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대명필' 한석봉 묘, 개성 인근에서 발견
황해남도 토산군 석봉리에서 묘비와 업적기록 비석 발견
조선시대 명필로 유명한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의 묘가 그의 고향인 개성 인근에서 발견됐다.
25일 북한의 대남 라디오 `평양방송'에 따르면 개성 고려박물관 연구사들이 최근 개성시와 인접한 황해남도 토산군 석봉리에서 한호의 묘비와 업적을 기록한 비석을 발견했다.
북한 학자들이 발견한 묘비에는 `조선국 통훈대부 가평군수 증 승지 한공지묘(朝鮮國通訓大夫加平郡守贈承旨韓公之墓)'라고 돼 있다.
이는 생전 가평군수까지 올랐던 한호에게 사후 왕명의 출납을 맡는 승지직이 내려졌다는 뜻이다.
비석에는 한호가 명필로 이름을 떨쳐, 사람들이 한호의 글씨 한장을 얻으면 마치 구슬이나 옥돌을 얻은 것처럼 여겼고, 왕과 왕족들도 그의 글씨를 병풍이나 책상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감상했다는 내용이 음각돼 있다.
또 명나라 사신들까지 그에게 글씨를 부탁해 갖고 갈 정도로 명성이 나라 안팎으로 높았으며, 명나라 학자 왕세종이 한호의 글을 `노한 사자가 돌을 부수고 목마른 준마가 샘물로 달리는 듯하다'고 극찬한 기록도 포함돼 있다고 평양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현재 개성시에는 한석봉의 필적으로 된 선죽교비와 화담 서경덕 신도비가 남아 있고, 불타버린 (개성) 남대문의 현판 글도 그의 필적인 것으로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25일 북한의 대남 라디오 `평양방송'에 따르면 개성 고려박물관 연구사들이 최근 개성시와 인접한 황해남도 토산군 석봉리에서 한호의 묘비와 업적을 기록한 비석을 발견했다.
북한 학자들이 발견한 묘비에는 `조선국 통훈대부 가평군수 증 승지 한공지묘(朝鮮國通訓大夫加平郡守贈承旨韓公之墓)'라고 돼 있다.
이는 생전 가평군수까지 올랐던 한호에게 사후 왕명의 출납을 맡는 승지직이 내려졌다는 뜻이다.
비석에는 한호가 명필로 이름을 떨쳐, 사람들이 한호의 글씨 한장을 얻으면 마치 구슬이나 옥돌을 얻은 것처럼 여겼고, 왕과 왕족들도 그의 글씨를 병풍이나 책상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감상했다는 내용이 음각돼 있다.
또 명나라 사신들까지 그에게 글씨를 부탁해 갖고 갈 정도로 명성이 나라 안팎으로 높았으며, 명나라 학자 왕세종이 한호의 글을 `노한 사자가 돌을 부수고 목마른 준마가 샘물로 달리는 듯하다'고 극찬한 기록도 포함돼 있다고 평양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현재 개성시에는 한석봉의 필적으로 된 선죽교비와 화담 서경덕 신도비가 남아 있고, 불타버린 (개성) 남대문의 현판 글도 그의 필적인 것으로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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