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한 목소리로 "설 민심 장난 아니네"
"살림살이 어렵다" 하소연 비등, "개헌은 관심밖"
지난 2∼4일 설 연휴 기간 귀향활동을 통해 ‘바닥 민심’을 살피고 온 여야 의원들은 5일 이구동성 경기악화에 대한 서민들의 한숨소리를 전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서민생활은 물가상승, 전세대란, 일자리 부족, 구제역 확산 등으로 팍팍해졌고 이에 따라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비등하고 있다는 게 여야 의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개헌론, 무상복지 논쟁으로 여의도 정가가 달아오르고 있지만 이같은 이슈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덜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놓고 “집권여당으로서 민생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새해 각오를 다지는 데 방점을 찍었으나, 민주당은 “4대 민생대란의 종합판”이라며 현 정부에 대해 비판의 날을 바짝 세웠다.
◇여야 “민생 챙겨야” 한목소리 = 집중적인 지역구 활동을 벌였던 여야 의원들의 일성은 민생경제였다. 내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민심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였다는 것이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한나라당 서병수 최고위원은 “물가 때문에 팔리지도 않고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며 “서민경제를 살릴 수 있는 실질적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남 지역의 한 의원은 “물가를 잡아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몇몇 대기업, 특정 산업만 경기가 좋을 뿐 경기 체감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북의 이한성 의원은 “지역 경기가 엉망”이라고 했고,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가장 많았다. 이것이 진짜 민심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고물가, 일자리,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전세난 등 4대 민생대란의 종합판을 보는 설 연휴였다”며 설 민심을 전했다.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물가 때문에 국민끼리 미안해하는 현장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며 “정부의 실패한 정책으로 서민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전 출신인 박병석 의원은 “월급과 쌀값을 빼고 모든 게 다 올라 서민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고, 한 호남 출신 의원은 “정부가 물가를 잡는 노력을 등한시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여야 의원들은 구제역 확산에 따른 축산농가의 고충을 전하면서 정부에 철저한 방역 대책을 촉구했다.
경기 연천이 지역구인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은 “공항 검역시스템, 지방자치단체에게만 맡겨놓은 살처분, 2차 오염문제, 백신접종 시기 등 정부의 구제역 관련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광주 출신인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호남은) 구제역의 남은 성역으로 구제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했고, 한 민주당 의원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때문에 구제역을 방치했다는 음모설이 돌 정도로 민심이 흉흉했다”고 말했다.
◇정치이슈 무관심..여야 아전인수 해석도 = 개헌과 복지논쟁 등 정치 이슈에 서민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의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은 대체로 "개헌에 대해서는 이야기 자체가 별로 안됐고, 그나마 나온 얘기도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개헌 문제를 먼 나라 얘기인 것처럼 말하더라"고 전했다. 부산 출신의 이종혁 의원은 "개헌이 옳거나 그르다기보다는 `먹고 살기 힘든데 이런 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러워질 것 아니냐'는 염려를 많이 하더라"면서 "시기적으로도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인 얘기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인 경남 마산의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은 "물어보면 `5년 단임제는 선거를 자주 치르는 느낌이어서 4년 중임제로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도 "국민의 큰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친이계인 장제원 의원은 "당원이나 어르신들은 `5년 단임제는 문제있다', `대통령이 개헌 의지는 있느냐', `선거가 너무 잦다'고 말했다"며 "개헌 필요성은 공유하는 것"이라고 대조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야권은 개헌에 대한 여론이 싸늘했다며 더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에 대해서는 어떤 국민도 관심이 없었다. 개헌의 `개'자도 묻는 국민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바닥에서는 관심 밖"(김영진 의원), "왜 이 시점에 개헌하려고 하느냐"(조경태 의원), "공허한 논쟁 아니냐"(정장선 의원)는 말도 나왔다.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도 "개헌에는 민심이 싸늘했다"고 했다.
복지 논쟁도 의외로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 많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 무상 복지정책에 대해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느냐는 것이 민심"(안형환 의원), "증세로 연결되니 시민들 사이에서 움찔한 것은 있었다"(윤상현 의원), "국민은 `우리가 언제 공짜를 바랬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이정현 의원)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세금 올리지 않고도 의료와 보육이 무상으로 가능하느냐는 물음이 많았다"(전병헌 의원), "무상급식을 고교까지 확대하라"(김영진 의원)는 등의 호응이 있었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는 "좋기는 한데 재정도 걱정된다"(김성순 의원), "무상 시리즈로 역풍 맞는 것 아니냐"(강기정 의원)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한 의원도 있었다.
과학벨트에 대해서는 충청권을 제외한 타 지역에서는 관심이 떨어졌다고 한다.
대전이 지역구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초등학교 반장도 그렇게 안할 것이다'며 절대 그냥 못 넘긴다고 했다"고 말했고, 충북 청원 출신의 변재일 의원은 "`충청 알기를 개떡같이 안다'는 핫바지론이 충청도 민심"이라고 밝혔다.
`아덴만 구출작전'에 대한 여론에 관해서도 한나라당은 "오랜만에 속이 뻥 뚫리는 쾌거"라고 전했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왜 아덴만만 나오고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주 이면계약은 보도가 안되냐"는 것이 민심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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