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손은 잡되 주도권은 주지 않다!

[아탈리가 말하는 미테랑] <6> 우파와의 연정

1986년 3월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 이날 저녁 몇몇 보좌관이 내 사무실에서 마른 과자를 걸신들린 듯 먹어치우며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대통령은 우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1983년 3월에 한 것을 1981년 9월부터 할 수 있었더라면 재정이 더 빨리 정상화되었을 것이고 아마 오늘 우리가 이길 수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공약을 지키고 나라의 구조를 개혁한 다음에라야 경제 안정화를 완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패배는 따라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치른 대가요. 그래서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오. 앞으로 알게 될 거요, 프랑스 국민은 나에게 오랫동안 한을 품지는 않을 거요.”

그는 정권교체를 겪는 첫 대통령으로서 좌우동거체제를 경험해야 했다. 제5공화국 헌법에서 시행된 적이 없는 마지막 국면이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행정부의 수장은 적대적인 국회 다수당을 상대하면서 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인가? 자크 시라크를 포함한 대다수 우파 지도자는 그가 당장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주장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내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태세였다.

미테랑은 우선 “임기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는 내각의 활동을 방해했다고 비난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2년이 끝난 다음 우파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어 좌파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그 자신이.

그는 정치인생을 실패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재선이 확실해 보이는 경우에만 다시 출마하리라고 결심했다. 따라서 후계자를 부상시키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혼자 우파를 상대로 싸우리라는 생각도 했다. 특히 미셸 로카르는 비록 사회당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지만 너무 소인배 같고 분파적 기질을 가져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했다. 게다가 기획장관과 농업장관으로서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그의 성과를 보고 미테랑은 로카르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성품을 갖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졌다.

대통령은 자신을 겨냥한 도발에 넘어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사력을 다해 자신의 통치권을 지킬 작정이었다.

“3월16일 이후 나는 정신적으로 정치적 휴가상태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의 안전에 관계된 모든 것을 맡아 통제할 것입니다.”

그가 내려야 할 첫 번째 결정은 총리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우파 수장들이 일종의 탄핵을 실행하기 위해 총리지명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후보지원자들이 여러 통로를 통해 그에게 알려졌을 때 그는 선택권을 행사할 생각을 했다:

“내가 중요한 우파인사를 총리로 기용하면 선거패배의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88년 대선에서 후보가 될 수 있기 위해 국민을 기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라크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경쟁자들이 마티뇽으로 가는 것을 막으리라는 것이 명백해지자 대통령의 요구로 두 번의 회의에 참석한 사회당 간부들은 드골파 수장을 뽑지 말라고 그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미테랑은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그들에게 설명했다:

“시라크가 가장 힘든 상대일 것이다. 하지만 장애물을 우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위험부담을 안고 약을 삼켜야 한다. 가장 드센 우파가 내각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시라크는 작금의 상황에서 총리가 될 능력이 있는가? 자기네 다수당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시라크를 뽑지 않는 것은 그가 스스로 최후의 보루처럼 행세할 것이며, 차기 대선에서 이길 기회를 더 많이 주는 일이었다. 미테랑은 덧붙였다:

“첫 6개월이 가장 힘들 것이다. 시라크는 나를 떼밀어 실수를 저지르도록 할 것이다&#8231;. 아무도 나에게 사퇴를 종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위기 순간을 해결하는 책임자로 남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미 그들의 인기는 너무 낮다.”

내가 물었다:

“만일 그가 마티뇽을 떠나고 자기네 다수당의 누구도 그곳에 가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번 해 보라지. 내가 알기로는 그곳에 가려는 사람이 여섯 명이 있소!”

그가 자크 시라크를 총리에 임명하고 난 직후 그 사실을 당시 파리에 들른 헨리 키신저에게 설명했다. 미테랑은 키신저를 점점 막역한 대화상대로 삼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미국 지도자들에게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이 모든 통제권을 갖지만, 핵심적인 것은 포함되지 않소. 그들은 주변적인 것밖에 통제하지 못할 거요.”

