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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완 비서실장 또 '정치언론' 맹성토

"교과서 포럼, 전효숙, 여기자 성추행 잊지 말아야"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노무현 대통령 귀국 다음날인 11일 '교과서 포럼' '전효숙' '여기자 성추행'을 올해 잊지 말아야 할 3대 사건으로 규정한 뒤 재차 '정치 언론'을 맹성토하고 나서, 그 배경과 관련해 여러 가지 억측을 낳고 있다.

이 실장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대통령비서실 직원 여러분께-2006년 한 해를 보내며 드리는 글'을 통해 "지난 한해 함께 기뻐하고 감격했던 일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국산 초음속훈련기 T-50의 생산, 메이저리그를 압도한 한국 야구의 WBC 4강과 김연아 선수의 세계피겨스케이팅 우승,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 수출 3천억달러 돌파는 우리의 자긍심을 고취한 소중한 기억들로, 이들은 대한민국이 이젠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다는 징표로 볼만한 성격들을 지니고 있다"며 "그러나 다시 고개를 젓게 된다. 우리는 과연 선진 반열에 들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실장은 이어 "나는 그 대답의 하나를 감히 대한민국 지성과 언론의 위기에서 찾고자 한다"며 "2006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하고 상징적인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며 본격적으로 '정치언론'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보수 우익신문들, 뉴라이트 역사왜곡에 왜 조용하냐"

이 실장은 우선 "단연 첫 번째 사건은 우리사회의 신우익(뉴라이트)의 두뇌들이라는 몇몇 학자들의 모임인 교과서포럼이 내놓은 이른바 「한국 근현대 대안 교과서」시안 발표"라며 "이는 일본의 극우 지식집단인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주장, 강변하고 있는 식민사관의 한국적 변형이 아닐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화살을 언론으로 돌려 "매일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지면 구성을 감안하면 대다수 언론은 이번 사건을 일과성으로 치부해 버렸다"며 "왜 그랬을까. 보수 우익신문들이 조용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지원하고, 키워오고, 다음 정권의 담임세력으로 밀어온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이 만든 역사기술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부 신문의 전매특허인 사상검증은 어디로 갔냐"며 "'교과서 포럼'의 뉴라이트 세력은 불령선인(不逞鮮人)이 아니라서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냐. 최소한의 이성과 지성이 있다면 ‘교과서 포럼의 그 더러운 펜을 꺾어라’고 질타해야 할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화살을 지성계로 돌려 "그들은 그렇다고 치고, 대다수 우리 지성계가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며 "몇몇 보수 우익신문들의 덫에 갇혀 있기 때문 아닌가. 이들과의 피곤한 싸움을 피하려는 것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노무현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이병완 비서실장이 '정치언론' 비판에 나서 그 배경과 관련, 여러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연합뉴스


"전효숙 낙마는 여성, 호남, 비주류에 대한 뿌리깊은 비토"

이 실장은 잊지 말아야 할 두번째 사건으로 전효숙 헌재소장 내정자 인준 실패를 꼽으며 이를 '여성, 호남, 비주류'에 대한 비토로 해석했다.\

이 실장은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의 철회는 사실 우리 의회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이나 다름 없다"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 명백한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한 언론과 지성의 침묵과 외면"이라고 언론을 비난했다. 그는 "한 때는 국민모두에게 생소한 관습헌법의 논리까지 끄집어 내 법리적 쟁투를 벌였던 법조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언론과 지성들마저 이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동네 불싸움 보듯 구경하고 있었다"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법조계 등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전효숙 전 재판관에게 덧씌운 허위의 거품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도 1900년대초 프랑스를 휩쓸던 반(反)셈족주의와 같은 극우의 광기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성’, ‘호남’, ‘비주류’, ‘진보’, ‘코드’.... 내장된 색깔론을 애써 감추면서 그들은 적반하장식으로 헌정수호라고 호도했다. 극우세력과 극우언론, 그들의 비호와 지원을 받는 정치세력에게 지성마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냐"고 모두를 싸잡아 비난했다.

"최연희 여기자 성추행은 만취한 술자리의 부적절한 정언유착"

이 실장은 마지막 세번째 사건으로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사건을 꼽은 뒤, "이 사건은 우리 민주주의의 후진성과 아직도 잔존하는 일부 언론계의 깊은 내상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라며 "차기 집권을 노리는 유력 당간부 대부분과 신문사의 간부진과 기자들이 한 데 모여 밥 먹고, 폭탄주 돌리고, 2차로 노래방까지 함께 갔다면 이를 단순한 정·언 간 회합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화살을 타언론들로 돌려 "우리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만취로 기억이 없다는 사무총장의 손바닥만을 손가락질했다. 대다수 언론과 지성인들의 비판마저도 국회의원의 손바닥만을 나무랐다"며 "사건 자체가 또 다른 술좌석의 안주거리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지성, 과연 정치언론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이렇듯 3대 사건을 비판한 이 실장은 "나는 세가지 사건을 2006년에 일어난 그 어떤 사건보다도 이 시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사건의 중심엔 항상 ‘언론’이 자리잡고 있다. 스스로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자 감시견으로서의 소임과 역할을 포기하고 외면하는 ‘정치언론’과 ‘언론정치’"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특히 화살을 지성계로 돌려 "우리사회의 지성이 상당 부분 막강한 ‘정치언론’에 휘둘리고 있고, ‘언론정치’에 의해 유실돼 가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하고 싶다"며 "탁류처럼 흐르고 있는 정치언론과 언론정치로부터 지성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도 생각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진보로서의 역사'를 주장한 E.H 카의 말처럼 우리가 가고 있는 역사는 본질상 진보의 흐름이라고 믿는다"며 "이 흐름을 일시적으로 기득권과 반동의 저수지에 가둘 수는 있어도 곧 둑이 터지고 마는 것은 역시 시간의 조화인 만큼 지난 4년 그랬듯이 멀리보고 뚜벅뚜벅 가자. 새해의 희망이 보인다. 새로운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편지글을 끝맺었다.

이 실장의 글은 부분적으로 정치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세력을 싸잡아 '정치언론에 휘둘리는 세력'으로 매도하며 참여정권의 행보를 합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의 앞서 글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또 노대통령에 비판적인 언론 및 지성계를 비판하는 양정철 비서관-이병완 실장의 글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 연말연초께로 예정된 청와대 비서실 개편과 무관치 않은 것이냐는 의구심어린 시선도 던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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