게는 기억에 남는 스승님이 두분 계십니다. 국민학교 4학년때 선생님은 저에게 Mayday의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신적이 있어요. 물론 어린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의 소중함이랄까요 그런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내내 노동의 땀과 눈물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다음으로는 중학교 1학년때 박민자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분은 당시 입산하여 그 이후로 한번도 만나뵐 수가 없었답니다. 아마 빨치산으로 조국과 역사속에 치열한
삶을 살다가 돌아가셨던 것 같아요. 이 두분이 저에게는 스승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어렴풋하게 가르쳐준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전교조는 그동안 전국연합을 비롯한 전체 민족민주운동단체를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전체 민족민주운동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지요.
- 무엇보다도 그동안 전교조가 탄압받을때 도와준 여러 동지들에게 감사합니다.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연대하여야 하리라고 봅니다. 전국연합 , 민주노총(준)등 모든 단체들이 서로 이기고 지는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로 단결하여 화합의 커다란 힘을 만들어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속에서 마침내 자주와 민주 통일도 실현되는 것이겠지요.
위원장님의 말씀속에서 전교조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전체 민족민주운동의 단결과 발전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2008.5. 전교조 --- 남민전 임헌영
올해 참교육상 ‘민족문제연구소’
전교조, 친일인명사전 발간 등 올바른 역사 인식 기여
최대현 기자 20080527
17번째 참교육상은 오는 8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임헌영)에 돌아갔다.
전교조는 이날 제17회 참교육상에 민족문제연구소를 수상자로 선정해 시상했다. 전교조 참교육상선정심사위원회(위원장 정진후)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비롯해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와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통해 국민과 학생의 올바른 역사의식 확립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인정한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친일청산을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전교조가 주는 상은 노벨상 못지 않다. 친일파 청산 정신을 전교조 정신과 같다고 믿는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교조는 지난 1995년부터 참교육이념의 구현과 실천에 공이 많은 사람이나 단체에 ‘참교육상’ 이름으로 시상해왔다.
httpnews.eduhope.netsub_read.htmluid=9854§ion=§ion2=
1979
남민전 임헌영
[ ..... 베트남 전선 방식으로 통일전선을 형성,.... 정부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조직이다 ....... ]
[ ..... 과도기적인 정부를 수립하거나 연방형식의 정부 등을 세워 궁극적으로 북괴가 목표한 적화통일을 ...... ]
전선기 땅에 묻고 꽃불 작전
경향신문 1979.11.13.
전선기 땅에 묻고 꽃불 작전
남민전 자수한 임헌영 등과 일문 일답
주택가에 버젓이 인쇄기까지 갖춰
민청학련 사형자 옷 오려내 기 제작
학원가에 불온 삐라, 봉화산 작전도
국가변란을 기도해온 소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관련자들은 이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괴의 무력적화통일 노선에 따른 사회주의 공산국가의 건설에 있다고 밝혔다. 12일 경찰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지식인 학생 노동자 농민들을 선동, 남한을 내란의 상태로 몰아 넣어 현정권이 물러날 경우 과도정부를 이룩, 연방 형식의 정부를 수립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 사회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재벌급 기업인들의 집을 털려 했다고 밝히고 불온 유인물을 살포, 학생과 시민들을 선동해 왔다고 태연히 말했다.
.......................................................................................
임헌영(가명 한민성 상황 출판사 대표)과의 일문일답.
자수동기는
답= 평소 좌경적인 이념과 사고를 가지고 활동해 오다 같은 이념인 남민전에 가입했으나 이들의 조직과 활동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범죄집단임을 알고 78년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다 이번에 자수했고 사상적으로도 전향했다.
남민전의 성격은
답=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인사들로 조직된 단체로 알제리 베트남 전선 방식으로 통일전선을 형성, 궁극적으로는 정부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조직이다.
투쟁목표와 투쟁방법은
답= 2단계 목표가 있는데 잠정적 목적은 반공사상이 투철한 현체재하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이 어려우므로 현정권을 타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민전은 지하에 숨어 있고 민주투쟁위원회란 산하단체를 밖으로 내놓고 각종 유인물 살포, 노동자 학생 농민들을 소요시켜 무정부상태가 오면 과도기적인 정부를 수립하거나 연방형식의 정부 등을 세워 궁극적으로 북괴가 목표한 적화통일을 이룩하려 했다.
.........................................................................
이수일 (가명 허균 전J여중교사)과의 일문일답.
