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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 69% 가정폭력 경험”

[실태보고] 가정폭력 피해 갈 데 없는 여성장애인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강선순(가명)씨는 2004년 8월 가출했다. 8년간 계속된 남편 박진석(가명)씨의 가정폭력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강씨는 1996년 지체장애인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박씨와 결혼한 이후 온갖 욕설과 폭행에 시달려야했다.

반찬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밥상을 뒤집고 뜨거운 물을 붓기도 하고 심한 욕설은 일상적이었다. 매일 밤마다 성행위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또 다시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이 8년간 되풀이됐다.

참다못한 강씨는 남편 박씨를 경찰에 고소하고 집을 나와 쉼터에 입소하기를 원했지만 그녀가 입소할 수 있는 쉼터는 없었다. 전동휠체어을 이용하는 그녀의 편의를 보장해 줄 쉼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가정폭력쉼터 입소를 포기한 채 아이를 아동보호시설에 맡기고 성폭력 쉼터에 들어갔다.

여성장애인 3명 중 2명 가정폭력 노출, 전문기관은 단 2곳 불과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전국 14개 지역 여성장애인 5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백44명(68.8%)이 가정폭력을 한 번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장애인 3명 중 2명이 심각한 가정폭력 상황에 처해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수치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16일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여성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는 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여성장애인에 대한 '가정폭력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최병성 기자


해마다 아이들과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정폭력이 급증하는 가운데, 여성장애인들은 ‘여성’에 ‘장애’가 더해져 비장애여성보다 더 고통스러운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을 통틀어 여성장애인을 위한 가정폭력상담소는 12개, 성폭력상담소와 쉼터는 단 1개에 불과하다. 반면 전국의 일반 가정폭력상담소는 2005년 말 기준으로 2백97개였다. 여성장애인 단체들이 ‘비장애인 상담원이 장애유형에 따른 가정폭력의 유형이나 대응요령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렵다’며 시급한 확충을 주장하는 이유다.

실제로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4백62명(92.4%)이 ‘장애인을 위한 상담소와 쉼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정폭력피해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경험은 48명에 불과했다. 또 가정폭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여성 장애인 1백21명 중 28명(23.1%)이 ‘갈 곳이 없거나(23명)’, ‘여성장애인 전문기관이 없어서(5명)’라고 답했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가정폭력은 해마다 증가하며 일상화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정부.사회의 관심이 그만큼 소홀했다는 얘기다.

“피해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 병행되야”

이와 관련 유경희 충북 ‘다사리’ 장애인야간학교 교장은 “장애여성 배우자 중에는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남편이 장애자일 경우 자신의 열등감이나 스트레스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특수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상담소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교장은 또 “별거 및 이혼을 한 장애인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의 장애와 깨어진 가정으로 인해 상처가 곱이 된다”며 “장애인 가족 아이들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 및 치료, 경제적 지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방영희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쉼터원장은 “장애전문 가정폭력상담소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상담소에서 장애인의 특성 및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상담.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당장 장애인 전문 상담시설을 확충하는게 어렵다면 기존의 장애.비장애 통합상담소 인력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전문지식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라는 구조개선도 앞으로의 과제다. 권순기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소장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에 계류 중인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통해 구체적인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예방교육과 보호프로그램을 추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장명숙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응답 결과는 무엇보다 사회구조적인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며 “여성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과 사법기관에도 여성장애인에 대한 가정폭력을 올바로 인식시키고 예방근절, 홍보.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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