얼마 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총리가 알아야 할 것은 SNCF(철도회사)는 그의 소관이고, 군부는 내 소관이라는 것이오!”

미테랑은 노회한 정객이자 강력한 원칙주의자였다. ⓒ연합뉴스


3월 어느 날 저녁 좌우동거체제 첫 번째 각료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길이었다. 나도 계속 그 회의에 참석했다. 긴장되고 침통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내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이 될 것 같소. 그들 소관인 법률논의에는 참가하고 싶지 않소. 핵심적인 것에 관해서만 싸울 것이오. 도대체 왜 사회당원들은 좀 더 공격적이지 않지? 아, 내가 야당 국회의원이라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뻔한데!”

따라서 대통령은 시라크 총리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그가 유권자들에게 제시한 국내정책을 펼치도록 놔두었다. 특히 그가 판단하기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인사의 임명을 시라크가 하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6월부터는 ‘마녀사냥’ ‘축출’ ‘문서로 비방하기’ 등이 ‘숙청’의 양상을 띠었다. 대통령은 특히 합참의장 솔니에 장군의 사퇴를 거부하고, 국영기업체 몇몇 사장의 교체를 고깝게 여겼다:

“레베크를 크레디 리오네 은행장에 임명하는 것은 일개 당원을 대형 은행수장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고객들로서는 더 이상 안전을 믿지 못한다. 나 또한 수년 전부터 크레디 리오네 은행의 고객이다. 은행을 바꿔야겠다!”

정상회담에서의 위기

마티뇽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라크 총리는 대통령에게 정중하면서도 거칠게 굴었다. 그는 공공연히 대통령을 하찮게 여기는 것 같았다. 당장 시라크는 헌법 제20조를 들먹이며 외교상의 대통령의 특권을 깎아내리려고 했다. 그 조항에 따르면 ‘내각은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지휘한다’(“그런데 당신도 아시다시피 외교 또한 국가의 정책입니다”). 미테랑은 조소적이고 냉담하게 그에게 응수했다:

“물론 20조가 있소. 하지만 다른 조항도 있어요! 시력이 나빠서는 안 되는데. 당신은 다른 조항을 잊었소: 5, 14, 15, 52, 53조가 있소. 나는 이것들을 잊지 않아요. 헌법은 전체가 하나로 되어 있소.”

첫 번째 심각한 위기는 유럽정상회담과 G7정상회담에서의 총리의 역할에 관계된 것이었다. 의전상의 모양에 관한 이 싸움은 실은 아주 중요한 관건이 걸린 것이었다. 즉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 대통령이 여전히 외교와 국방의 총수인지 알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원수 혼자 G7정상회담의 축소회의에 참석했고, 확대회의에는 외무&#8231;재무장관이 그를 동반했다. 총리는 거기에 절대 오지 않았다. 유럽정상회담에도 총리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라크는 이런 정상회담의 대표단에 참여하기를 극구 바랐고, 미테랑은 이를 받아들였다 - “그렇게 하는 것이 프랑스 대표단에 무게를 싣고, 또 그러는 것이 나에게 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총리가 대표단의 관리를 나눠 하자고 요구했을 때 대통령은 거절하면 위기를 부를까 망설였다. 국민이 그가 옳지 않다고 여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나의 조언에 따라 그는 생각을 바꾸고 사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전 세계의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가 프랑스의 외교를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축소회의 회담장에 의자 두 개를 마련하도록 하려는 총리의 여러 번의 시도에 반대했다. 이 술책은 많은 간계와 비열한 짓을 통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은 사회당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마티뇽이 외국정부들과 직접 협상을 통해 이런 정상회담에서 프랑스가 일종의 쌍두 대표단을 갖는 특권을 얻으려고 시도하기에 나는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소: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 봐도 좋소만, 나는 반대요. 나는 프랑스가 조롱당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없소.’ 게다가 이런 일은 재미있어요. 매번 그가 외국정부와 협상할 때마다 외국 정부는 내게 대사를 보내 내가 정말 동의하는지 물어요.”