꽃불1호작전이란
답= 지난 8월 28일 남민전 산하에 있는 민주구국학생연맹이 주체가 돼 청량리 청산학원, 서울역 앞 5층 빌딩, 무교동 서울빌딩등 3곳에 4천장의 전단을 살포했던 작전을 말한다.
나는 행동대장이었으며 1개조 3명씩 3개조가 투입됐다.
민주구국학생연맹과 남민전의 관계는
답= 금년 2월 중순 남민전 조직확대사업으로 결성된 것인데 목적은 학생 근로자 등을 조직, 선동하는 데 있다.
허균이란 가명을 택한 이유는
답= 고를 균자로 평등을 뜻하기 때문이다.
............................................................................................................
1979.11.
[..... 4명의 피의자는 이 조직이 노린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혼란과 정부전복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고 ...... ]
[..... 남조선 해방전사들이 보내온 신년인사문을 발표하는 북괴 방송을 청취했다는 ....... ]
3차발표 남민전 관련 23명 추가 검거
동아일보 1979.11.13.
3차발표
남민전관련 23명 추가 검거
2명 자수...사실상 일망타진
북괴 조총련 접선 입증
궁극목표 사회주의국가 건설
성공할 때 게양할 기까지 만들어
경찰은 지난 10월 9일과 16일 2차에 걸쳐 발표한 이른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대한 수사진행상황을 13일 3차로 발표, 이사건 관련자 78명 가운데 2차 발표 이후 2명이 자수하고 23명을 추가로 검거, 모두 74명이 검거됐다고 밝혔다. 손달용 치안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남민전 관련자 78명중 일본을 통해 평양에 입북한 1명과 해외에 나가 있는 1명등 4명을 제외한 74명을 검거해 사실상 이사건 관련자는 일망타진 됐다고 말했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검거될 당시 자해로 인해 중상을 입고 가료중인 주범 이재문 등 관련자들의 공통된 진술과 증거에 의해 이조직이 북괴 및 재일 조총련과 접선 왕래가 있었음이 입증됐고 그들이 획책한 이른바 혁명이 성공하면 중앙청에 게양할 대형의 남조선민족해방전선기까지 만들어 놓았다는 것.
경찰은 이들이 음모와 은신장소 등으로 이용한 현장 4개소를 기자들에게 공개했으며 경찰의 안내로 기자들의 질문에 응한 4명의 피의자는 이 조직이 노린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혼란과 정부전복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고 말했다.
북괴접선
입북한 안용웅(38)은 지난 77년 11월 10일부터 15일까지 조총련 동경도 아다치(족립)지부 상공회부회장 임한묘 및 조총련계 시인 김윤 등의 주선으로 재일북괴공작원과 접선, 김일성에게 보내는 78년도 신년인사문과 사업보고서를 전달하고 공작자금 3억원을 지원요청했으며 북괴공작원이 이를 수락, 자금은 안의 소속회사인 크라운 물산을 통해 LC형식으로 송금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78년 1월초 서울시내 남민전 명의의 비라를 살포하면 그조직력을 인정 , 즉시 대남방송을 통해 김일성에게 보낸 인사문을 그대로 방송해서 이를 수신증으로 하겠다는 지령까지 받았다는 것.
이에따라 이들은 작년 월초 북괴지령대로 서울 도뀨 호텔 앞과 을지로 세운상가 앞 등에 정권을 타도하자는 등의 불온전단 5백장을 살포, 1월 5일부터 13일 사이 3회에 걸쳐 남조선 해방전사들이 보내온 신년인사문을 발표하는 북괴 방송을 청취했다는 것이다.
남민전 기
이들이 만든 남민전의 전선기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도예종 등 8명이 입었던 옷을 이사건으로 복역중인 무기수 전창일의 처 임인영이 수집하여 전수진 이문희 등이 염색, 봉합해 북괴기와 흡사하게 만들어 이문희 의 친정집 (관악구 신림1동 428의 91) 담밑에 파묻어 숨겨 놓은 것을 지난 10월 18일 경찰이 압수했다.
이기는 가로 1.5m 세로 1.1m의 대형기로 그들의 소위 혁명이 성공하면 중앙청에 게양할 계획이었다는 것.
