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좌빨'이라더니 이젠 부자증세 주장"
"MB의 부자감세, 2040 분노에 기름 붓는 역할 해"
최근 <조선일보>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앞다퉈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나선 데 대해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 힐난성 쓴소리다.
이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모처럼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미국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백만장자들의 부자증세 청원 운동을 "미래에 자신들에게 닥칠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똑똑한 이기심'의 의도"에서 발현된 것으로 해석하며 최근 국내 보수 일각에서도 유사한 동조 움직임이 시작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상황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는 이런 종류의 똑똑한 이기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 것일까?"라며 정작 부자들은 침묵하고 있는 국내현실을 탄식한 뒤, "그러나 똑똑한 이기심의 실종이 부자들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자기 주변에서 똑똑한 이기심을 발휘하는 부자들을 볼 수 없는데 혼자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더군다나 부자감세 정책은 바보 같은 이기심을 가져도 무방하다는 신호를 줄기차게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이 점에서 본다면 바보 같은 이기심을 부추긴 대통령과 보수언론도 그 책임의 일단을 져야 마땅한 일"이라고 그동안 부자감세를 예찬해온 MB와 보수언론을 질타했다.
그는 특히 "최근 화두로 떠오른 ‘2040의 분노’를 모두 감세정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현 정부는 부자만 싸고돈다는 인식이 싹튼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2040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며 "정부가 뒤늦게 ‘친서민’과 ‘상생’을 부르짖고 나왔지만 아무도 그 진정성을 믿어 주려 하지 않는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구태여 답을 찾으려 할 필요조차 없는 의문"이라며 MB정권의 이율배반을 힐난했다.
그는 최근 보수신문과 한나라당에서조차 부자 증세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부자감세를 고집하고 있는 MB정부을 향해 "하기야 부자감세 정책이야말로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인데, 쓸모가 없어진 것을 보고서도 헌신짝처럼 내치기는 힘들 게 분명하다"며 "그러나 부자감세를 소중한 물건인 양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자 누가 이를 선뜻 잡으려 들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똑똑한 이기심과 부자감세
지금 미국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백만장자들의 모임이 자신에게 더 무거운 세금 부담을 안겨 달라고 청원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자신의 세금 부담이 너무 무겁다고 불평하는 것은 주로 최상위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보면 백만장자들이 자발적으로 더 무거운 세금 부담을 지겠다고 나서는 것은 정말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간 소득이 1백만 달러를 넘는 사람들이 2010년에 결성한 Patriotic Millionaires for Fiscal Strengths(PMFS)라는 모임의 회원이 바로 그들이다. 현재 220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이 모임의 대표들은 11월 16일 의회를 방문해 최고소득세율을 현 35%에서 (최소한) 39.6% 수준으로 올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부시행정부의 부자감세 시행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요구이며, 자신들이 그에 상응하는 세금 부담을 짊어질 용의가 있다는 의사의 표현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이런 요청을 하게 된 동기를 이타심이 아니라 ‘똑똑한 이기심’(enlightened self-interest)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들 중 하나인 찰리 핀크(Charlie Fink)씨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렇게 밝혔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만족을 얻자는 자선 차원이 아니라, 미래에 자신들에게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와 같은 세율 인상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솔직한 태도 표명이라고 본다. 그들이 누구인가? 살벌한 경제적 게임의 정글에서 살아남아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변모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돈을 많이 모았으니 자선사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순수하게 이타적인 동기에서 자신에게 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라고 요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자신에게 더 무거운 세금 부담을 안기라는 요구의 근저에 이기적 동기가 깔려 있다고 해서 누가 감히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똑똑한 이기심이야말로 사회가 올바르게 그리고 부드럽게 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소금과 윤활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바보 같은, 눈이 멀어버린 이기심이다. 이기심이라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똑똑한 이기심에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어야 한다.
PMFS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제시되어 있는 그 모임의 취지는 자못 비장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여기에 그대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작은 금전적 희생은 윤리적이며 동시에 애국적인 결정이다. 우리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계속 남아 있게 만들고 싶은 희망에서 이 작은 희생을 하려고 한다.”