첫 번째 이런 정상회담은 1986년 3월 선거가 끝나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나 도쿄에서 열린 G7정상회담이었다. 이 회담은 극단적인 대치순간이었다. 총리는 거기서 대통령과 동급의 대우를 받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 나는 평소 나의 파트너들인 다른 나라 ‘셰르파’들의 중립성 덕을 보았다. 그들은 프랑스 사람들 사이의 이 싸움을 재미있다는 듯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테랑은 이 이야기를 몇 마디로 요약했다:

“1986년 4월 도쿄에서 G7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시라크는 ‘셰르파’들이 합의한 정상회담의 진행을 검토하면서 모든 것이 대표단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단장은 단 한 명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소. 그가 내 앞에서 그 문제를 불안해하기에(“이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그에게 가장 간단한 것은 그가 오지 않는 것이라고 응수했소. 그가 내게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시오? ‘아 안 돼요! 내가 거기 간다고 말해 버렸는데.’ 이 말은 시라크의 처신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많아요. 더욱 안 좋은 것은, 그가 이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했다는 것이오….”

도쿄 G7정상회담이 끝나고 두 달 뒤 헤이그에서 열린 유럽정상회담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도 시라크가 물러섰다. 그 이후의 회담은 훨씬 조용했다. 정한 규칙을 받아들였다. 좌우동거체제가 발생하면 요즘도 여전히 이들 규칙이 적용된다.

“비행기 조종사는 한 명”

자크 시라크가 그에게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제안한 ‘별들의 전쟁’ 계획에 프랑스가 참여하는 문제를 받아들이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단호히 거부했다. 그 이유는 다음 장에서 언급할 것이다:

“프랑스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거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고집하면 나는 그 문제에 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그렇게 하면 내가 이길 것이오.”

다른 여러 번의 권력 갈등은 제3자가 보는 앞에서 터졌다. 초창기, 엘리제궁에서 열린 안보회의 중 모두 우파에 속하는 여러 장관&#8231;합참의장&#8231;고위공무원이 배석한 자리에서 총리는 자신이 핵전략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미사일 발사 잠수함을 항속거리가 더욱 짧은 무기로 보완하자고 제안했다. 대통령은 거부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현대화하는 것만 승인했다. 이들 무기는 이미 프로방스 지방의 알비옹(Albion)고원 지하에 저장 설치되어 있었다. 그가 회의를 끝내려고 하자 시라크가 알비옹 고원에 새 미사일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노라고 설명했다. 미테랑은 아주 차분하게 그 말을 되풀이했다:

“당신은 나에게 알비옹 고원에 새 미사일을 설치할 것을 권하려는 겁니까?”

시라크가 중얼거렸다:

“네, 그렇습니다.”

미테랑이 결론을 내렸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때 어느 고위공무원이 다시 발언권을 얻어 단거리 미사일의 필요성을 역설하려고 했다. 대통령이 갑자기 발언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적대적이고 냉랭한 참석자들 앞에 이렇게 내뱉었다:

“결정은 내가 합니다. 나는 내가 말한 것만 승인합니다. 이상 끝. 회의가 끝났습니다.”

모든 군사 수뇌들 앞에서 관할권과 정당성 다툼이 해결되었다.