기존사회단체 침투
이들은 또 기존사회단체에 위장침투 임헌영(자수)이 지난 77년 국제사면위원회 이사로 있으면서 남민전에 가입하여 이재문의 지령에 따라 이재오를 앰네스티 사무국장에 임명, 집행부서를 장악하고 남민전의 전위단체화를 추진해 왔으며 크리스챤 아카데미 농촌자회 간사 권영근을 포섭, 아카데미 활동상황과 농촌사회교육과정 이수자 명단을 입수하고 최석진을 농촌사회지도자로 위장, 아카데미의 6,7,8,16기기등 4기에 연속 교육을 받게 함으로써 동기생들을 포섭토록하고 6기에 민인기, 7기에 곽선숙, 8기에 김종삼 등도 수강케 했다.
.................................................................................................................
[ ..... 우리는 남조선혁명의 전위대다. 한손엔 무기를, 또 한손엔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고 ........ ]
남조선해방전선의 정체
경향신문 1979.10.9.
.................................................................................................................
이들은 또 조직에 가입할 때 남조선해방전선기를 걸어 놓고 강령을 낭독한후 선서를 통해 나는 투철한 혁명투사로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잠정강령과 규약에 적극 찬동하고 민족해방전사로서 온갖 노력과 재산과 생명을 다바쳐 멸사헌신할 것이며 만약 규약과 조직의 결정에 위배할 때는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굳게 맹세한다고 서약하고
전위대로서의 결심 서약으로 우리는 남조선혁명의 전위대다. 한손엔 무기를, 또 한손엔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남조선혁명의 새벽을 알리는 혁명의 전위대이다.충성으로 사령부를 지키고 결사용맹으로 적을 압도하자고 맹세했다.
......................................................................................................................
베트콩식 '민중봉기획책 남조선해방전선 사건 전모
경향신문 1979.10.16.
베트콩식 민중봉기획책
남조선해방전선사건 전모
유명인사집 폭파 약탈
전위대육성 혁명투쟁
예비군 가장해 카르빈 실탄 확보도
반정부적인 지식인, 제적학생, 근로자 등을 선동, 북괴의 적화통일혁명노선에 따라 대규모적인 민중봉기로 폭력혁명을 기도했던 이른바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간첩단은 혁명시기가 성숙되면 김일성에게 지원을 요청, 인민해방군과 함께 국가를 전복하고 사회주의국가체재로 남북연합정부를 수립한다는 무장투쟁계획을 수립했던 사실이 경찰 수사결과 밝혀졌다.
이들은 민중봉기의 전위대를 육성, 게릴라로 무장시켜 기업인과 군인 공무원 중산층 및 상인 등 부르좌 층을 대량으로 처단하고 정계 재계 언론계 등 사회저명인사의 집을 폭파, 방화하거나 약탈해 극도의 사회혼란을 일으킬 계획을 짜 놓았었다.
특히 이들은 표면상으론 '반체재'를 가장, 학원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조직을 침투시켜 사회분열을 획책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데모와 테러 , 도시게릴라 활동등의 베트콩전략방식을 모방, 대한민국의 국체를 뿌리채 흔들어 뽑으려는 끔찍한 음모를 숨기고 있었다.
.......................................................................................
이들 일당중 유일하게 자수한 임헌영은 고유번호 9번인 이재오(33.재감중)의 추천으로 지난 76년 11월초 이들 조직에 가입, 고유번호 10번을 부여 받고 25번 권오헌(42.중기대여업.검거)을 조직에 추천했었다.
....................................................................................
활동상황
북괴와 연계된 무장반국가단체 = 이들은 공산당식 점조직과 가명 등으로 철저히 위장됐고 공산당식 서열과 각자의 고유번호가 주어져 있다.
...................................................................................
무장을 위한 장기작전 = 이들은 혁명을 위한 필요한 무기를 확보키 위해 무장이 기본이라는 장기작전을 수립, 지난 7월 28일 강동구 잠실 1단지 예비군훈련장에서 고유번호 7번 이문희 (이재문의 내연의 처), 고유번호 27번 주남강 , 고유번호 12번 최석진 등이 카르빈 1정을, 고유번호 24번 박석률과 고유번호 42번 정인호 등이 실탄 1백5발을 훔쳤다.
2006.3.
[ 노무현정권 민보위는 남민전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였읍니다. ]
'남민전'관련자 29명 민주화운동 인정 故 김남주 시인 등 포함
시민의소리 webmaster@siminsori.com
2006.03.18
고(故) 김남주 시인 등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 사건 관련자 29명이 민주화운동인사로 인정됐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지난 13일 열린 제162차 심의회에서 남민전 관계자 33명 가운데 29명의 행위를 권위주의적 유신체제에 항거한 것으로 판단해 이들을 민주화운동인사로 인정했다.
