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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수도자적 도덕성 갖춰야" "공판중심주의 실천하라"

이용훈 대법원장이 16일 조관행 전 고법판사가 '김홍수 게이트'에 연루된 수뢰혐의로 구속된 것과 관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에서 전체 대법관 12명과 각급 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 46명 전원이 참석한 전국법원장회의에서 훈시를 통해 "대법원장인 저는 전국의 모든 법관들과 더불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 사회 이곳 저곳에서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사법부와 법관에 대해서만은 각별한 믿음을 아끼지 않으셨던 국민들이 받았을 실망감과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사과했다.

대법원장이 법조비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윤관 전 대법원장이 1995년 2월 입찰보증금 횡령 등이 불거졌던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사건'으로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두번째이다.

이 대법원장은 이어 법관들에 대해서도 "우리 사법부 안에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생겨날 수 있는 풍토와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하여 응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우리들의 어떤 인식과 사고방식이 국민들의 기대와 동떨어진 관행을 용납되게 하였는지, 또 어떠한 행동이 특권적 선민의식의 발로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는지 통렬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고 통렬한 자성을 촉구했다.

이 대법원장은 "국민들은 우리가 법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도자에게나 어울릴 만한 엄격한 도덕성과 고도의 자기절제를 요구한다"며 "이는 국민의 요구이기에 앞서 법관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덕목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고 사회의 부정을 단죄하여야 할 법관이 도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게 된다면 아무리 뛰어난 법률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법관으로서 자격이 없다"고'수도자 차원의 도덕성'을 요구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어 이번 사태의 근원을 "잘못된 재판관행"에서 찾으며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상 재판의 기본원칙인 구술주의와 공판중심주의를 충실히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시에 따라 이번 전국법원장회의에서는 외부인사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법관감찰기구 설치 및 법관징계위원회 운영 방안, 비리ㆍ비위 의혹이 있는 법관의 징계처리 절차 강화 등을 담은 대책이 마련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사법사상 두번째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 ⓒ연합뉴스


다음은 이 대법원장 훈시 전문.

이용훈 대법원장 전국법원장회의 훈시

전국의 법관 여러분.

우리는 최근 드러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 동안 공들여 쌓아온 사법에 대한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법관의 판단에 대한 회의의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지는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인 저는 전국의 모든 법관들과 더불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사회 이곳 저곳에서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사법부와 법관에 대해서만은 각별한 믿음을 아끼지 않으셨던 국민들이 받았을 실망감과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법관들은 사법부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주요 원인이 우리 스스로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이번 사태에 대하여 깊이 자성하여야 합니다.

우리 사법부 안에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생겨날 수 있는 풍토와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하여 응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들의 어떤 인식과 사고방식이 국민들의 기대와 동떨어진 관행을 용납되게 하였는지, 또 어떠한 행동이 특권적 선민의식의 발로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는지 통렬하게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어린 반성과 자기성찰이 있을 때에만 국민들도 우리들의 진심을 믿어주고 질책과 더불어 애정어린 격려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전국의 법관 여러분.

우리 법관들의 자질과 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의 법관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법관들은 개인생활을 희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격무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일해 왔고 또한 청렴하게 처신하면서 공평무사하게 판단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와 기대가 오늘날 우리 사법부를 지탱하는 커다란 힘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우리가 법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도자에게나 어울릴 만한 엄격한 도덕성과 고도의 자기절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요구이기에 앞서 법관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고 사회의 부정을 단죄하여야 할 법관이 도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게 된다면 아무리 뛰어난 법률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법관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2천명이 넘는 법관 중 단 한 명이라도 그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전체 법원을 비난하고 질책하게 됩니다. 한 명의 법관이라도 판결의 공정성에 대하여 의심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는 순간 사법적 판단 전체의 권위와 신뢰가 크게 손상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절대 다수의 법관들이 성실하고 청렴하다고 해도 사법부 전체 또는 법관 각자가 쉽게 국민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법관 여러분.

저는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이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우리 법관들은 잘 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몰라주고 있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여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스스로 사법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여 이를 실천하여야 합니다. 설사 사법불신의 원인이 재판 당사자나 국민들의 오해 또는 다른 동료 법관들의 부적절한 처신이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해소하고 사법신뢰를 회복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제 이러한 인식 위에서 근본적이고 강도높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법관으로서의 청렴성이나 공정성을 훼손하거나 의심받을 만한 행위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허용되어 왔다면 그런 관행은 결단코 없애야 합니다. 만약 개인의 노력만으로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면, 제도를 만들어서라도 법관으로서의 품위와 절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국의 법관 여러분!

저는 이번 일이 드러나기 전부터 오늘날 국민이 느끼는 사법불신의 정도가 재판 본래의 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상황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전관예우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고, 재판 결과가 청탁과 정실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우리 법관들은 언론이나 재야법조, 또는 법원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이거나 실제 이상으로 과장돼 있다고 항변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법관들 스스로가 사법불신의 원인을 법원 밖으로 돌리면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면, 그 방법을 찾는 일은 요원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법불신의 원인을 여러가지로 달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 주된 원인이 공개된 법정에서 당사자와의 사이에 적정한 의사소통 없이 재판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그 동안의 잘못된 재판관행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법정이 아닌 판사실에서 법관들만에 의해 재판의 실체가 형성된다고 믿는 데 따른 불안감과 의구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법정에서 마음대로 이야기 할 수 없으니 소송관계인들은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법정 밖에서 법관들과 접촉할 기회를 찾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도 근본적으로는 법관들이 법정에서 국민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던 종래의 재판관행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재판관행이 지속되는 한 사법불신을 극복할 수 없고 비리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저는 대법원장에 취임한 이래 계속하여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상 재판의 기본원칙인 구술주의와 공판중심주의를 충실히 실천하자고 강조해 왔던 것입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당사자들의 치열한 공방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발견되고 적정한 판단이 도출돼야 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오늘날 사법불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여러 사회현상은 더 이상 발붙일 여지가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전국의 법관 여러분!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러분 모두 정말 감내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으로 압니다. 근거 없는 이야기가 횡행하고 일반 국민들이 오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솔한 발언들이 끊임없이 언론에 공급되는 서글픈 현실을 보면서 분노를 삭이느라 많이도 애를 쓰셨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 각자를 믿습니다. 누구보다도 청렴하고 성실한 대다수의 우리 법관들과 함께라면 우리의 소망인 신뢰받는 사법부를 넘어서서 존경받는 사법부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참으로 적은 인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사건을 처리해 온 것이 우리의 사법부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사법부답게 꿋꿋하게 우리의 위치를 지키면서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해 갑시다. 차분하게 그리고 더욱 굳건하게 사법부의 위상을 되살려 나갑시다. 우리 모두의 뜻과 마음을 합친다면 오늘의 시련은 내일을 위한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한 전국 법원장 여러분께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에게는 오늘의 회의가 의례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루빨리 전국의 모든 법관들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본연의 재판업무에 열과 성을 다하도록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오늘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모든 법관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새로운 사법의 미래를 위해 합심할 수 있도록 법원장 여러분의 창의적인 역할이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아낌없는 노력을 다시 한번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2006. 8. 16
대법원장 이용훈{/파랑]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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