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 출신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 복귀 움직임을 공개리에 맹성토한 데 이어 <조선일보>도 이 전총재에게 "태산과 비겨도 결코 작지 않은 역사적 책임이 있다"며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나섰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역시 여기에 가세해 이 전총재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하라"고 압박했다.

'범 조선일보' 진영으로부터 이 전총재가 융단폭격을 당하는 양상이다.

<조선일보> "이회창, 김대중-김영삼의 전철 밟아"

<조선일보>는 16일자 사설 '이회창씨 얼굴을 다시 보는 느낌'을 톨해 "이회창씨가 내년 초 ‘비(非)좌파 대연합’을 만들어 정치를 다시 하겠다고 한다"며 "우리 국민은 과거 김대중씨가 정계 은퇴 약속을 뒤집는 것을 보았고, 대통령까지 한 김영삼씨가 퇴임 후 2년 만에 갑자기 정계 복귀 선언을 하는 것도 보았다. 이씨 역시 그 길로 나섰다"고 이 전총재의 정계 복귀를 기정사실화했다.

사설은 "이씨가 지금의 정치 상황이 자신의 정계 복귀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씨가 대선에서 얻었던 1144만표, 아직도 열성적인 몇몇 지지자들에다 선거에서 이씨가 아닌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던 많은 사람들의 후회를 보고 그렇게 판단했는지 모른다. 지난 대선에서 김대업사건, 기양건설사건, 20만달러사건 등 여권의 조작 공세에 당한 억울함에 대한 동정론도 있고, 이렇게 정계 은퇴 약속을 번복하고 성공한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치열한 대결은 언제 파열음을 낼지 모른다는 예상도 낳고 있다"고 이 전총재 정계복귀 움직임의 속내를 분석하기도 했다.

사설은 그러나 "지금 이씨가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자신이 발을 디딜 정치적 자리가 아니라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내리 패함으로써 자신 대신에 업보를 치르고 있는 이 나라 이 국민의 처지"라며 '이회창 원죄론'을 제기했다.

사설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열거한 뒤, "이 정권이 저지른 이런 죄를 한꺼풀만 벗기면 거기 이씨가 영원히 지고 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책임이 버티고 있다. 태산과 비겨도 결코 작지 않은 책임"이라며 "여기서 어떻게 형세의 유·불리를 따지고 정치적 지형을 살필 마음을 낼 수 있겠는가"라고 이 전총재를 질타했다.

사설은 "이씨가 대선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라고 말하다가 눈물을 떨구던 장면을 기억한다"며 "이씨가 지금 지녀야 할 마음은 그때 그 마음 이외에 달리 있을 수가 없다"는 충고를 글을 끝맺었다.

대선 출마는 두말할 것도 없고 정계 복귀도 꿈도 꾸지 말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또 이날 사설과 별도로 전날 한나라당 의총장에서 벌어졌던 최구식 의원의 이회창 비판 소식을 다룬 기사를 통해 한나라당 대다수가 최의원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이날 많은 의원들은 '이 전총재가 원로 역할에만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최 의원 지적에 대해선 '다 맞는 말인데, 방법이 좀 심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그러면서 "이 전총재의 지지모임인 '창사랑'은 대선출마를 촉구하기 위해 다음달 서울에서 5천여명이 참가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전총재 및 창사랑 움직임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셈.

조갑제 "이회창, 한나라당 탈당하고 대선불출마 선언해야"

<조선일보> 자회사 <월간조선> 대표를 지낸 조갑제씨도 1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이회창씨가 구국운동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말릴 권리가 없다. 체제수호는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그가 또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것은 문제이고 본인도 출마 선언을 한 적이 없다"고 이 전총재의 대선 출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씨는 "그렇다면 이회창씨는 상징적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나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 다만 반(反)좌파연합전선 구성 등 구국운동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하면 좋겠다"며 대선 불출마 선언을 주문했다.

조씨는 "그가 구국운동을 열심히 하여 국민 다수가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강권하였을 때는 민의(民意)를 수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투명하게 행동할 때이지 복잡하게 처신할 때가 아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범 보수진영, "지금은 분열할 때가 아니다"

'범 조선일보' 진영의 이같은 '이회창 두들기기' 총공세는 "지금은 분열할 때가 아니다"는 보수진영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현재까진 열린우리당이 분열상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독주하고 있으나, 만약 이회창 전 총재 등이 나서 대선 재출마를 시도할 경우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이 분열되면서 2007년 대선에서 또다시 참패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는 셈.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회창씨가 출마한다 할지라도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며 "그러나 그가 4, 50만표만 갉아먹어도 불과 수십만표 차이로 정권을 놓친 1997, 2002년 대선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보수진영의 여론 메이커인 <조선일보> 등 '범 조선일보' 진영의 융단폭격에 직면한 이회창 전총재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