인정된 주요 인사는 김남주 시인을 비롯해 이수일 전 전교조 위원장, 이학영 한국YMCA 사무총장,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장,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 등. 중앙위원이었던 이재문, 신향식, 이해경은 검토미필로 보류됐다.
.............................................................................................................................
httpwww.simi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54676
[ 전대협동우회, 민변, 참여연대, 민노총, 전교조, 통일광장 등의 남민전만세 합창입니다.
남민전 동지 만세, 이재문, 신향식도 열사 입니다. ]
[ ..... 남민전 ....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힘찬 투쟁을 전개하였다. ........ ]
[ ..... 이재문, 신향식 열사의 경우 민족민주 운동 진영에서 이미 열사로 인정되어 추모되고 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지하기 바란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하여 투쟁해 온 남민전 동지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 ]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성명 '남민전' 사건에 대한 민주화운동 인정을 환영하며
'남민전' 사건에 대한 민주화운동 인정을 환영하며, 정부는 관련자에 대한 명예회복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젊음을 바친 수 많은 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하고자 2000년 8월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보상심의위에서 2006년 3월 13일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29명에 대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였다.
보상심의위원회가 구성되고 사건을 접수한 지 이미 5년이 경과되어 계속 심의가 보류되어 오다 이제야 비로소 민주화운동으로 심의 결정되었다. 이미 보상심의위는 주변 정치 상황과 사회 분위기, 위원의 교체 등을 이유로 계속 심의를 지연시키는 등 관련자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환영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보상심의위원회가 심기일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며, 아직도 심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1500여 건의 사건에 대하여도 제대로 된 역사 평가라는 자세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조속한 심의 절차에 임하여야 한다.
남민전 사건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1970년대 폭압적인 박정희 유신 독재에 맞서기 위하여 조직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수립하여 활동하여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힘찬 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은 말기에 다가가면서 사회적 민주 질서를 파괴하고 모든 민주주의 행위를 억압하고 탄압하는 등 폭압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에 대하여 최석진, 박석률, 김남주, 이수일 등 많은 활동가들이 조직을 구성하여, 박정희 독재 정권을 파탄내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박정희 정권은 모든 공안기구를 동원하여 가담자들을 투옥·구금하였으며, 모든 고문기구들을 동원하여 반인권적 고문행위를 자행하였다. 관련자들 중 그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일부는 사망하기도 하고, 많은 관련자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남민전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여라!
현행 민주화운동명예회복법(이하, 명예회복법)에 의하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에 대하여는 아무런 보상이 지급되지 않으며, 유죄판결자에 대한 생활지원금(도시생활임금 이하자 기준으로 최고 5000만원 지급)이 일부 지급될 따름이다. 따라서 남민전 관련자에 대하여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적절한 보상, 유죄판결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 관련자 중 공직자(교사 등)에 대하여는 해직기간에 대한 경력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하여야 한다. 정부 차원의 공식적 사과와 명예회복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고, 미흡한 명예회복 후속 조치를 위하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명예회복법 2차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세워 조속히 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상심의위원회는 이번 심의에서 보류된 이재문, 신향식, 이해경 포함 남민전 사건 관련 21건에 대하여도 조속히 심의에 들어가 올바른 결정을 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재문, 신향식 열사의 경우 민족민주 운동 진영에서 이미 열사로 인정되어 추모되고 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지하기 바란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하여 투쟁해 온 남민전 동지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2006년 3월 15일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상임대표 강민조, 권오헌, 문영희, 박중기, 오종렬, 조준호, 정종열
민주화운동정신계승부산연대민주화운동정신계승인천연대대전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70민주노동자회80년해직언론인협의회강제징집피해자모임관악민주포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언론운동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불교인권위사월혁명회사노맹동우회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장애인의꿈너머전국장애인연맹실천불교전국승가회양심선언자모임여성단체연합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인권목회자동지회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운동사랑방인도주의실천의사
협의회인혁당대책위원회남민전대책위원회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전대협동우회전국민주화운동상이자연합회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빈민연합
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통일광장학술단체협의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위원회한국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 남민전에 관해 아래 참조 ]
httpwww.independent.co.krnews_01n_view.htmlid=15672&kind=menu_code&keys=3&search=&listpage=n_list.html
경애하는 수령 金日成 원수님... 남민전의 충성서신 中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14754&C_CC=AZ
'남민전'이 국민의 기본권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