(This small monetary sacrifice is both an ethical and patriotic decision, made in the hopes of allowing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o continue to be a leader economically, politically, and morally.)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지금 미국 사회도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똑똑하게 이기적인 부자들이 존재하는 한 사회적 갈등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미국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상황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는 이런 종류의 똑똑한 이기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 것일까? 부자감세의 수혜자들 중 그것이 경제 활성화에 아무 효과도 내지 못하면서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용감하게 발언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똑똑한 이기심의 실종이 부자들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똑똑하게 이기적인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누가 혹은 어떤 일로 인해 깨우침(enlightenment)을 받아야 한다. 자기 주변에서 똑똑한 이기심을 발휘하는 부자들을 볼 수 없는데 혼자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부자감세 정책은 바보 같은 이기심을 가져도 무방하다는 신호를 줄기차게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점에서 본다면 바보 같은 이기심을 부추긴 대통령과 보수언론도 그 책임의 일단을 져야 마땅한 일이다.
PMFS의 회원들은 부시행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음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그들은 이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극도로 나빠졌을 뿐 아니라, 양극화가 한층 더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 결과 미국 사회가 총체적인 위기상황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부자감세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구태여 그들이 직접 나서서 증언하지 않아도, 부자감세가 미국 경제에 어떤 귀결을 가져왔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수적인 미국인조차 이제는 부자감세 정책의 폐기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적인 논조로 유명한 경제지 Forbes의 편집인 로버트 렌즈너(RobertLenzner)씨는 최근에 쓴 논평에서 자본이득에 적용되는 세율을 높이지 않고서는 소득과 부의 평준화를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1978년까지만 해도 자본이득에 보통의 소득과 같은 35%의 최고세율이 적용되었으나, 레이건행정부 시절 20%로 낮추었고 부시행정부에서 다시 현재의 수준인 15%로 낮추어졌다. 그는 이것을 다시 공정하다고 생각되는 수준으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렌즈너씨는 상위 0.1%가 모든 자본이득의 절반 정도를 얻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시행정부가 이에 적용되는 세율을 낮춤으로써 빈부격차를 크게 벌리는 결과를 가져온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가 인용한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의 분석에 따르면, 소득분배 불평등도의 증가분 중 80% 이상이 개인소득 중 자본이득의 비중이 커진 데 따른 결과라고 한다. 이 자본이득의 불평등한 분배가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게 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렌즈너씨의 분석이다.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렌즈너씨는 민주주의와 부의 편중은 양립할 수 없다는 루이 브랜다이즈(Louis Brandeis) 대법원판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즉 부자감세로 인한 부의 편중 심화가 민주주의체제 그 자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본이득에 적용되는 세율을 좀 더 공정한 수준으로 높이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적 불안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로 글을 끝내고 있다. Forbes의 논조가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발언이 매우 충격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보고 있는 부자감세의 현주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이것 역시 미국의 감세정책 못지않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데 감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본다. 세금만 깎아주면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기적처럼 되살아날 것처럼 말했지만, 어느 것이든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감세정책이 도입된 시점에서의 화려한 팡파르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여전히 활력을 되찾지 못한 채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2040의 분노’를 모두 감세정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현 정부는 부자만 싸고돈다는 인식이 싹튼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2040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부가 뒤늦게 ‘친서민’과 ‘상생’을 부르짖고 나왔지만 아무도 그 진정성을 믿어 주려 하지 않는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구태여 답을 찾으려 할 필요조차 없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부자감세의 철회를 요구하면 ‘좌빨’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보수언론과 여당 일각에서도 그와 비슷한 요구가 터져 나오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직 청와대만이 이미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감세정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들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곳만이 독야청청 ‘이대로’를 고집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기야 부자감세 정책이야말로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인데, 쓸모가 없어진 것을 보고서도 헌신짝처럼 내치기는 힘들 게 분명하다. 이걸 내친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은 뜻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부자감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아무리 친서민, 상생을 부르짖어 봐도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올 것 또한 분명하다. 부자감세를 소중한 물건인 양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자 누가 이를 선뜻 잡으려 들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부자감세를 통한 경제의 활성화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올 양극화의 심화 같은 부작용은 기꺼이 감내할 용의를 갖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제 정책의 최우선순위가 친서민과 상생으로 옮겨간 것일까? 친서민과 상생이 입으로만 부르짖는 구호인가 아니면 정권의 명운을 내걸고 진지하게 추구하고 싶은 목표인가?
어찌 되었든 지금 정부는 아주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체면을 지키기 위해 실질적으로 용도폐기된 부자감세 정책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과감히 내쳐버리고 진정한 친서민,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할지의 선택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다. 국민은 정부가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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