마찬가지로 1987년 독일 총리와 미테랑 대통령 사이에 장래의 공동통화와 유럽여단 창설에 관하여 그들 보좌관들 사이에 비밀리에 개최한 협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을 때 자크 시라크는 언론에 나서서 자신이 그 협상을 제의한 것처럼 말했다. 미테랑은 사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했다:

“몇 달 전, 독일 총리와 내가 국방과 안보 측면에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하고, 이 논의를 준비하던 대표단은, 특히 프랑스 대표단의 제의에 따라 군사문제를 정치활동의 테두리 속에 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보기에 경제·금융 측면에서도 병행되는 발전이 있으리라고 보였습니다. 병행이라지만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프랑스 총리와 나는 이전 며칠 동안 이 문제에 관해 의논하고, 두 사람 모두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중요한 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문제가 제기되고 해결되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바로 이렇게 해서 당신이 독일인들과 협상을 벌인 것 아니오? 기자들이 비행기에는 조종사가 오직 한 명 있다는 것을 제발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오!”

"일전이 불가피하군"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중요한 말싸움이 벌어졌다. 자칫 체제위기로 변할지도 몰랐다. 1986년 4월9일, 총리가 와서 법률상으로 대통령은 훈령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미테랑은 반박했다:

“당신 생각이 무엇이든 내가 원치 않는 훈령이면 나는 서명하지 않겠소.”

시라크가 항의했다: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각료회의에서 투표에 부쳐야겠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이 반격했다:

“전혀! 그것에 관해 투표하려면 우선 그것을 일정에 등록해야 하고, 그 일정을 정하는 것은 오직 나만의 권한이오. 당신은 나에게 헌법 제13조에 공화국 대통령은 내각이 제청하는 훈령을 동의하지 않아도 서명할 수밖에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는 유명한 법학자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이어 나갔다:

“덧붙여 말하면 모든 사람이 나에게 서명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서명을 원하지 않으면 나는 서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테랑은 자세를 가다듬고 더욱 부드러운 어조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선거구 획정이 특별히 편파적이지 않다면 나는 투표방식에 관한 훈령에 서명할 것입니다. 우선 프랑스 국민은 전체적으로 다수득표자 당선투표에 찬성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선거구 획정이 정말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가 선거구 획정에 관한 공개토론에 가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반면 그는 훈령권한 부여법률에 사회적 보호를 문제 삼는 명령을 담는 것을 거부했다:

“부득이한 경우 훈령으로 ANPE의 개혁을 하려고 한다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고용에 관계된 어떤 조치도 훈령 안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조치는 간접적으로 SMIC98)의 수정과 해고의 사전허가를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자크 시라크는 크게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이 제한조치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1945년에 국유화된 기업들을 훈령으로 민영화하려는 것을 대통령이 거부하자 매우 격렬한 정치전이 벌어져 하마터면 위기로 치달을 뻔했다.

대통령은 5월에 집무실에서 총리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1945년에 단행된 국유화 조치를 포함하는 명령에는 서명하지 않을 것이오. 이들 조치는 레지스탕스 국가평의회의 계획에 의한 것들이오. 40년의 역사를 가진 것들로서 이 사실만으로도 이것들은 국보에 해당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되오.”

시라크는 위협하듯 대답했다:

“당신이 서명하지 않으면 매우 곤란한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공화국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나를 아주 곤란하게 합니다.”

대통령은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잠깐, 당신은 당신 일에 전념하시오. 나는 내 일에 전념해요!”

그는 나에게 이 대화를 전달하면서 격노했다:

“기업체들을 싼값에 민영화하면서 그의 친구들은 ‘노른자위’가 되고 있소. 이렇게 해서 그들은 정치적 부채를 갚고 그 대가로 2년 후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단을 얻으려고 하는 거요.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오!”

힘겨루기는 3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7월11일, 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대통령이 민영화 가능 65개 기업의 목록을 정한 훈령안을 받았을 때였다. 그 기업들 중에는 1945년에 국유화된 기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내가 보는 앞에서 노발대발했다:

“일전이 불가피하군. 나라 전체가 지켜볼 것이오. 이 문건의 논의는 그들이 원한다면 장관회의에서 하겠지만, 훈령에 서명하는 것은 회의가 아니라 바로 나요. 나는 서명하지 않을 것이오! 갈 데까지 가 봅시다.”

