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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들, “졌지만 장하다"

[응원 현장] 잠실야구장, 3만 관중 몰려 “대~한민국”

비록 아쉽게 졌지만 경이로운 ‘봄의 전설’을 보는 듯했다. 한국시리즈 기간도 아닌데도 서울 잠실야구장을 가득 채운 3만 관중들로 꽉 들어찼다.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월드클래식베이스볼(WBC) 준결승 한국과 일본전을 응원하기 위해 야구팬들은 경기 시작 3시간 전인 오전 9시부터 잠실구장을 찾았다. 당초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오전 10시부터 잠실구장을 개방하기로 했으나 관중들이 일찍 경기장을 찾음에 따라 개방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잠실구장을 개방했다.

경기장 입구에서 관중들의 입장을 돕던 한 진행요원은 “여기서 직접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며 시민들의 열정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을 응원하기 위해 잠실 경기장은 3만 관중으로 가득찼다ⓒ뷰스앤뉴스


수원에서 가족과 함께 잠실구장을 찾은 김모씨(37세, 남)는 “전광판을 통해서 야구를 본다해도 역시 야구는 야구장에서 보는 것이 제 맛”이라며 "전광판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고 했다.

‘WBC 특수’에 상인들 즐거운 비명

때아닌 ‘WBC 특수’로 즐거운 비명을지른 쪽은 경기장 곳곳에 배치된 편의점과 응원도구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한국대표팀을 상징하는 파란색 티셔츠와 파란 막대풍선을 팔고있던 박모씨(34세, 남)는 “오늘 아침 7시부터 경기장에 진을 치고 있었다”면서 “막대풍선을 공수하기 위해 새벽부터 바빴다”고 말했다.

경기장 2층 1루 관중석으로 연결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이모씨(24세, 여)도 “오늘 경기도 없지만 관중들이 몰린다는 소식에 급히 지원나왔다”면서 WBC 열기에 놀라워했다.

조금이라도 경기장면을 놓칠새라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는 시민들ⓒ뷰스앤뉴스


통로마다 입추의 여지없이 ‘대~한민국’

경기장안은 3만 관중들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통로마다 전광판을 보기위해 사람들로 가득찼고 계단에도 삼삼오오 줄을 맞춰 앉는 등 앉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자리를 차지하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나마 관중들이 이동 할 수 있는 시간은 매 회가 끝나는 중간 쉬는 시간. 2분 가까운 쉬는 시간을 틈타 담배를 피우기위해 자리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과 화장실을 가기위한 사람들은 저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경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담배를 피우기위해 자리를 빠져나온 한 시민은 “우리애가 물도 사오라고 했는데 아이구 이거 뭐 담배 필 시간도 없네”라며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이 날 응원에는 가족을 비롯해 부쩍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을 하다 만났다는 한 연인은 “아마 WBC 경기가 월드컵 때 만큼 기간이 길었다면 저희들처럼 커플된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한편 119구급대 차량 2대와 경찰들이 투입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도 했는데 응급차량에서 라디오로 중계방송을 청취하고 있던 한 119응급요원은 “답답해 미치겠어요. 이거 꼭 봐야 하는데 자리를 떠날 수도 없고...”라며 중계방송을 시청하지 못하는 데 따른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경기장 질서를 맡은 한 진행요원도 “신기할 따름”이라면서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시민들의 열기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 날 잠실야구장 응원전에는 부쩍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뷰스앤뉴스


야구장, 축구장 등 전국 곳곳에서 거리응원전

한편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 날 WBC 한.일 준결승전 응원을 위해 잠실경기장을 비롯 ▲대구 ▲대전 한밭 ▲부산 사직 ▲인천 문학경기장을 개방했다.

또 ▲포항 축구전용구장 ▲광주 월드컵경기장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 ▲수원 월드컵경기장도 야구 응원을 위해 경기장을 개방했다.

한국 야구대표팀의 패배로 경기가 마무리되자 관중석 곳곳에서는 아쉬움의 한탄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선수들을 꾸짖는 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이 자국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해서 짜놓은 '엉터리 대진표' 때문에 지역예선과 8강전에서 두번이나 이긴 일본과 다시 맞붙어 지기는 했으나, 우리 대표팀은 이미 세계최강 미국과 아시아 최강 일본을 격파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어거지에도 불구하고 WBC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패한 팀이라는 게 관중들의 판단이었다.

한 관중은 “그래도 2002년 월드컵의 추억을 다시 한번 맛보는 것 같아 좋았다. 좋은 추억을 준 야구팀에게 감사한다”면서 야구대표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 분당에서 응원을 위해 잠실구장을 찾은 한 관중 역시 “일본에게 2번이나 먼저 이겼고 이제껏 유일하게 무패를 기록하며 준결승까지 오른 것은 우리뿐”이라면서 “사실상 이번 WBC는 우리가 우승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대표팀을 끝까지 격려했다.

아쉬움 속에서도 선수들을 승자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우리 성숙한 국민들이었다.

꼬마들도 대~한민국ⓒ뷰스앤뉴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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