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총리로 지명된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교육기본정책과 다른 생각을 띠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정부 정책기조와 나의 교육정책적 생각은 기본방향에서 일치한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김 지명자 해명에도 불구하고 과거 자신의 발언과 발표문 등에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획일성으로 인하여 수월성. 평등성 모두 죽어"
김 지명자의 교육정책 방향에 있어 정부 교육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목은 평준화 제도. 김 지명자는 오는 5일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주최의 국제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미래 교육 비전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3일 김 내정자가 교육부총리에 지명되자 곧바로 국제회의 참석을 취소했다.
김 지명자가 이 날 발표하기로 한 발표문의 대략은 이미 인쇄까지 마친 터라 일부 언론에 발표문 주요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특히 김 지명자는 해당 발표문을 통해 정부의 평준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지명자는 “학교에서 재능별 수업과 능력별 수업을 조장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학교들은 획일성으로 인하여 수월성도 평등성도 모두 죽어 있다. 고교 평준화가 평등정책의 하나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평준화는 적극적인 평등 정책이 되지 못하고, 고등학교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면이 강하다. 학교의 다양화, 교육과정 운영의 유연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실상 평준화 정책에 대한 전면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평소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해와 교육부총리 취임후 정책 행보가 주목되는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교육부 3불 정책과 불일치
더 나아가 김 내정자는 “한국 교육제도와 정책의 국가주의적 성격은 뿌리가 깊고 강하다. 세계은행의 한국 교육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앙정부가 학교 형태는 물론 학생 입학.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 임용. 입학금. 수업료까지 규제하고 있으며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통제가 교육을 경직시키고 있다. 역대 정부는 교육에 대한 통제는 강화하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를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부입학 허용을 주장하는 일부 사립대학의 손을 들어주는 의미로도 해석가능한 대목이다.
김 지명자는 또 “한국 교육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정책적 실패는 각급 학교의 졸업제도는 방치하고 입학제도에만 집착한 데서 기인한다. '입학은 어려워도 졸업은 쉽다'는 말이 한국 교육의 특성을 드러낸다. 입학정책에서 졸업정책으로 전환한다는 뜻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데 있다. 교육의 질을 정확히 확인한다는 뜻에서 각급 학교의 주요 교과별 전국 학력고사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현 정부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김신일 "정부의 정책기조와 나의 교육정책적 생각은 기본방향에서 일치"
이처럼 사실상 정부의 '3불 정책(본고사금지ㆍ고교서열화금지ㆍ기여입학금지)'에 반대하는 자신의 발표문이 알려지자 김 지명자는 4일 즉각 교육부를 통해 해명자료를 냈다.
교육부는 김 지명자가 “정부의 정책기조와 나의 교육정책적 생각은 기본방향에서 일치한다”며 “그래서 발탁된 것으로 알고 나도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김 지명자는 “학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조건없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과 구체적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교육정책은 국가 전체의 정책방향, 정책의 일관성, 정책의 실현가능성 등을 감안해서 판단하게 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개별 정책사항들에 대해서는 필요시 청문회 등 추후 기회에 말씀이 있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발표문 통해 일관되게 '평준화 문제점' 지적
그러나 김 지명자의 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김 지명자가 행한 과거 발언과 논문ㆍ발표문 등을 보면 평준화 반대는 그의 오랜 소신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김 지명자는 지난 해 <교수신문>에 기고한 ‘대입선발제도의 성공조건’이란 제목의 글에서 “상대평가로 내신을 산출하는 교육부의 정책 때문에 대학이 고교와 내신을 믿지 않는다”며 “고교가 주도하는 전국단위 학력고사를 도입해 고교 교육에 올인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명자는 또 올초 펴낸 저서 <서울대 김신일 교수의 교육생각>에서 “사립학교를 국공립학교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지 말고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게 정책을 만들라”고 사립학교 활성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자립형 사립학교 확대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정부 논리와 충돌하는 대목이다.
그는 2002년 <교육정책으로 학부모를 그만 괴롭혀라>라는 글에서는 “교육 당국의 획일적인 지시나 교육부와 지방교육청 사이의 대립은 학교 운영에 방해만 된다. 자사고의 경우 여건과 능력이 되는 사립학교가 전환하고 싶다면 허용해야 한다”고 자사고 확대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3일 브리핑을 통해 “‘새 교육부총리 내정자, ‘자립형 사립고’ 확대 등 평등교육 ‘코드’ 깨는 소신을 주목한다’”며 사실상 김 지명자가 노무현 정권의 교육정책과 ‘코드’가 다름을 지적했다. 따라서 김 지명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세게 '소신 점검'을 받아야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