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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왕' 김일 타계, 가난한 시대의 국민영웅

역도산의 수제자로 프로레슬링 전성시대 개막

선수생활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워온 '박치기 왕' 김일(77)씨가 26일 낮 12시17분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당뇨합병증, 고혈안, 만성신부전 등으로 십수년전부터 병원생활을 해온 고인은 아들 수안씨 등 친인척, 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 등 지인 3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았다.

역도산의 수제자로 유명한 고인은 1960~70년대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았던 국민적 영웅이었다.

1929년 전남 고흥의 한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일은 한 잡지에서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에 등극하며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역도산의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밀항했으나, 경찰에 잡혀 1년간 형무소 생활을 해야 했다. 김일은 그러나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도 역도산에게 프로레슬링을 배우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부단히 보냈고 이에 역도산이 보증을 서 형무소에서 나와 1957년 역도산의 수제자가 됐다.

이후 김일은 지옥훈련을 견디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박치기 기술을 연마했고 196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아시아태그에서 챔피언 등극, 1967년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김일의 시합이 있을 때면 만화가게와 다방의 흑백TV 앞에는 남녀노소 전국민이 모여 그를 응원했고, 일본의 레슬링 영웅 안토니오 이노키나 자이언트 바바 등과의 시합이 있을 때는 열렬한 국가응원전이 전개됐다. 가난한 60~70년대 그는 국민의 영웅이었고,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김일의 투병소식을 듣고 2000년 병문안차 방한한, 같은 역도산의 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와 환담하고 있는 고인. ⓒ연합뉴스


고 장영철, 천규덕 등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와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 전성시대를 열었던 고인은 1970년대 후반 현역에서 물러날 때까지 20차례나 세계타이틀을 방어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은퇴후 여러 사업을 벌였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선수생활의 후유증으로 가난 속에 병마와 싸워야 했다. 그 소식을 접한, 김씨의 팬이었던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권유로 1994년 1월 귀국해 10여년간 을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의 빈소는 을지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특실에 마련됐고 28일 오후 경기도 벽제에서 화장을 한 뒤 유골은 고향 전남에 안치될 예정이다.

고인을 회고하는 중년이상의 국민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발인한 최규하 전대통령보다는 고인이 국민장 대상이 돼야 하는 게 아니냐며 한시대의 큰 별이었던 고인의 타계를 애도하고 있다.
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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