사흘 후, 7월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 대통령은 의례적인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거부를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그날 오후 시라크의 보좌관 대부분은 조기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도록 그에게 사표를 제출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미테랑이 하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총리는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에두아르 발라뒤르에게 무마하는 선언을 발표하라고 부탁했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가 끝나자 -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나와 함께 뉴스를 봤다. 아주 드문 일이다 - 전화벨이 울렸다. 자크 시라크였다. 첫 마디가 동거체제를 끝내고 싶으냐고 그에게 물었다. 대통령은 아주 차분하고 정중한 어조로 독백하듯 대답했다. 그 중 일부는 <베르바팀>에 이미 인용되어 있다:

“나는 그러기를 바라지 않소.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의 결과를 받아들이오. 당신을 탓하지는 않소.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있소.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국회차원에서 당신에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오. 하지만 처음부터 당신이 법률을 통해 했더라면 아마도 지금 그렇게 되었을 것이오. 나는 당신에게 1945년에 국유화된 기업들의 민영화 조치에는 서명하지 않겠노라고 말했소. 나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오. 만약 당신이 국회를 통하려고 하면 나는 내 친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이 일이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하겠소. 물론 당신은 나에게 더하여 사회당을 조종하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오. 당신은 신념을 가졌소. 나도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오. 나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오. 잘 생각하시오. 나에게 나의 가장 내밀한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것을 하라고 강제하지 마시오. 필요한 정치적 대치 외에 나는 당신에게 반대할 아무것도 없소. 만일 이번 일이 (좌우동거체제) 경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나는 국민여론에 조금도 개의치 않소. 나는 모든 의무에서 자유롭소.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소. 단 한 가지, 내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 것 이외에는. 그러니 위기가 있으리라는 것은 첫날부터, 3월16일 총선거 이후 내가 기다려 왔던 일이오. 그리고 3월16일의 결과는 내가 4년 전부터 예상했던 것이라…. 위기라 돌이킬 수 없다고 당신이 판단한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오. 하지만 바라지는 않소.”

총리는 난처해하며 대답했다:

“몇몇 사람은 나더러 조기 대선을 하도록 사표를 내라고 종용합니다.”

미테랑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통령선거는 우리가 3월16일 선거 결과를 접한 이후부터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빤히 알 수 있소.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넉 달을 버텨 온 것이 이미 일종의 기적이오. 내가 당신에게 예고했지만,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았소. 하지만 조기대선은 실시되는 일이 없을 것이오.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요. 그리고 나는 하야할 생각이 없소.”

그리고 그는 “잘 생각하시오”라는 말을 내던지듯 하며 대화를 마쳤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와 나는 이런 대화는 체제 위기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그가 어떻게 하는지 봅시다. 세 번쯤 생각을 바꿨다 그 다음에 물러설 거요…. 나쁜 사람은 아니야!”

바로 그렇게 되었다. 그 다음날 자크 시라크는 그에게 두 번 전화를 걸어 훈령의 수정을 제의했다. 1945년에 국유화된 기업들의 민영화를 법률투표에 부치고, 기업 저평가와 외국인 점유에 대비한 보호조치들을 부가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시라크와는 언제나 줄이 팽팽하지만, 그러나 절대로 그 줄이 끊어지지는 않아요. 가능한 시나리오가 여럿 있어요. 그 중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국회가 언젠가 내각을 무너뜨린다는 것이오. 그러면 나는 사회당 출신 총리를 임명하고 하야하는 것입니다.”

다시 출마하기 위해서?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디터

댓글이 4 개 있습니다.

  • 0 0
    한번만 봐주세요

    https://youtu.be/4lNHfcy4jUc

  • 0 0
    봄향기

    https://youtu.be/n1LyKzTAhfg

  • 0 0
    ㅋㅋ

    정치는 어려워~~

  • 0 0

    오~
    https://youtu.be/bQ_wJeV7MHg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